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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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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2. 16:48 횃불/1996년

잊혀진 명령-거룩하라

윌리암 맥도날드

17 : 사람의 생각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훈련 중에 하나이다. 사람은 어떻게 그의 마음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의 방향과 인격이 결정된다. 성경말씀에 따른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4:8) 청결하지 못한 마음은 결국 난잡한 행동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23:7). A.p. 깁스는 늘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평가가 당신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생각이 곧 당신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의 내용이 곧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지수(指數)이다. 한 지인(知人)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했다( 4:23). 마음이라는 말보다는 생각이라고 하면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생각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은 우리의 행동을 낳는 샘의 근원이다.  만일 샘물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샘에서 흐르는 물줄기도 통제할 수 있다.

 

십계명

십계명 중에 하나가 사람의 마음(생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에 대한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20:17). 탐심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탐심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 그 어떤 것을 갖고자 하는 욕심이다. 하나님은 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다소의 사울을 회개하게 만든 계명이었다. 그는 언제나 외형적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떤 큰 죄들을 범한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십계명을 대할 때 그에게 있는 악한 생각도 곧 악한 행동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의 생각들, 즉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곧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그 계명이 내 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7:711).

 

역사의 방법

야고보는 마음의(정신적)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고찰을 하였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1:13l5). 여기에 죄가 인생과 비교되었다. 먼저 잉태가 있고 다음에 어린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장성하기까지 자란다. 그리고는 죽는 것이다. 죄도 그렇다.  죄는 먼저 인간의 마음에 잉태되어 행동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습관이 되고 결국 죽음으로 그 사람을 인도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으며 습관이 인격을 낳고 인격이 운명을 결정한다라고 옛속담은 말하고 있다. 주님은 그의 가르침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셨다. 하루는 주님께서 한 무리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부르셨다. 이들은 외적인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 내적인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 아래서 돼지고기와 토끼, 오징어, 게 등을 먹으면 부정하게 된다고 배웠다. 물론 율법시대에 그러한 음식을 먹으면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하셨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7:1423).

당신은 사람들이 새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머리 위에 집을 짖는 것은 막을 수 있다라는 말로 악한 생각들에 대해 변명하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말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에 들어오는 탐욕적인 생각들은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악하지 않다면 거룩하다는 말인가?”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원한 것이든 원하지 않은 것이든 악한 탐욕적인 생각은 불결한 것으로써 정죄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케함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여러 암시적인 광고와 상스러운 대화 그리고 그 외에 많은 마음의 공해들로 인하여 그 마음을 전혀 더럽힘이 없이 청결하게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마음에 청결하지 못한 생각이 들 때 그것을 즉시 거절하여 쫓아버리는 것이다.

 

생각지도 말라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악한 생각들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더 강조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5:21, 22,27,28).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살인에 대해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러셨을까? 이는 당신이 살인을 생각지 않으면 절대로 살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왜냐하면 행동은 먼저 그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욕을 다스린다면 당신은 절대로 절도로 인하여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이와 동일한 말을 하고 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요일 3:15) 미워하는 것을 살인으로 말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소원과 성취 그리고 원인과 결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살인이 애벌레 상태로 그 마음에 있는 것이다. 분개나 악의가 없는 곳에 살인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스럽고 놀랍다. 마음은 마치 모든 명령을 하달하는 군대의 사령부와 같다.  마음이 손에게 필을 들어 글을 쓰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한다. 마음은 수없이 많은 생각을 보내는 교통기관이다. 그런데 마음은 어떻게 그 많은 정보들을 처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생각은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가 하는 일과 그 양을 컴퓨터로 만든다고 하면 그 컴퓨터는 미국의 엠파이어 빌딩만큼 커야 하며 그렇다해도 마음이 하는 일을 충분히 다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이 하는 것들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써 각자가 하나님 앞에 그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광대하고 복잡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과 같다-마음의 왕국. 우리 모두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마음을 선이나 악 그리고 가치있는 일이나 무가치 한 것에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마음의 긍정적인 면

나는 마음의 긍정적인 면 그리고 그 가능성을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헨델이 앉아서 그 마음에 메시아곡을 생각해 작곡한 것을 생각해본다. 그 음악은 아주 감동적이어서 나는 성경에서 메시아에 대해 읽을 때마다 그 음악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하늘나라에서 혹시 그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는 아이삭 왓츠의 위대한 찬송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생각한다. 그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 드렸다. 그리고 그가 기독교계에 내 놓은 찬송은 이것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와같은 찬송은 일평생에 하나만 써도 가치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밀턴이 절제된 마음으로 오랫동안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실낙원을 쓴 것을 생각한다. 그의 책 한 장, 한 장이 부한 그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그림 그리고 조각들을 생각한다. 그의 예술의 아름다움과 폭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깊고 넓다. 그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그의 생각들은 그의 그림과 조각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나는 설교의 대가 하돈 스펄젼을 생각한다. 나는 피어슨이 그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 안에서 그의 마음은 퇴고를 만들어내었다라고 말한 것을 생각한다. 나는 그의 설교문들을 읽으며 그의 삶이 풍성한 삶이었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 시대에 있었던 일들도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달을 탐사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위성을 띄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 기술과 야망 그리고 그 정밀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악에 대한 가능성

우리는 또한 마음이 부정적으로 사용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자비한 폭군들의 혹독한 감옥과 수용소, 가스실 그리고 가마솥을 생각하며 또한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 자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볼테르나 톰패인 그리고 로버트 인져솔같은 사람들처럼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는데 사용한 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무지론과 무신론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오늘날 춘화(春畵)를 디자인하고 프린트해서 배포하는 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 좋은 머리와 마음을 이러한 일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도덕을 파는 자들, 도덕적 환경을 더럽히는 자들과 조장하는 자들 그리고 성도착자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적인 면에서 마음이 악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일 주일 동안 우리가 했던 생각들을 플랭카드에 써서 들고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마음이 인간이 볼 수 없는 깊은 죄악의 골짜기로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온갖 부도덕한 것들을 생각하며 은밀히 이를 즐기거나 금지된 것들을 즐길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친구 중에 하나가 그러한 일을 하다 잡혔다면 우리는 그를 정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혼자 있으면서 정욕적으로 동일하게 음탕한 탐욕을 품고 부도덕한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와 동일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없이 누구든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데리고 그 어디든 가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성도들의 마음에서도 이와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만일 이와같은 일이 습관화 된다고 하면 그 결과는 오직 비참한 것이 될 것이다.

1988년도에 TV를 통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던 사람의 불륜의 관계가 드러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란서적에 빠져왔다고 말했다. 오늘날도 은밀한 죄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들은 그러한 죄로부터 건짐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생각을 다스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최근에 어떤 그리스도인이 비행기 안에서 어떤 젊은 군인 옆에 앉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군인은 옆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잡지를 넘겨주었다. 그가 그 잡지를 보았을 때 그것은 아주 음란한 것이었다.  그는 점잖게 잡지를 넘겨주고는 조그만 쪽복음을 읽어보라고 주었다. 그때 그 군인은 그리스도인에게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물어왔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온갖 죄악된 일들을 말하면서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그 성적인 죄로부터 건짐을 받기를 원하면서도 계속 음란한 잡지들을 보았다. 악한 생각은 자동차 실린더의 안과 같아서 시험의 불꽃이 튀기만 하면 폭발하고 만다. 당신은 악한 생각을 죽일 수 있다. 아직 배우지 않았다면 생각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라. 육체의 은밀한 것들이 마음 속에서 꽃피게 놔두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여야 한다. 모든 생각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통제되며 순화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처방

문제는 이것이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야 한다. 생각을 통제해야겠다는 굳은 각오가 있어야 한다. 불신자는 먼저 거듭나야만 한다.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그는 부도덕한 생각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인 성령님이 그 안에 내주하시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음의 몇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모든 문제를 기도 가운데서 주님께 가지고 가라. 우리 모두에게 다윗의 간구가 알맞을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0). 이 말씀은 다윗이 간음과 살인죄를 범한 다음에 한 간구이다. 그의 죄는 통제되지 않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둘째,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들을 주님 앞에 있는 것처럼 판단하라.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주님 앞에 그것들이 어떻게 나타날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0:5에 이것이 제시되어 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우리는 모든 생각들을 노예마냥 그리스도의 판결에 순종하도록 사로잡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인증을 받지 못한 모든 부도덕한 생각들을 죄로 고백하고 버려야 한다. 길을 가든지 차 안에서 책을 읽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악한 생각들에 대해 주님 이것은 죄입니다. 제 마음이 더러워졌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깨끗케 해주십시오. 어린양의 피의 능력을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마음에 있는 그러한 생각들을 내쫓아야 한다. 자비의 약속은 그들의 죄를 자백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백하고 버리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자 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28:13).

이는 실질적으로 일주일에 적어도 만 번 이상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들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는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겠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러한 생각을 내어 쫓는다라고 말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4:8에서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중요한 것은 신이 위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죄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죄와 부패는 그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새로운 애정으로 인한 배제의 능력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어떻게 부르든지 상관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시행하라.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분을 닳아가게 된다 (고후 3:18). 상식도 우리가 사고에 있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읽는 것이나 보는 것 그리고 사귀는 사람들에 대해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음란한 책이나 잡지, 영화 그리고 대부분의 TV쇼들도 마음에 부패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사람의 삶에 탐욕을 불러 일으키는 물건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을 위해 바빠야 한다 시험중에 가장큰 시험들은 우리가 잘 먹고 잘 쉬면서 안일하게 놀고 있을 때에 온다. 그리스도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삶은 많은 시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시간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안일한 사람보다 헛된 생각이나 부도덕한 생각들로 인한 씨름을 덜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잠언 16:3이 말하고 있는 것일게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생각)하는 것이 이루리라.” 이것이 바로 힘을 다해 당신의 생각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나의 모든 생각을 살피소서

마음 속의 은밀한 곳과

주장하는 동기

영혼을 지배하고

마음을 더럽히는

마음 속의 작은 것을 살피소서

 

(1996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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