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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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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0. 09:10 횃불/1996년

거짓 것과 참 것

0. J. 스미스

구약의 신명기 30:15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생명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9절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여기서 우리는 거짓 것과 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차례로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거짓 것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위하여 하는 일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거짓 원리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까? 무엇을 토대로 하여 천국에 들어갈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까? 이러한 것들은 분명한 답을 얻어야 할 질문들이며, 또 최대로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거짓 관념들을 하나씩 들어서 설명 해 보겠습니다

 

1. 기독교(하나의 종교로써)

종교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행하는 그 무엇입니다. 우리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세례를 받고 교회에 나가고, 성찬식에 참석하고, 십일조를 내는 등의 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는 좋은 교인, 혹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종교적인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이 종교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다섯번 밖에는 사용되지 않았는데 네번은 나쁜 뜻으로 사용되었고 한번은 신자의 선행에 대하여 쓰여졌으나 구원이나 신앙문제와 관련되어서 쓰여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난 소위 기독교는 불교나 모하멧교보다 나은 구원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었고 차고 생명이 없으며 수많은 영혼의 저주가 되며 마귀의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독교란 종교를 수백만의 카톨릭교인, 희랍정교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이 구원으로 알고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종교는 생명이 떠난 시체, 거짓 직업, 능력이 없는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페인트를 칠한 동상과 같이 모양은 좋으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남이 없어도 회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제가 의심없이 믿는 것은 회심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결코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정한 형태의 죄에서는 회심하였습니다. 회의와 무관심에서는 떠났습니다. 대개의 경우에 어떤 교파로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부흥사나 목사를 향하여서는 회심하고 교회나 명예를 위해서는 회심한 셈이지만,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중생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될 것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3:3)라고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인도의 기독교 지도자인 푼티타 라마바이가 그러한 좋은 예입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힌두교와 다른 거짓교리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그는 세례를 받았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후 8년 동안을 충실한 생활을 하였고, 성경을 그의 생활의 표준으로 삼았으며,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의 생활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푼티타 라마바이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가 말한대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개인의 구주로서 그리스도란 그에게 한 낯선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는 받아들였지만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란 종교는 이해했지만 개인의 구원 문제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의무감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귀의한지 8년 후에 그의 생애에 있어서 영광스러운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그 자신을 구주가 필요한 잃어버린 죄인으로 영생을 가져야 할 죽은 영혼으로 보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는 거듭나게 되었으나 그저 회심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중생한 것입니다. 이제 그 자신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란 죄의 회개와 다시 짓지 않겠다는 결심인 줄 생각했습니다. 또한 세례받는 예식이 중생을 의미하는 줄 생각하였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나의 죄가 참으로 씻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상은 힌두교의 교리에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나의 생활에 뿌리를 박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세례 받은 후 8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저는 제가 기독교를 찾았지만 종교의 생명인 그리스도는 얻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회심은 하였지만 중생은 못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는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 

 

2. 교인의 자격

여러분은 교회에 입교 혹은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설명해 드리지요. 여러분이 왕족의 가족의 일원이 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영국왕의 피가 여러분 혈관 속으로 흐르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려면 한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 가문에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지금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의 유형적 교회의 조직체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파를 연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저 유일한 교회, 참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 거듭난 무리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하나의 큰 가족으로 내세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족이며 아무도 그 교회, 즉 그 가족에 그저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가족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왕족의 가족으로 태어나지 않고서는 왕족의 혈통이 될 수 없듯이 그저 교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마음에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의 일원입니까, 아니면 분명히 거듭났습니까? 그저 단순히 어느 교회의 교적부에 이름만 실려 놓았습니까? 교인의 자격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 구원의 능력을 가진 교회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5)

하늘나라엔 장로교인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감리교인도 없고 침례교인도 없습니다. 물론 플리머스 형제들도, 성공회 회원들도, 부흥파 교인들도, 루터파 교인들도, 그리스도 교회 교인들도, 로마 카톨릭이나 희랍 정교의 교인들도, 그곳에는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어서 붙인 이름은 모두 떼어서 밖에다 놓게 되고, 오로지 피로 씻음을 받은,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교회의 일원인가?”가 아니라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는가?”가 문제입니다. “내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는가?”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는가?”가 해결점입니다. 

 

3. 금욕주의

곤욕주의는 희랍 정교와 로마 카톨릭이 성장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성행되고 있는데 동방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죄의 멍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자각을 하고 구원의 길이 다른데는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하는 그들은 계속적인 자기 부정과 보상될 수 있는 선행을 하는 생활을 시작하여 그러한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며 이리하여 금욕주의자 또는 고행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론은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시험이 많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굴이나 수도원에 들어감으로 그곳에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온갖 육체적 고행을 겪어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성지라는 곳으로 오랜 순례 여행을 하여 몸을 지치게 합니다. 어떤이들은 죄를 없애려고 쇠붙이로 옷 대신 걸치기도 하고 물만 먹고 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이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서운 방탕아였던 러시아의 유명한 시인 네끄라소브의 시 속에 나오는 블라스 아저씨라는 인물도 고행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밤낮으로 그들은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고 여러가지 고행으로 자기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단념하고, 금식하여 기도하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고, 여전히 죽음이 무서웠고 대개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자기 노력으로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모든 사람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은혜로 베풀어지는 구원의 간단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소치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완전하고 완성된 구원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이 명확하고 결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자신의 행함으로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과 같이 죽는다든가, 그 외의 그 어떤 위험하고 영웅적인 행동도 구원에는 최소한의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자녀들을 죽여야 하는 사나운 몰록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사랑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그분의 독생자를 우리의 구주로 주신 사랑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행동으로 온전케 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이와 같이 부탁하였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 2:2023).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10:18).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은 외치기를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후 5:19)고 했습니다. 그러면 화목은 금욕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에서 이룩한 완성된 역사를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화목을 받으셨습니까?

 

(1996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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