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4. 6. 25. 12:41 횃불/1997년

진정한 의미의 여성 해방

 

여성 해방 운동을 주창하는 데에는 사회생활, 일상생활, 가정생활과 관련된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신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성경적인 견해를 전혀 무시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예 제도 폐지론과 부인 참정론을 주창하던 시대를 여성 해방 운동의 초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은 노예에게도 인간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것과, 정치적으로는 여자들도 남자와 다름없이 선거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적이 달성되자 동등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획득하는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여성들도 모든 남성들과 마찬가지의 지성적임을 인정하고, 이를 계발하고, 사용할 기회를 제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아울러, 여러가지 여건들은 여성 해방 운동을 부채질했습니다. 남자들이 입대하게 되어 일자리가 비게 되자 여성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위기가 오게 되자 가정의 궁핍을 면하기 위해서는 부수입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창의적인 여성들은-출판을 하기 위해서 가명을 쓰기도 했지만-예술을 통해서 자기 표현을 하게 되자, 정치적인 압력이 입법자들에게 가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이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되자, 직장을 가진 가정 주부의 역할을 비롯하여 그들의 생활 전반을 재검토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만일 내가 남편과 똑같은 시간을 일하게 되면 남편이 퇴근할 때나 마찬가지로 나도 피곤하게 되므로 가사도 분담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들에게 장보기, 부엌 일, 애기 보기, 집안 청소등의 균등한 분담을 요구했습니다. 이로써 결정에 있어서나 책임에 있어서나 부부의 임무를 구분하지 않는, 이른 바 결혼생활의 평등사상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심의 가정이라는 개념은 해방적인 여성들에게 굴레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직장을 마음대로 갖게 되었고, 가정주부의 역할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여자를 경시하거나 가정으로 제한하려는 남성들을 가리켜 남성 옹호주의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여성 해방 운동자들의 목적은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간 같은 일을 했을 때,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여러분도 모두 동의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킬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불신 운동자들의 많은 견해를 수긍하면서,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서 남녀평등 사상을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어떤 성구를 인용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은 다만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할 뿐으로, 이것들은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고려해야 하며, 주후 1세기의 교회나 성도에게 주신 명령을, 20세기의 상황과 문화가 다른 성도들에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때때로 성경은 점진적이어서 바울과 같은 저자도 여자들에 관한 생각이 성숙함에 따라 바뀌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성경의 영감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이상한 일입니다(딤후 3:16).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그들에게 교회에서의 설교를 허락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은사 활용의 기회가 없다고 불쾌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영적 은사에 있어서는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신령한 은사와 관련해서 어떤 은사도 남자에게만 주셨다는 대목은 없습니다(고전 12장 참조). 그러나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에서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남녀의 구분을 두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인이시기에 그렇게 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신령한 은사에 관해서는 앞으로 보다 상세하게 다루게 되겠기에 그때까지 보류하기로 하겠습니다.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의 대변자들은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결혼제도 하에서 아내에게 순종이 강요되는 것을 특별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성 우위를 반대합니다. 그들은 모든 성도간 상호 복종하는 것 이외의 복종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에베소서 5 21절은 받아들이면서도 22절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행 결혼제도를 일방통행로처럼 보고 있습니다. 여자란 언제나 남자에게 주기만 하고, 복종하기만 하고, 양보만 하며, 자기의 권리는 포기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혼이든 사업이든 직업이든 목회이든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동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근에는 여자의 성직 안수를 요구하게끔 되었습니다.

모든 여성 해방 운동자들의 일반적 주장은 소년 소녀들이 어려서부터 남녀유별을 배워왔고, 또 그렇게 처신하도록 세뇌를 받았기 때문에 남녀가 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녀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유행에 뒤떨어진 견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여성은 우아하고, 정서적이며, 모성적이고, 남성세계에 대해서는 다소 무력해 보이는 반면에, 남성은 가족의 부양자로서 스포츠에 있어서나, 기계에 대해서나, 재정적 안목에 있어서 강인하고 우세하고 탁월하다는 견해는 고루하고도 인공적인 견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생리적인 차이점이 해소되는 것일까요?

해방은 검토해야 어휘입니다. 여성들은 구태의연한 남녀유별에서, 남성의 지배에서, 전형적인 주부 임무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여성들은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천부적 능력 을 자각해야 한다며,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이에 대해서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남성 옹호론자요 현대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3:28)는 말씀을 보면, 그가 점차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생각으로 기울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의 주장대로 과연 사도 바울이 심경에 변화가 있어서 이 편지에는 이렇게 쓰고, 다른 편지에는 다르게 쓴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것일까요? 여성 해방 운동자들이 어찌 바울의 말을 취사선택하여 이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말씀은 하나님께로서 왔고 어떤 말씀은 바울에게서 왔다고, 분별하거나 비판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성경 전체가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인생의 토대로 삼을만한 권위가 없습니다. 여성 해방 운동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들을 문맥적으로 주의 깊게 상고해보면,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는 일관성이 있으며, 주님의 말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고전 14:37).

그리스도인의 여성 해방은 성경 말씀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를 힘쓰는 여성이 발견하게 되는 자유입니다. 참된 해방은 순종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신 곳에 물음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단 말입니다.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두 사람이 강둑을 거닐다가 한 사람이 유난히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는 이 나무가 참 불쌍하다고 탄식했습니다. 이런 나무들에게도 자유가 있어야 해! 그래서 그들은 함께 이 나무를 뽑아 나무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교훈해 주려는 바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나무는 정해진 장소에 있었을 때 자유로웠고 아름다웠지만, 뽑힌 후에는 말라 죽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소임을 감당하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열차가 선로를 따라서만 제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며, 돛단배도 바람의 원리에 순응할 때에만 영광스러운 자유가 보장됩니다. 남녀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지혜로 남자를 지도자로, 여자를 돕는 배필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적합한 임무를 구상하시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만족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 중에 불완전한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완성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경륜을 받아들이는데 달려 있습니다. 만족하는 심령이야말로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창의력이 없다는 뜻일까요? 그리고 여성의 소임이 가사에만 국한된다는 뜻일까요? 그저 가정에서 문 앞에 놓여있는 흙떨이개와 같은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 본대로 신구약 성경이 한결같이 여성의 활동은 가사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1장 참조). 하나님을 앙모하며, 말씀을 경청하며, 순종하는 여성은 비록 최악의 극한 상황에서도 측량할 수 없는 만족을 누립니다.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막막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게 하신다면 어찌 이를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힘쓰는 여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촛점을 맞춘 삶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령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37:4).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아 완성을 도모한다면 반드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없을뿐더러, 독선적인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진정한 행복과 자아 완성에의 길은 이기적인 추구가 아니라 사랑의 자아 희생입니다.

 

(1997 4월호)

 

'횃불 > 1997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혀진 명령-거룩하라  (0) 2014.07.14
말씀의 거울에 비쳐본 사역자상(1)  (0) 2014.07.14
십자가의 두 강도  (0) 2014.06.25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1)  (0) 2014.06.25
말씀의 올바른 해석  (0) 2014.06.25
증인  (0) 2014.06.25
내가(경험으로) 깨달았노니  (0) 2014.06.25
잊혀진 명령-거룩하라  (0) 2014.06.25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