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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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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6. 16:15 횃불/1997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10)

죤 필립스

개관의 원칙

부분을 살피기 전에 먼저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이런 원리는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되지만, 성경의 경우 특히 중요하다. 성경의 어떤 부분에 전념하기 전에 성경 전체의 대체적인 윤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성경의 여러 책의 주제나 내용, 쓴 목적, 다른 성경과의 관련성, 실제 역사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부분을 이해하려면 전체를 먼저 알아야 한다.

성경은 1,189, 23,214, 773,692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모습,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그 규모, 관점, 다양성 때문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잠깐 조각 그림 맞추기 장난감을 생각해 보자. 수천 개의 조각이 각각 제자리에 맞춰져야 전체적인 모양이 나온다.  개개의 조각을 갖다 맞추기 전에 먼저 장난감 상자에 그려진 그림을 살펴봐야 한다. 초록색 조각은 이쪽 나무나, 잔디, 혹은 저쪽 소녀의 옷이다. 파란색 조각은 하늘, 연못, 파란색 자동차에 맞춰져야 한다. 빨간색 조각은 저쪽 창고, , 지평선에 보이는 기차임에 틀림없다.

성경을 접근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세세한 부분을 파고 들기 전에 먼저 중요한 특징들을 책 단위로 알아야 한다.  성경을 우연히 읽게 된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이사야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이 둘이 시간상 연속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약 100년이라는 간격이 있다. 이사야가 쓰여진 시대엔 앗시리아(앗수르)가 세계적 제국이었고, 예레미야 시대엔 앗시리아는 단지 괴로운 추억거리일 뿐, 바벨론이 위협적인 국가였다. 이스라엘 10지파는 이미 정복되어 포로로 잡혀가 흩어졌고, 유다도 바벨론 제국의 위협 앞에 직면해 있었다.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격차는 더 크다. 말라기가 쓰였던 당시에는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생활에서 이미 돌아왔으나 미래는 암담했다. 학개와 스가랴가 돌아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지 약 100년이 지나 새로운 죄들이 이 땅에 뿌리내렸다.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엔 약 400년의 간격이 있다. 말라기 당시에는 페르시아가 세계를 제패했으나 마태 당시엔 페르시아도, 그리스도, 마카비도 사라지고 갈등 관계에 있는 이집트와 시리아도 이제는 쇠퇴했고 로마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다.

말라기에는 없었던 종파와 정당들이 복음서에는 언급된다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원 등이 그렇다. 또 팔레스타인 도시가 헬라어로 불려지고 있다. 히브리어는 사어(死語)가 되었고 학자들의 용어에 불과하게 되어 성경도 헬라어 성경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평상시 쓰는 언어는 아람어였다.  다윗의 보좌에 이두메인()이 왕으로 앉자 있고 산혜드린이 종교적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성전도 말라기 시대와는 달랐다. 마태복음에서 보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훗날 탈무드로 알려지게 된, 양도 많고 시시콜콜하게 규제하는 내용의 성경해석 모음집이 자주 쓰이고, 보통 사람들이나 학자들의 모임에서도 이 모음집이 성경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같은 광범위한 변화를 이해하고, 또 성경 전체를 개관하고 있어야 성경의 한두 구절에서 헤매지 않는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이같은 성경 개관 접근 방법으로 성경을 설명하셨다( 24). 그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자신들의 희망이 좌절되었다고 슬프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생각했는데 갈보리로 끝나버렸다. 부활 소식도 전해졌으나 진지하게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님의 대답은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바를 개관해 주신 것이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4:27). 이렇게 해서 그 두 제자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주셨다. 그들은 단지 통치하는 메시아만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고난받는 메시아,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보여 주셨다. 그들의 무지에 진리를 제시해 주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메시아는 통치자일 뿐 아니라 구세주였다.

성경을 개관함으로써 모든 것이 제 위치에 있게 되어, 우스운 혹은 심각한 실수를 예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가랴 3장에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장면이 나온다.  모세 밑에서 좋은 훈련을 받고,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그렇게 유명한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그런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성경을 조금만 더 잘 안다면 이같은 실수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에는 두 명의 여호수아가 나온다. 한 명은 군인이고 다른 한 명은 제사장이다 한 명은 이집트(애굽)에서, 다른 한 명은 바벨론에서 포로였다. 한 명은 출애굽 시기에 살았고, 또 다른 한 명은 1,000년 후 바벨론 유수(幽囚) 마지막 시기에 살았다.

신약의 마리아와 헤롯 왕에 대해서도 똑같이 실수할 수 있다.

십자가 옆에 세 명의 마리아가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이지만 베다니의 마리아는 거기 없었다. 베다니 마리아는 이미 장례의식을 마치고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다( 26:7, 14:3, 11, 12:19).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와, 로마에 살면서 바울과 그 일행을 섬겼던 마리아는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헤롯 가문도 매우 복잡하다.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의 남자 아이를 죽였으며, 헤롯 빌립 1세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딸 살로메가 헤롯 안디바와 살게 되고 그가 세례 요한을 죽였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 옥에 가두었으며 황충에 먹혀 죽었다.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유대인의 마지막 왕이며 바울이 체포되어 네로 황제 앞에 서기 전에 바울의 변명을 들었다.

성경의 책이나 구절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전에 개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잡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의 책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의 주요 형태를 잘 익히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한 여러 어리석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선, 장면이 하늘과 땅이 그 배경으로 번갈아 나오므로, 어떤 위치에서 목격된 사건인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실제 시간적 순서가 삽입부에 의해 끊임없이 중단된다. -이 삽입부가 어떤 것은 짧으나 어떤 것은 몇 장()에 걸쳐서 나오기도 하며, 어떤 것은 시간상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다른 것은 미래를 대비하고 뛰어넘기도 한다. 이같은 삽입부가 분명히 구분되고 드라마 전체와 관련된 위치가 이해될 때에야 계시록은 혼란스럽지도,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해 가려면, 먼저 미국지도를 보고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다음 주()지도를 보고 그 길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러 도시의 시가(市街)지도를 살펴서 어떤 우회도로나 도시고속도로를 택할 것인지, 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즉 먼저 큰 범위에서 시작하여 작은 데로 나가야 한다.

성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전체 윤곽에서 세부 사항으로, 개관에서 분석으로 나가야 한다.

성경의 전체적 개관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므로, 성경의 여러 책들을 짤막하게 요약해 보라. 바른 속도로 살펴보면 성경의 각 책이 어떻게 함께 모아져 있고 각 책은 성경 전체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성경 각권에 대한 요약이다.

 

구약

족장들-창세기

창세기는 족보와 전기(傳記)의 책이다. 창조와 저주가 나오는 짧은 서문 다음에 주요 주제인 족장들의 이야기가 나온다.(1) 인류의 조상들,(2) 그리고 히브리 민족의 조상들. 이 인물들의 이름과 이야기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인류의 조상들-인류는 두 개의 조상이 있다. 하나는 타락 후 세워진 조상들이고, 다른 하나는 홍수 이후에 세워진 조상들이다. 타락 후의 지상에 두 개의 커다란 문명이 발달한다. 처음 나오는 것은 가인과 라멕을 중심으로 하는 가인의 문명이다. 이 문명은 사회적, 과학적 문화를 일으키나, 하나님이 배제된 율법 없는 문명이다. 이 문명은 폭력적이고 죄악으로 시달린 문명이며 결국 하나님께서 그 전부를 쓸어 버리셔야만 했다. 가인의 문명의 옆에 셋의 문명이 발달한다. 중심 인물은 셋, 에녹, 므두셀라, 노아 같은 경건한 사람들, 주변은 어둡지만,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했던 거룩한 사람, 선견자들이다.

홍수 이후에 새로운 세대의 조상들이 일어난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 , 야벳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다. 함 족속에게서 위대한 반역자, 바벨탑의 건설자,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게 될 불법적 계획의 지도자인 니므롯이 나온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인류를 인종에 따라 흩으신다. 셈 족에게서 데라, 하란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아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나온다.

·히브리 민족의 조상들-히브리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주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도구이다 히브리 민족은 세 명의 명목상의 머리를 갖고 있다.(1) 아브라함,(2) 이삭,(3) 야곱. 창세기의 절반은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한 이들 세 명의 이야기와 연관된다. 또한 12개의 머리, 즉 야곱의 12아들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요셉의 이야기에 함께 들어 있다. 창세기의 4분의 1이 요셉의 이야기이다. 요셉은 어릴 때 형들에게 미움을 사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으나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높여주셔서 애굽의 통치자가 되어 하나님의 목표가 성숙될 때까지 자기 족속을 애굽에 정착시킨다.

 

보호자들-출애굽기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 약 400년 동안 남아있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매우 급속하게 번성하여 바로 왕의 두려움이 된다. 때가 되어 그들이 살던 은신처를 게토로 바꾸고 히브리 백성 전부를 점차로 전멸시키려는 계획을 세운 왕이 등장한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사용하셔서 이 바로 왕의 계획을 좌절시키실 뿐 아니라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시내산으로 가게 하시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명령과 권능으로 무장시켜 보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바로의 지배력을 깨뜨리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구원 자체는 궁극적으로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에 달려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로 가게 하심으로 분리시키신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심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그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과 광야에서의 예배를 다 포함하고 있다.

 

제사장들-레위기

최초의 제사장 책인 레위기에는 네 개의 주된 주재가 있다. 첫번째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다룬 다섯 가지 제사와 그 제사법이다. 둘째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사회 생활과 관련된 일련의 법률들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관련된 진리가 계시된다. 특히 제사장 가문과 예언적 의미가 있는 여호와의 명절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레위기는 하나님께 증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에 특히 주목하자. 레위기의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에서 삶의 아주 사소한 측면에서도 거룩성을 요구하신다는 점이다.

 

순례-민수기

이 책에는 이스라엘의 두 번의 인구조사가 기록되어 있다. 첫번째는 순례를 시작할 때 즉 이집트에서 나온 백성들을 계수(計數)했을 때이다. 두번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새로운 세대를 계수한다. 이 책은 대체로 광야의 이스라엘과 관련된다.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그리고 그 결과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 사건에 특히 주목하라. 이집트를 나오게 하신 하나님을 믿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믿지 못했다. 후반부는 방랑하는 이스라엘이다. 새로운 세대가 계수되고 가나안 정복을 위해 준비된다.

 

백성들 - 신명기

이 책은 모세가 죽기 전에 말한 10개의 연설로 되어 있다. 아마 모세의 추억이라 이름 붙이면 더 그럴듯 할 것이다. 이 책은 네 방향으로 보고 있다.(1)뒤로,(2) 안으로,(3) 앞으로,(4) 위로. 뒤를 돌아보는 부분은 거인족인 시혼과 옥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들 상기시키고, 가나안 땅에서는 더 많은 거인들을 만나게 되겠으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안을 보는 부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되풀이하는 장면이다. 앞을 보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토지법()을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위를 본다. 즉 모세의 죽음과 초자연적인 장례가 행해진다. 신명기의 핵심구절은 잊지 말지니라”, “너는 기억하라이다.

 

애국자들-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여호수아서는 일련의 드라마 같은 승리를 통해 그 땅이 어떻게 정복되었는가를 말해 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있는 적들을 완전히 정복한다. 첫째로 그는 여리고 성을 취함으로써 가나안의 중심부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나서 아이에서 패한 후 남쪽에서 동맹군들의 대항을 물리친다. 또한 군대를 북으로 진군시켜 강력한 동맹군을 쳐부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세 번의 정책적 실수를 범하고, 이는 훗날 이스라엘 역사의 올무가 된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페니키아 지역에서 시작된 해변지역을 차지하지 못하고 기브아와 치명적인 계약을 맺고, 패배시킨 적군들을 완전히 전멸시키지 못한다. 그 결과 가나안 족속이 상당한 정도로 회복되어 이스라엘에게 계속적인 도덕적, 정치적, 종교적 가시가 된다.

사사기는 그 땅에서 어떻게 서로 싸웠는가를 보여준다. 되살아난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계속 종으로 삼는다.  되풀이해서 하나님께서 사사라 불리우는 구원자를 보내주셔서 억압받는 백성을 구해내고 어느 정도의 부흥을 주신다. 유명한 사사로는 옷니엘, 기드온, 바락, 드보라, 입다, 삼손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반복적인 순환을 기록하고 있다.

(1) 죄→(2) 그 결과 종살이→(3) 그 결과 눈물→(4) 그 결과 구원→(5) 그 후 다시 죄···· 하나님께서는 메소포타미아인, 모압인, 암몬인, 아말렉인, 가나안인, 팔레스타인인을 통해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배교에 대한 대가로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징계한다. 이 사사 시대보다 더 어두운 시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많지 않다.

룻기는 그 땅이 어떻게 보존되었는가를 말해 준다. 룻기는 사사기의 세 개의 부록 중 하나이다. 나머지 둘은 사사기 끝에 붙어 있다. 그 시대는 비록 어둡고 배교의 나날이 컸지만 하나님께서 믿음 있는, 경건한 남은 자를 그 땅에 갖고 계셨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중심 인물은 보아스인데, 유다 집안의 가장이고, 모세의 율법을 좇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인 모압 여인과 결혼하며, 이 결합을 통해 메시아가 온다. 즉 보아스와 룻의 손자가 다윗이다. 이 책은 구속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나간 사람이 하나님께 제명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고안해 놓으셨음을 말해 준다. 보아스의 선함, 은혜, 경건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자기 목표를 추구해 가실 자기 백성을 두고 계심을 생각나게 만든다.

 

왕들-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이 긴 부분은 왕국의 행진 즉 국가의 흥망성쇠와 왕조의 일어나고 쓰러짐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사무엘과 열왕기는 역사의 진행을 보여준다.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세 개의 주제로 채워져 있다. (1)엘리에게서 제사장 직분이 실패함, (2)사무엘에게서 선지자 직분이 세워짐, (3)사울에게서 왕의 직책이 형성됨. 이 책의 도처에서 실패가 기록된다.  엘리는 제사장과 부모로서 둘다 실패한다. ‘사무엘도 아들들이 경건한 아버지와 같은 영적인 성실성을 갖지 못한 점에서 실패한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의 실패도 나온다. 사무엘이 이 책의 주인공이며 하나님의 온유하고 성실한 종으로 최초로 모든 지파를 한 민족 단위로 연합시킨다. 이 책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사울이다.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폭군으로 전락하여 복수심에 불타고, 악한 영에 사로잡혀 다윗이 하나님의 유업, 즉 왕위에 앉을 것을 올바로 알고도 그를 죽이고자 한다.

사무엘하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나온다. 그는 나라가 백성들 사이의 전쟁으로 이기고, 적의 공격으로 약탈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나라를 통일시키고, 존경받게 하고 충성하게 하고 두려움을 갖게 했다. 그는 국가의 사료(史料)를 정리했고, 시편의 절반을 썼으며, 종교생활을 조직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될 왕조를 남겼다. 사무엘하는 다윗 생애 중 인내의 시절, 즉 사울 집안이 결국 해체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보여준다. 그 후 다윗이 아무 잘못도 범치 않는 번영의 시절이 오고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위험한 시절로 끝이 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와 다윗과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왕기의 두 권은 이스라엘의 그 다음 왕들을 다루고 있다. 다윗 왕조에 상당한 지면이 할애되어 있고, 솔로몬의 영광, 그의 비극적 실수 등 솔로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솔로몬의 심각한 타락은 그의 왕국이 사후(死後)에 둘로 나뉠 것이란 예언을 낳게 되고, 열왕기는 분열된 왕국의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열 지파는 반역하여 사마리아가 다스리는 북쪽에 경쟁 왕국을 세우고, 남은 두 지파 즉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다윗 왕가에 충성하고 예루살렘의 통치를 받는다. 열 지파는 이스라엘이고 두 지파가 유다이다. 역사서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를 오가며 번갈아 기술(記述)한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악하다. 몇몇 왕은 위대했으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에 관심을 기울이는 왕은 아무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세 명의 악명 높은 왕 중 첫번째는 여로보암이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계속적인 종교적 올무가 된, 송아지에게 경배하는 이단 종교를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 악명 높은 왕은 아합이다. 그는 페니키아(시돈) 공주와 결혼해 백성들로 바알을 숭배하도록 타락시켰다. 세번째 왕은 여로보암 2세이다. 형식상 하나님의 권위로 통치한 마지막 북왕국의 왕이다.

이스라엘 왕국은 앗시리아 군이 침공해 와 사마리아를 함락시킴으로써 끝이난다.

유다는 그 후로도 15년간 바벨론이 침공해 올 때까지 존속한다. 이 두 왕국을 다스린 왕의 숫자는 같으나 유다의 왕이 평균적으로 이스라엘 왕보다 더 오래 통치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상당 수의 유다 왕이 선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특히 두드러진다. 이 두 왕은 나라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만들고자 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영향을, 요시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영향을 받았다.

역대기 두 권은 역사의 도덕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도 왕가의 역사를 다룬 다른 책들처럼 똑같은 역사적 배경을 다루나,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였고 주로 유다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다르다. 또 역대기는 선지자보다는 제사장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 역대기는 포로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다윗의 보좌는 없어졌을지라도 계보는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다.

 

선구자들-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는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의 마지막 부분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포로 생활의 종결과 관련된다.

70년의 유형 생활이 지나자,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게 자리를 넘기고,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이 관대하게 자기 영토에 있는 모든 포로들을 풀어 주자,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역사적 전개로 선구자들이 일어난다. 포로로 잡혀갈 때처럼 귀환도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수의 유대인만이 반응을 보이고, 대부분은 바벨론에서의 삶을 즐긴다. 스룹바벨, 느헤미야, 에스라 3명의 인도를 받아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와 황폐한 땅을 다시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에스라는 아론 제사장 가문의 율법학사였다. 에스라서는, (1)성전 벽의 재건 - 다윗 가문의 왕손인 스룹바벨에게 맡겨진 일; (2)성전 예배의 재건-에스라 자신이 선구자적으로 개척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정치가였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하는데 20년이 걸렸다. 60년 후 에스라가 종교적 부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도착하고, 12년 후 페르시아 최고위 관직을 가진 유대인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러 온다. 느헤미야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을 단 7주일 동안에 끝낸다.

에스더서는 포로생활의 성격을 다룬다. 유대인은 바벨론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높은 관직에 오른다. 대부분은 부자로 살고 최소한 잘 산다.

유배생활이 끝난 후 대부분의 유대인은 바벨론의 안락한 집에 그대로 남고자 한다. 즉 팔레스타인의 위험과 고난을 감행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전제 군주의 변덕 때문에 그들의 위치는 하룻밤 사이에 번영에서 위험으로 바뀔 수 있었다.

에스더서는 이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 책에서는 암호처럼 숨어 있고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시고 사람의 문제를 다스리시고 자신의 주권적 뜻을 이루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동화되지 않도록 핍박을 허락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유대인이 멸절되는 것도 허락지 않으셨다. 에스더서는 인류의 민족을 전체적으로 다스리시면서 히브리 백성의 운명을 특별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책이다.

 

시가(時歌) - 욥기, 시편, 아가, 잠언, 전도서

5권의 책은 히브리 백성의 지혜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욥기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구원받은 사람이 썼다. 지상에서 고난 받은 성도를 들라면, 아마 욥이 그 대표적 인물이 될 것이다. 욥은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사단의 손 안에 있으며, 둘째 사람의 손 안에 있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욥은 재앙, 비관, 회개에 부딪히게 된다. 고난의 원인과 결과에 이같은 통찰력을 주는 책은 없다.

시편은 노래하는 사람이 썼다. 시편의 절반 가량을 기록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불리웠다(삼하 23:1). 또한 모세, 솔로몬, 히스기야가 썼고 기타 무명의 시편도 있다. 모두 깊은 감정적 경험을 노래하고, 기쁨과 슬픔, 절망과 승리, 희망과 공포, 사랑과 미움, 평화와 불안 같은 인간 경험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이 나와 있다. 게다가 모든 시편은 예언적 요소가 있고 어떤 것은 특히 메시아를 예언한다.

시가서 중 셋은 현자(솔로몬)가 썼다. 각각 사랑과 지혜의 배움과 인생을 다루고 있다.

아가서는 아마도 솔로몬이 젊었을 때 쓴, 술람미 여인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사랑의 노래이다.

잠언은 자연, 종교, 심리, 인간관계, 통치, 부모의 권위 등등의 주제를 다룬 솔로몬의 경구적인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도서는 아마 솔로몬이 잘못 낭비한 생애의 마지막에 썼을 것이다.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의 관점과 전망이 나타나 있고 냉소, 낙심, 불만으로 가득차있다. 이 세상은 사람의 마음의 끝없는 욕망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 오직 하나님만이 그러하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언서-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예언서는 보통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구분한다. 이는 선지자들이 쓴 책의 양을 기준으로 나눈 것인데 약간 자의적이긴 해도 편리한 면도 있다.

· 대선지자들-4명의 대선지자가 있는데 그 중 3명은 히브리 민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다니엘만 좀 더 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우선 이사야의 관점은 예수라는 단어에 맞춰진다. 이사야라는 이름도 예수님이 구원하다는 뜻이다. 그는 앗시리아가 침략해오는 폭풍의 시대를 살면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예언했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예언이 앗시리아 군이 이리떼처럼 몰려올 때성취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또한 유다에 대한 위협이 녹아 없어지는 것도 목격하고 앗시리아의 위협이 바벨론으로 대체되는 것까지 생전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항상 메시아에게 돌아왔다. 골고다와 천년왕국을 이처럼 분명하게 바라본 선지자는 없었다.

그 다음에는 예레미야가 그의 애가(哀歌)와 함께 등장한다. 그가 바라본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다이다. 그는 마치 과거에 앗시리아의 침공시 그랬던 것처럼 흔들거리고 발가벗긴 작은 왕국 유다에 대해 예언했다. 그 당시는 바벨론이 세계 제국이었고 그의 임무는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幽囚)의 불가피성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백성들 때문에 울었으나, 백성 중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으며, 결국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이 멸시받아 찢기는 것을 봐야 했고 그 자신도 계속 핍박을 당한다.

세번째 선지자는 에스겔이다. 그의 예언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루살렘이다.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느부갓네살의 세번의 유다 침공 중 두번째 침공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의 임무는 예루살렘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며, 결국 그들 차례가 올 것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될 것이고, 그들은 틀림없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함께 잡혀온 유대인에게도 예언했으며, 가끔 주의를 끌기 위해 예언을 실연(實演)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한 후 그는 동포들에게 이 성이 다시 세워질 것이며 어느 날 세계의 수도가 될 것을 말한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모두 다른 나라도 언급하긴 하지만, 우선적으로 히브리 민족의 두 나라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예언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주로 이방 국가에 관해 말했다. 에스겔처럼 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살고 있었다. 그는 바벨론 제국뿐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에서도 권력자의 위치까지 올라간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바벨론에서 보냈다. 그의 환상과 예언은 주로 성경역사의 대 제국 즉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와 관련된다. 그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入城)을 예언하고, 신구약 사이 400년 동안 일어날 주요 사건을 자세히 말하고,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취될, 지금 시점에서도 미래인 사건을 묘사했다.

·소선지자들-12명의 소선지자들이 있다. 편의상 바벨론 유수 전의 9명과 후의 3명으로 나누어보자.

9명의 선지자 중6명은 민족적 문제, 즉 히브리 민족이 직면해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 민족적 문제를 말한 6명의 소선지자들은 세개의 특별한 시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모스, 호세아, 미가는 앗시리아의 침공이 원인이 된 첫번째 격동기와 관련된다.

아모스는 멸시받는 농부였고 평범한 시골 사람이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들의 왕궁에 예언하러 보내졌다 그러나 유다를 포함한 주위의 작은 국가들을 비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곧 사마리아의 죄도 철저히 비난해 미움을 받는다.

미가는 평범한 국경지대 사람이었는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선지자들, 백성들, 제사장들, 왕들 모두가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호세아는 가정적 재앙이 이스라엘 국가의 재앙을 보여주는 슬퍼하는 아버지였다.

스바냐와 하박국은 바벨론 침략으로 시작된 두번째 격동기와 관련된다. 그들은 유다를 향해 말했다. 경건한 왕 히스기야의 현손인 스바냐는 왕 같은 선지자였다. 선한 왕인 요시야 시대에 활동했고 그 시대에 일어난 종교적 부흥을 도왔다. 그러나 그도 그리고 그의 동시대인이었던 예레미야도 국가의 배교와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박국은 당황해하는 선지자였다. 그는 긴급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바벨론 침공을 보면서 유다의 죄가 처벌되어 마땅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불의한 민족을 처벌하시기 위해 더 불의한 민족을 사용하실 수 있는가? 이 문제와 씨름하면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재앙이 멀지 않음을 분명히 선언한다.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게 될 최후의 격동기에 초점을 맞춘 소선지자는 요엘이다 그의 짐은 주의 날이었다. 그의 환상은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지만, 그의 환상은 이 사건을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말하고 있다.

9명의 바벨론 유수 이전의 소선지자 중 3명은 이웃 나라와 관련된다. 이들 중 2명은 무적처럼 보이는 무서운 도시 니느웨와 관련된 설교를 한다.

요나가 먼저 이 성읍을 쳐서 예언하나 그가 말한 심판은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훔이 다시 200년 후에 설교하고 그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된다.

이제 남은 선지자는 오바댜이다. 그는 난공불락의 성, 에돔의 요새인 세일을 쳐서 예언한다. 에서와 야곱 사이의 적대 관계 때문에 에돔와 이스라엘 사이에도 오랜 세월 동안 적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에돔 사람은 기뻐했고 도망가는 유대인을 붙잡아 느부갓네살 군대에 넘겨주기까지 했다. 오바다는 에돔의 불가피한 멸망을 예언했다.

남은 3명의 소선지자들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바벨론 유수 후에 예언했다. 이 중 학개와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귀환(歸還)을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그 땅으로 들어가는 어려움을 감행하는 선구자들 편에 섰다.

학개는 하나님의 성전과 관련된다.  그의 정열적인 설교의 결과, 오랫동안 방치된 성전이 마침내 완공되고 봉헌된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진리에 더 관심을 쏟는다. 그는 묵시록적 환상을 받은 선지자이다. 그 환상 중 일부는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또한 메시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을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범죄를 예견했다.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다시 타락케 될 것을 말한다.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면서 우상숭배에서 치유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대신 다른 죄를 범하게 된다. -성소를 더럽힘, 불경스런 말, 마술, 음행, 사기, 학대 등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말라기 시대의 형식주의는 마태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서 그 극에 달한다. 이렇게 말라기가 구약을 마감하게 된다.  즉 창세기의 축복으로 시작하여 말라기의 저주로 끝난다.

 

신약

4개의 개략적인 전기, 하나의 짧은 역사 요약, 21개의 편지(그 중 일부는 메모보다 약간 더 긴 정도이다), 그리고 하나의 짤막한 예언적 요약 속에 신약의 소중한 교훈이 담겨 있음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이다. 신약의 대부분은 편지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편지인 로마서는 한 용감한 여자가 수 마일의 위험한 여정을 지나 가져갔다.

후대에까지 커다란 무게가 나가는 서류가 편지 형태라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듯 보이나 사실 그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신학교에서 연구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경험해야 하고 매일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의 책들을 개관해 볼 수 있는 한가지 방식은 주요한 강조점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그리스도인의 믿음, 형제들, 행위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

신약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불멸의 진리는 무엇인가? 믿음의 필수요소는 무엇인가? 14개의 글들 중 어떤 것은 본질을, 어떤 것은 토대를, 어떤 것은 잘못 된 것을, 약간은 미래를 다룬다.

 

토대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신약의 기본 진리는 이 5권의 책에 담겨 있다. 신약의 다른 부분을 빼내버리면, 기독교는 빈약하게 된다. 그러나 이 5개의 어떤 것을 빼버리면, 기독교가 불가능하게 된다.

4복음서에는 사실이, 로마서에는 믿음이 나와있다.

4복음서에는 삶이 예시되어 있고, 로마서에는 논리가 설명되어 있다.

4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와있고, 로마서에는 기독교의 원리가 나와있다.

4복음서에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가 나와있고, 로마서에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가 나와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제시한다. 세리와 무명의 인물, 의사, 어부였던 이들을 불러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책을 쓰게 하신 분은 누구인가?  4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전기가 아니라 생애의 메모에 더 가깝다.

마태는 주로 유대인을 위해, 마가는 로마인을 위해, 누가는 그리스인을 위해, 요한은 교회를 위해 썼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치자, ,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한다. 처음 3복음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비슷한 관점에서 제시하기 때문에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 불리운다. 요한복음은 다른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제시하므로 보완적 복음이라 불리운다. 공관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겉으로 나타난 갈릴리인으로서의 공공사역과 주 예수의 인간성이 나타나 있고, 요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내적인 유대인으로서의 개인적 사역과 주 예수의 신성이 나타나 있다.

4복음서는 유일하신 분에 관해 말한다.(1) 그분의 동정녀 탄생,(2) 죄없는 삶,(3) 셀 수 없는 기적,(4) 중요한 가르침,(5) 대속의 죽음,(6) 승리의 부활,(7) 영광스러운 승천.

로마서는 기독교의 원리를 제시한다. 이는 바울의 복음이다. 바울은 복음서의 사실을 취해서 복음을 믿음으로 변형시킨다. 4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오래 전에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어떻게 주셨는지 이야기하고, 로마서는 지금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자기 생명을 주시는지 말한다. 로마서는 죄, 구원, 거룩, 주권, 섬김의 교리를 다루고, 핵심어는 66번이나 나오는 의()이다. 로마서는 어떻게 의가 요구되고, 받아들여지고, 재생산 되는지를 말한다.

이 책들이 기초를 이룬다. 사단은 틀림없이 이 책에 도전해 올 것이다. 1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있을 때 벌써 사단은 교회에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이단을 집어 넣었다.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이 집중 공격이 사도들의 생애 동안 일어나자 사도의 권위로 잘못된 면들이 다루어져 신약의 다음6권에 기록되었다.

 

잘못들 - 갈라다아서, 골로새서, 히브리서, 고린도후서, 디모데후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진리에 대한 공격은 두 개의 주요한 원리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공격과 진리에서 배교함. 공격은 나쁘지만 배교는 더 나쁘다. 이 서신 중 넷은 진리에 대한 공격이다.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히브리서는 기독교의 기본적 가르침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다. 이들 책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논쟁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중대한 진리가 공격받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다루어주지 않으면 기독교를 파멸시킬 수 있는 잘못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이 세 개의 잘못은 율법주의, 영지주의, 유대주의이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를, 골로새서는 영지주의, 히브리서는 유대주의를 다룬다.

율법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공격하고, 갈라디아서가 이에 대답한다. 초대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하고 이방인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되었는데 즉 할례를 받아야 하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레위기의 음식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요구는 예루살렘을 교회의 어머니로 만들고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만들게 된다. 대다수의 이방인에게 의식과 규칙을 강요함으로써 믿음을 질식시켜 버릴 것이다. 더군다나 율법주의는 성령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갈라디아서는 이같은 잘못을 단호한 용어로 다룬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공격하며 골로새서가 그에 대해 답변해준다. 영지주의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험하고 미묘한, 신비주의를 유대주의적 요소, 주지주의(主知主義), 의식주의 등과 결합시킨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특히 치명적인 공격을 하게 된다. 물질을 악하다고 믿는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그리스도가 일종의 천사같은 존재로서 신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물질로 된 몸을 입을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고 믿는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 이단에 관한 진리, 그리스도인에 관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를 우주의 창조자로서, 보존자로서, 소유주로서 절대적 신성을 가진 분이라고 위엄있게 선언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유대주의는 교회의 합법성을 공격하며, 히브리서가 피에 대답한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들에게는 유대주의가 폐기되었고, 교회는 유대주의를 단순히 확장시킨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교회는 성전과 회당의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결코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었다.  히브리서는 갈보리의 빛으로 구약을 조사해 보고 유대주의와 기독교를 타협 시키려는 시도가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우월함, 갈보리의 우월한 규정, 기독교의 우월한 원리들을 제시한다.

3개의 편지가 기독교의 기본적 가르침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진리에 대한 공격을 다룬다.

네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사인 사도 바울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들을 영구히 기록된 형태로 제시했다. 유대인이며 그리스도인인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매우 싫어했다. 그는 매우 철저하게 이방인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미워하고 핍박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권익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고,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인격에 대한 공격을 다룬다. 가장 자서전적 요소가 많은 이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 회심, 비판에 관해 말한다.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변덕스러우며, 교만하며, 자랑하며, 부정직하며 심지어는 미쳤다고 공격했다. 사람에 대한 이런 공격은 그의 메시지에 대한 공격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열심히, 강력하게, 노련하게 방어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4개의 서신서는 진리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고, 나머지 3개는 진리에서의 배교를 다룬다. 공격은 좋은 약품을 처방함으로써 다룰 수 있으나 배교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

배교를 다루는 3개의 서신서 중,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는 배교의 전개 과정을 다룬다. 이 서신은 바울이 처형을 앞두고 로마에서 보낸 목회서신서이다. 이 서신의 목적은 디모데에게 그를 끌어당기는 많은 힘들에게 굴복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기독교계를 덮칠 마지막 배교를 이 서신의 핵심 구절이 다루고 있다. 바울은 이 다가올 배교가 부모에 대한 불순종, 자연스런 감정의 결핍, ‘고통하는 때의 모습, 악한 사람들의 무절제한 죄악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2개의 서신인 베드로후서와 유다서는 배교의 위험을 다룬다. 이 두 서신은 이 주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룬다. 하나님께서 배교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고 배교의 결과가 무서운 죄악임을 지적하고 배교로 사회 전체가 타락함을 보여주기 위해 두 서신 모두 과거 역사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항상 배교한 사람을 끔찍스로운 재앙으로 심판하셨음을 두 서신서가 보여준다.

 

미래 -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요한계시록

마지막 때의 연구라 할 수 있는 종말론은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신약의 3권이 종말론을 다룬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휴거를 다룬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두번째 오심이 각 장()마다 나와있으나 중심 주제는 공중에서 주()를 만나러 교회를 불러내는 것이다. 이 사건은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일어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돌아오심을 다룬다. 네 개의 환상이 주요 내용이다: 하나님의 환상, 은혜, 통치, 영광.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다양한 순서에 따라 행동이 취해진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세상은 사람에 의해 멸망당하고 사단에 의해 통치되고, 하나님에 의해 구해진다. 이 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이 순서를 따라 나타나는 행위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도인 형제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5권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음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한 권은 교회의 기원, 두 권은 교회의 기능, 두 권은 그 담당자를 다룬다.

 

교회의 기원-사도행전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역사적이며 일시적이고, 복음서와 서신서를 잇는 다리이다. 서신서의 많은 부분이 이 책이 없으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교리라기 보다는 역사적이므로, 교리보다는 정보를 구해야 한다. 교리는 서신서에서 찾아야 한다. 사도행전은 3명을 중심으로 한다.(1) 베드로,(2) 스데반,(3) 바울. 교회의 토대는 베드로와 관련되어 있고, 교회의 발전은 스데반, 교회의 이방전도는 바울과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로 끝나며, 유대인으로 시작하여 이방인으로 끝나며, 좁은 다락방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이르는 것으로 끝난다. 이 책은 바울의 3번의 전도여행을 기록하고 있고, 시간적으로는 약 30년 즉 한 세대에 해당되며, 그 기간 동안 수천명이 회심한다. 물론 이 책이 진정 강조하는 것은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28장에서 58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교회의 기능-고린도전서, 에베소서

고린도전서는 지역적 관점에서, 에베소서는 우주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룬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어떤 특정 사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회, 즉 교회 공동체가 나온다. 고린도에 있는 지역 교회는 은사가 있는 믿는 자들의 모임(Assembly)이었다. 그러나 매우 세상적이었고 바울과 관계된 교회 중 가장 육신적이었다. 교회 안에 분열이 있었으며, 도덕과 관련된, 그리고 돈과 관련된 심각한 무질서가 있었다. 또 어려움도 있었다. 즉 믿는 자의 개인적인 행위와 관련된 문제-특히 결혼, 우상의 제물-가 있었고 또한 예배와 관련된 문제-주의 만찬상에서 은혜를 남용하고, 방언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것-도 있었다. 또한 불신도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했다. 이 모든 잘못된 것을 다룬 후에 바울은 지역교회 내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행할 것인가를 이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 가르쳤다.

고린도전서와는 대조적으로 에베소서는 우주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룬다. 지역 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축소판이어야 한다. 아무도 우주적 교회를 본 사람이 없으며, 휴거시 교회 전부가 들려 올리울 때까지 아무도 우주적 교회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서신서에 언급된 우주적 은사-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 구체적으로 든 예화도 역시 우주적이다. 건물, , 신부.

 

교회의 직분-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지역 교회에서의 인도에 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두 종류의 인도자가 묘사되고 그들의 자격은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다. 그 자격은 영적인 자격이다. 장로는 지역 교회의 영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집사는 세속적인 문제에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우리가 신약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한가지는 기독교는 실제적이라는 점이다. ‘행동이 있는 믿음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다. 신약의 남은 7개의 서신은 이 진리를 다룬다. 모든 서신서가 여기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을 다루지만, 특히 다음의 서신서들은 특히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을 다룸-빌립보서

이 서신에는 4개의 기본적 상황이 나온다. 고난, 희생, 봉사, . 네 개의 예가 주어져 있다. 바울, 그리스도,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비록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 서신서는 기쁨으로 넘치고 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심하게 매를 맞았지만 그와 동역자 실라는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바울이 갇힌 것을 말하면서 그 대목에서 기쁨을 말할 때 빌립보 모임에서 최소한 한 명은 큰 소리로 아멘했을 것이다. 그 빌립보 감옥의 구원받은 간수.

희생의 본으로 바울이 제시하는 분은 주 예수님이다. 성경의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후의 영광에 관한 가장 위대한 선언인 갈보리로 바울은 우리를 데려간다.

디모데는 바울의 가장 충성스러운 조력자였다. 에바브로디도는 모든 병이 치유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치유가 이 시대에 보상의 필수적인 부분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이 그에 관해,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도움이 되기를 열망했다고 말할 때,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노예 제도를 다룸 - 빌레몬서

바울 시대에 가장 커다란 사회 문제는 노예제도였다. 빌레몬은 노예를 소유했고 그의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도망가 로마에서 바울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다시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내져 자기가 한 행동의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서 노예 문제에 대한 바울의 대응은 사회적이 아니라 영적이다. 그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인의 형제로 생각하고 그를 바울 자신처럼 대접해 달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이같은 태도가 사회적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성실성을 다룸-야고보서

모든 서선서 중 야고보서가 산상수훈을 가장 많이 닮았다.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었고 후에 구원받았다. 그는 엄격하고 거의 바리새적인 견해를 가진 금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서신이 아마도 신약서의 맨 앞에 있었던 것 같고, 그의 청중은 주로 유대인이었다. 그는 모든 신앙고백이 명백한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그렇다고 야고보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만, 행함으로 사람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점을 야고보는 지적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믿는 자에게 회심의 증거를 요구한 것이다.

 

고난을 다룸 - 베드로전서

주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 성경은 믿는 자에게 고난을 면제 시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고난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죄나 어리석은 행동으로 고난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이 베드로가 다룬 주제였다. 이 서신은 아마도 네로 황제의 핍박 시기에 살았을 것이다.

 

아들 됨을 다룸-요한일서

요한의 모든 서신들은 그리스도인의 제1세기가 다 된 시점에서 기록되었다. 서신을 쓸 당시 늙은 노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냈던 그 놀라운 시기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의 의미를 요한은 곰곰히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가 살던 당시에 이미 이단들이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즉 영지주의가 무시해버릴 수 없는 문제거리였다. 요한일서의 주요 핵심은 거듭남과 그리스도인의 교제이다. 바울이 특징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면 요한은 빛, 사랑, 생명을 특징적으로 썼다. 요한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단지 신학적 입장이 아니라 진지한 문제였다.  즉 그리스도냐 적그리스도냐, 구원이냐 저주냐 하는 문제였다.

 

분리를 다룸-요한이서

요한이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은 어떤 그리스도인 자매(어떤 사람은 교회라고 생각한다)에게 그녀의 아이들이 모범적 행동을 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졌다. 요한은 이 훌륭한 자매에게 불화를 일으키고 악한 교리를 가진 사람을 집에 영접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선이 이단까지 돕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분쟁을 다룸-요한삼서

요한삼서에는 3명이 나온다. 가이오의 번성, 데메드리오의 칭찬, 디오드레베의 교만이 나와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지역모임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사랑 받은 사도 요한에 대해서도 악한 말을 했다. 사도 요한은 다음에 만나면 그를 다룰 것을 약속한다. 이 서신은 분쟁과 거기에서 자라나오는 교만한 마음을 경고하기 위해 쓰였다. <다음 호에 계속>

 

(1997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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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