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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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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3. 19:45 횃불/1997년

나는 어떤 교회와 함께 해야 하나요?

 

어떤 교회와 함께 할까요? 혹은 어디서 누구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나누어야 할까요?” 사실 이는 매우 중요한 논제입니다. 저는 이점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상당한 비췸을 받은 줄 알고 기쁩니다. 구원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위해 교회 안에서의 친교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인도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 점에 대한 여러분의 결정은 여생을 두고 선악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어디서 누구와 어울리든 거리낌없이 원만한 관계만 유지된다면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 문제를 스스로 처리해 버립니다. 이를테면 기존에 다니던 교회에 다시 나가거나 부모님들이 다니는 교회를 선택합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숙고해 볼 열린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이 문제에 대하여 확고한 뜻을 두고 계십니다. 그분의 백성 된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발견하고 머뭇거림 없이 행동으로 옮길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어떤 교회와 함께 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전적이고도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조언은 소용이 없습니다. 경건한 부모님들의 권고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해답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 문제를 단순하고도 용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게 비춰주신다면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사귐을 나누어야 할 지에 대한 변론은 끝납니다. 

나의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께서 내게 무어라고 말씀하시는가에만 주목하십시오. 당신이 어디에 있어야만 하고 어디로 가면 안 된다고 그분이 가르치십니다.  아무리 많은 장애물이 당신을 거스리고 또한 실패와 넘어짐이 주위를 엄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곳에 견고히 머무를 양심과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릴 증거를 당신의 영혼 속에 간직해 두어야만 합니다. 그 어떤 것이 당신의 올바른 선택을 가로막겠습니까? 당신의 영혼 속에 그분의 증거가 있고 그분이 당신 편에 서신다면 당신은 이미 사자와 같이 담대해진 것입니다. 세상과 음부가 당신을 얽어맬 수 없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성경을 펼치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며 교회는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지는가를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이점에 유의할 때 참여 및 친교와 관련하여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Church)란 단어는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건물의 이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명칭은 항상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되며 그 의미는 불려냄을 받은 무리들이란 뜻입니다. 사도행전 20:28은 증거합니다.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다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5:25)고 했습니다. 이같은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건물을 위하여 피 흘리시고 사랑하신 것이 아니요 교회”(불려냄을 받은 무리들)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누구의 것이며 그것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 산 바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떤 국가나 사람 흑은 교리의 소유이거나 산물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보혈로 산 바 되었고 그분의 영원하신 사랑의 대상입니다.  좋은 진주를 취급하는 상인처럼, 그분은 귀한 진주를 발견하고서 그분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것을 샀습니다. 그분의 신부로서의 교회를 취하시고 그분의 영원한 영광을 공유하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교회는 신약(구약에는 예표적인 모습을 제외하고는 교회에 관한 언급이 없음)에서 몸, 성전, , 신부, 성 등으로 표현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이며 어린양의 신부이자 거룩한 성입니다( 2:22,23, 고전 3:16, 딤전 3:15, 21:29). 몸에 관하여는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가 되십니다.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1:22).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18).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듯이 교회는 그분에게 복종합니다( 5:23,24). 

 

교황이나 대주교 혹은 어떤 교단이나 종교단체라 할지라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한 입법권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외에 칙령이나 교서 및 교회법 등을 만들어냄으로 교회를 그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들에게 복종시킬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머리되신 그분께서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심으로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양육하고 유지하며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교회의 각 지체들과 함께 하심으로 이들을 살아계신 머리와 연합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모든 필요한 것들이 구비되어 있는데 다른 그 무엇이 더 요구된다는 말입니까?  머리가 오직 하나이듯이 몸도 오직 하나입니다( 4:4). 몸 된 교회는 지위나 재능이 다른 여러 지체들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이지만 눈과 손과 발이 각각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니라”(고전 12:20)”.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23). 지체들의 연합은 주님아 이루시고 또한 그분에 의해 유지됩니다. 결코 사람이나 교단을 중심으로 성사되거나 방해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종파를 만들어 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할 몸된 교회의 연합을 간과하거나 부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결코 온전한 연합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인간의 온갖 실패와 분파주의에도 불구하고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동서남북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이름과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든지 말입니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속죄함을 얻었고 동일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며, 동일한 전능자의 사랑의 손길로 보호하신 바 되었습니다. 또한 세세토록 영광스러운 동일한 본향(하늘나라)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거듭난 성도들은 서로 연합된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래로 이제는 복음의 전파를 통하여 세상의 많은 나라로부터 불려냄을 받은 무리들로서, 이들은 세상적이고도 인위적인 전통이나 조직 및 지배자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된 거룩한 교회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교회는 완성되고 그분께 드려질 것입니다. 

이 몸과 관련해서 당신은 그 지체가 되었고 이미 그것에 참예한 바 되었습니다. 당신 자신은 교회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거듭난 이래로 영원히 그러합니다. 할렐루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들은 지역교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준엄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10:25). 거듭난 자들은 서로가 한 몸의 지체임으로 동일한 삶의 보금자리에서 다른 지체들과 사귐 가운데 거하기를 갈망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된 삶이어야 합니다. 죽은 자들은 지역교회 내에서 어떤 몫이라도 공유하지 못합니다. 생명과 죽음 그리고 빛과 어두움은 서로 조화될 수 없습니다. 확실히 그 어떠한 면에서도 말입니다. 생명 있는 자들과 생명 없는 자들이 섞여 있는 교회 내에서 진정한 사귐이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함께 하는 일을 그분은 금하십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전 6:1417).

 

세상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밭은 세상입니다. 결코 교회가 아님을 유의하십시오- 13:38).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구원 얻지 못한 사람은 설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외인(外人)일 뿐입니다(살전 4:12, 4:5). 

하나님의 교회는 시작부터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지역교회들을 대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8:1), 고린도 교회(고전 1:12), 갈라디아 교회( 1:2),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 4:15). 이들은 모두 믿는 자들, 즉 오직 거듭난 자들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구주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함에 모여 거룩한 사귐을 나누었으며 이는 지금의 우리들도 견지해야 할 모범입니다. 믿음이 연약함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더라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면 누구이든지 이들은 받아들이고 용납했습니다( 14). 이와 같은 일에 어떤 제한을 두었더라면 당시에도 지금처럼 종파가 생겨났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모임(Assemblies :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교회의 의미를 적절히 나타내주고 있음-역주) 내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고전 14). 안식 후 첫날에 주의 만찬 예배를 드렸지만( 20:7) 만찬상 머리에 성직자나 장로들이 앉아서 예배를 주관하였다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바 은사를 따라 사도와 선지자 및 교사들로서 섬겼지만 자신들을 위한 성직자들을 추천하거나 선출하거나 임명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면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몸 된 교회를 돌아보게 하고 치리하게 할 목적으로 교회 안에 인도자들(장로 혹은 감독자- 14:23, 1:1, 딤전 3, 벧전 5:14)을 세우셨습니다. 이들은 그릇된 길로 나간 성도들을 경건함으로 훈육했으며 또한 잘못된 진리나 교훈을 전하거나 음행에 젖은 자들을 출교시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몇 가지 내용들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의 특징적인 모습들입니다. 참된 교회의 본 모습은 주님이 오시기까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교회 안에서 뭔가 새로운 규율이나 친교 형태를 만들어낼 권리가 없습니다. 다만 뭇 영혼들이 구원함을 얻도록 매일 새로운 삶을 열어갈 뿐입니다.  누군가가 진실로 거듭나 구원함을 얻었다면 나는 어떤 교회와 함께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주어진 셈입니다. 주님에서는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각 지역마다 그분의 지역교회를 세우실 것이며 거듭난 사람은 그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유월절 날의 예루살렘에는 한 다락방 안에 일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삼천 명이 넘는 제자들이 이 교회를 통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144). 이와 같은 영적 부흥은 특별한 경우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5:13). 

 

교회 내에 거듭나지 못하거나 죽은 지체들이란 없습니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감히 상종할 수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5:13). 하나님의 이름은 불렀지만 외식과 위선 가운데 깨달음이 없었던 저 유대인들은 대제사장과 그 동료들의 지시를 따라 성전에서 자신들의 종교행위를 수행했습니다. 그 종교 행위의 결과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드님을 저주하며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관한 깨달음이 없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거듭난 지체들은 거듭나지 못한 무리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알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사도 바울이 주님의 제자들을 찾아감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영접된 것처럼 당신도 근본적인 변화와 거듭남이 있어야만 합니다. 당신이 이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수없이 많은 종파들이 지구상에 퍼져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이 함께 섞여 공존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영혼들이 눈을 들어보지만 당시와 같은 성경적인 교회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창시자나 신조 및 나라를 따라 명명된 분파들이 연이어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월적인 힘에 동의해버렸습니다. - “누가 더 크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요점입니다. 또한 냉정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가장 단순한 해답은 이렇습니다. “교회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성경은 가장 모범적인 해답입니다.  

 

문제점을 더 살펴보기 원합니다. 주요 교회들은 상당히 핵심을 비켜나갔습니다. 그들은 변화 받지 못한 영혼들이 주의 만찬에 참예하도록 묵인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점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찾아가 분명하고도 정당한 질문을 제기해 보십시오. “당신은 진실로 거듭났습니까?” 그러면 사실이 드러납니다. 교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성직자를 선택해 두었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분명코 변화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한 사람이 세움을 입고 전도자와 목사 및 교사로 활동하며, 때문에 고정된 보수를 받습니다. 간단히 말해 오용되어 영혼들의 모든 종교생활을 주관해 버립니다. 모든 기도와 찬송과 가르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공중 예배 때 입을 열어 말하며 기도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출교까지 고려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성직자를 통해서만 역사하시거나 전혀 그렇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존귀함이 그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사도들을 모방하여 한때 안수를 받음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또 침례 예식을 교회에 들어오는 요건으로 삼음으로 경배에 있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섬김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는 일을 가로막습니다. 이는 분파주의적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멉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조직체나 본체를 정점으로 모이며, 따라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거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습니다. 

이는 심히 분파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책망 받을만 합니다(요삼 10).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만 할까요?” 악으로부터 벗어나 최소한의 것이라도 선택하면 안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안에서의 사귐과 질서 가운데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무리들을 찾아 나서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18:20의 말씀대로 주님은 이들과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종파나 분당을 떠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명칭이나 신조 및 전통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첫 가르침 안에 견고히 머무릅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구호나 명칭이 없으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사모할 뿐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주신 모든 은사를 활용하며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주어지는 자유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유일한 신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명하는 바이며 초대교회들이 지켰던 근본입니다. 

이와 같은 모임들은 소수의 양무리 일 수도 있으며 이들을 에워싼 수많은 종교적 식견가들에 비하여 가난하고 얕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위의 많은 교회 안에도 성도가 존재하는 한 거듭난 분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나치게 자부해서는 안됩니다. 이들도 하나님과 친밀하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동일하게 소유했기 때문에 형제로서 사랑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조직 안에 섞여 있다고 하지만 이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한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올바른 사귐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사귐 가운데 거하도록 합시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면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심어 줄 수 있고 또한 이들과의 동행하는 삶의 길도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들 개인적으로 그렇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1997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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