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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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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3. 19:39 횃불/1997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기숙(신림동교회)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7:2).

 

누구나 한번쯤은 막연하게나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살만큼 살다가 언젠가는 죽어 한 줌 흙이 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인정하기 힘든, 그러나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 앞에 심각할 만큼 두려워 떨었던 경험이 있다.

열한 살쯤 되었을 나이인데 어린 마음에도 인생이 끝나버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허무하게 여겨졌던지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들로 그 긴긴 겨울방학을 우울하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10년 후, 주님을 영접하기까지 이 해결되어지지 않은 두려움은 가끔씩 반갑지 않는 손님처럼 나를 찾아와 끝없는 어두움 저 너머 공허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곤 하였다.

이런 두려움은 주님을 영접하기 한달 전쯤에 더욱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주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지난 후에 생각해 보니 내게 그러한 두려움이 없었더라면 교만하고 둔하디 둔한 내가 과연 주님을 영접할 수 있었을까, 흑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아무런 수고 없이 오직 은혜로 얻은 이 영생의 참 기쁨과 가치를 모르고 세상을 기웃거리며 살아가고 있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를 해 보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전도서 말씀처럼, 일찍이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나마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을 천만다행한 복으로 여기며 주님께 감사한다.

1990, 이미 어느 지역 모임의 지체로 영접되어 주님을 섬기고 있던 언니를 따라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주일학교를 진지하게 얼마간 다닌 적이 있던 나는 기복신앙 정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언젠가는 합당한 교회를 다시 찾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서울에 사는 오빠나 언니들이 하나, 둘 구원받고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기회가 되면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6남매 중 막내인 나는 당시 모임이 세워지지 않은 지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음).

그러나 막상 상경해서 언니가 다닌다는 교회를 참석했을 때, 나는 마음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생겼다. 내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성도)이 들려주는 하나님은, 어릴 적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언제라도 달려가 안기면 반가이 나를 품어주실 그 하나님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내가 자백해야 할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나는 그들이 나를 구도자라 부르면서 지옥을 강조하고 구원을 강요(?)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움과 부담이 되었다.

깨닫지 못한 내가 보아도 성도들이 드리는 성만찬 예배가 아름답게 보였고 성도들의 언행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이 느껴졌지만, 그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다. 그렇게 닫혀진 마음이었지만 일말의 관심은 있었기 때문에 언니의 청에 못이기는 척 드문 드문 모임을 출입하면서 복음을 들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이제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해 일단 마음을 움직이고 보니, 이들은 진심으로 내 영혼을 염려하며 내 불신과 고집에도 인내로 참고 위로의 교제를 해 주는 자들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들과의 사귐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모임에서 하는 복음집회로 나를 인도해 교제할 수 있도록 힘써 주었고, 나의 마음은 점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것과, 내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다 씻음 받았다는 것을 감히 부인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에 관한 확신이 없었다.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내 속만 들여다 보고 있었던 나는 어느 순간에는 믿는 것 같았지만 하룻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감히 믿었노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어느 형제님이,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는 내 상태는 교만때문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비록 내 입술은 부인하나 내 양심은 결코 부인되어지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내가 교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러다가 영원히 끊어버려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확신이 없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주님은 날 버리지 않으셨다. 나의 가장 연약한 점을 이용하셔서 교만한 나를 다루셨다. 복음을 듣고 더더욱 두려웠던 것은 혹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지옥 때문이었다. 죽는 것도 두려운 일인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이 기다리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입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미 영혼은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 모를 요즘같은 세상에 나 또한 그 사고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심히 두려웠다. 주님을 영접하기 한달 전쯤에는 길을 건널 때는 양옆을 몇번씩 확인한 후 건너야 마음이 놓였고, 건물 안에 있을 때는 이러다 건물이라도 내려 앉으면 어떡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겁을 먹곤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잠을 청할 때였다. 잠들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깊게 잠들지 못하고 가위눌림 당해 깨곤 하였다. 그런 후에 다시 잠을 청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나는, 비록 확신할 수 없는 하나님께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심령이 되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92년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기대를 갖고 참석한 수양회였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되어도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10:32,33)는 말씀이 집회 중에 자주 생각나고 그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무정한 입술은 그 음성을 애써 외면한 채 침묵을 지켰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9,10).

이 말씀도 내 귓전을 맴돌며 주님을 시인하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손에 난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손으로 만져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겠다고 한 도마처럼 당신이 살아계시다면 더 확실한 말씀을 주세요라는 교만한 기도를 드리며, 고집스럽게 주님을 시인하지 않았다.

수양회 마지막 날 복음말씀 시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임을 알면서도 기회는 또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구원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지만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집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주님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으셨다.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할지 몰라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집회가 끝나갈 바로 그 순간, 머뭇거리며 미루려는 심령에 그분의 분명하고도 날카로운 말씀을 꽂으셨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 하느니라”( 19:24).

강사 형제님께서 마지막으로 펴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분명 책망하는 말씀이었다. 분명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고 나는 이 말씀 앞에 더 이상 목을 곧게 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말씀이었다.

주님 앞에서 나의 생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내 마음에 참 평안의 물고를 트는 순간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내가 괴로워하고 고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다 차려 놓으신 구원의 식탁에 앉아 감사함으로 음식을 먹는 수고만 하면 되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수고만 하면 되는 것을····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과 처음으로 말씀에 순종해야겠다는 강한 동기로 받은 말씀 따라 성도님들 앞에서 주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했다.

 

비로소 나는 주님의 확실한 말씀 앞에 어린 아이와 같은 낮아진 심정이 되었고, 내 교만 때문이었지만, 마치 길 잃고 헤매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서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생을 얻었다는 안도감과 감사와 기쁨이 마음에 교차하면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을 경험했다.

그 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만난 주님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욕심이나 악한 생각, 생활의 염려 따위가 날 주관하지 못했다. 오직 주님과 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 그 어떤 자극과 시험이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지 못한, 그야말로 꿈같은 날들이었다.

그러나 내 옛 성품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삶의 염려와 어려움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하는 시험과 연단이 찾아왔다. 이런 시험과 연단들은 주님을 영접한지 다섯 해가 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주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모난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지는 연단의 아픔은 계속되겠지만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분의 공의와 성실하심으로 나를 돌아보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사실 지난 날도 그러했듯이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다만 주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을 끊임없이 구하며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도록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며 그분의 능력으로 채워주실 것을 날마다 구하는 것, 이것이 연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남은 삶 동안 주님께 더욱 기쁨이 되는 자가 되고 싶고, 더욱 간절한 소망은 속히 주님 얼굴을 마주 대하여 뵈옵는 그것이다

 

내 부끄럽지 않는 단 한가지 소망은

나의 주님 속히 뵈옵는 것,

내 마음 눈에 성령의 등불 밝히시어

주님 뵙게 하셨지만

이 땅에서 빛과 어둠을 함께 좇는

나의 마음

주님 모습 희미하게 비췰 뿐

주님 나라, 영원한 밝음만이 있는

그곳에서

썩지 않을 이 두 눈으로

속히 주님 뵙길 원합니다.

 

(1997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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