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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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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7. 20:00 횃불/1997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9)

죤 필립스

문맥의 법칙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을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문맥 없는 성경 본문은 핑계일 뿐이다.”  거의 모든 잘못된 가르침은 문맥을 무시한데서 나오며, 따로 떼어낸 증거 구절은 비성경적 견해를 지지하기 위함이다.

성경의 한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쓰여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14:1). 나는 언젠가 네가 거듭나야 한다는 구절을 들어 환생을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을 가지고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사단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구절을 문맥에서 떼어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사단도 성경을 인용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하였느니라”( 4:911). 이 때 사단은 시편 91:1113을 인용했으나, 시편 기자가 쓴 내용은 사실 이런 의미이다 하나님이 그 천사들로 너의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네가 달릴 때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으로 붙들어주며,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을 것이다.”  사단은 문맥을 무시하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주의를 요하는 3가지 문맥이 있다.

 

1. 바로 앞뒤의 문맥이 있다.

그 구절의 의미를 알려면 주위의 장, 절을 살펴봐야 한다 문맥을 읽어보면 그 구절의 뜻을 알 수 있다. ()이 끝나거나 삽입구가 끼어 있어서 올바로 문맥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7:53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로 되어 있고 7장이 거기서 끝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거기까지 읽고 만다. 8:1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로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읽어야 한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그래야 더 많은 함축된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 16:28도 마찬가지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여기서 장이 끝난다. 그러나 17:1을 계속 읽어 나가면, 이 난해(難解)구절이 설명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17장은 예수님의 변형(變形) 이야기이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오며, 교회시대의 성도를 대표하는 제자들이 있고, 이 사건은 천년왕국 때 주님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을 예표하고 있다.

창세기 17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계시를 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문맥이 중요한데 또 장이 끝나버렸다. 창세기 16장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이었더라.” 그리고 창세기 17:1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브람의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곳에서 엘 샤다이’(만족케 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으로 나온다. 이 문맥을 보면 인내하지 못한 결과인 이스마엘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13년 동안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 이삭이 태어날 시기가 온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소생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침묵을 깨고 계시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3개의 비유를 살펴보면서 앞뒤 문맥으로 이 비유를 이해해보라. 누가복음 15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잃어버린 양, 쓸어버린 은화, 잃어버린 아들의 이야기는 특히 세리와 죄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탕자 비유의 부록 부분인 큰아들 모습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제자들도 있었다. 제자들에게 이 비유는 믿음의 비유였다. 세리와 죄인에겐 소망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겐 사랑을 말하는 비유였다.

바울 서신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 이야기의 흐름을 막고 끼어드는 구절들이 나온다 이런 삽입구를 잘 찾아내어 표시해 두고 올바른 문맥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삽입구들은 중요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삽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논의를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5:126:20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경고구절 중 하나이며 삽입구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방금 멜기세덱을 말하고 있었다(5:510). 이 멜기세덱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듣는 것이 둔하다는 이유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7:1에서 다시 이 문제로 돌아온다. 즉 삽입구는 멜기세덱과 관련되어 있고, 히브리서에 나오는 5개의 경고 구절들은 이 서신서의 주요 논제에 삽입된 구절들이다. 이같은 것을 알면 히브리서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구절을 이해하는 데는 바로 앞뒤 문맥을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2. 그 성경구절이 나오는 책 전체의 문맥도 똑같이 중요하다.

이단들이 주로 증거 구절로 인용하는 전도서를 그 중요한 예로 들 수 있다. 전도서의 모든 구절은 항상 전도서 자체의 관점과 목적에 의해 이해해야 한다. 전도서는 해 아래있는 사람의 관점이며, “마음의 근심이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이 세상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람의 좌절과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아마도 그의 잘못 보낸 생애의 마지막에 썼을 것이다. 솔로몬은 자신의 육신적임과 뒤로 물러간 생애의 결과에 환멸과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약함과 세상적인 관점에서 인생의 주요 문제를 살펴본 결과가 전도서인 것이다. 즉 전도서는 세상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본 전망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세상 철학과 야망의 무익함과 단견(短見)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일생이 그 시대와 감각적인 것을 추구했을 때 나타난 절망과 슬픔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진실로 만족하려면 이 세상이 아닌 내세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것이 전도서의 시각이자 목적이므로 이 책의 모든 구절은 이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전도서의 어떤 구절도 성경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명백한 진리와 충돌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도서 9:5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여호와의 증인들이 증거 구절로 즐겨 사용한다), 어떤 사실을 진리로 기록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누가복음 16:1931에 보면 죽은 사람이 매우 많은 것을 알고 있다.

 

3. 우리는 성경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

진리는 점진적으로 계시되므로, 성경의 한 구절을 따로 떼어서 살펴보면 안 된다. 이 때문에 성구사전이 필요하고, 관주를 살펴보아야 한다. 교리, 특정 주제, 예언을 살펴보려면 특히 그래야 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4종류의 침례가 나온다. 전형적인 침례, 세례 요한의 침례, 물 침례, 성령 침례. 성경에서 침례가 나오면 어느 침례를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물 침례와 성령 침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13:33에 나오는 누룩은 중요한 문맥 중에 언급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누룩이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복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누룩과 관련된 다른 구절들을 다 모아 살펴보면 그렇게 이해하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창세기 19:3, 출애굽기 12:8, 12:19, 고린도전서 5:68, 마태복음 16:6,11,12, 마가복음 8:15( 22:12,29)을 보라. 성경에 나오는 누룩이 공통적으로 뭔가 나쁜 것, 특히 나쁜 교훈을 가리키고 있다. 마태복음 13:33에서만 예외로 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그 문맥에서 떼어내 왜곡시키는 언론 매체를 일상 생활에서 자주 대하게 된다. 그런 것은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경력을 망치게 만들 수 있다. 문맥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시간, 장소, 상황을 고려하게 된다. 이 점은 세상 일에서도 중요하고 성경에서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 문맥을 고려하지 않아 왜곡시킨다면 그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는가!

 

(1997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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