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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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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1. 21:38 횃불/1997년

노아 - 그의 생애와 그 시대

 

2: 창세기에서 노아의 위치

창세기는 기원에 관한 책으로서 족보를 강조한다. 사실 창세기에는 11번이나 족보가 언급된다. 혹자는 가족 분류의 일종으로 그것들을 참고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 아름다운 방법으로 성령님에 의해 노아의 매우 산뜻한 기록이 전개되고 있다.

창세기 5장에서 우리는 아담의 계보가 셋을 통해 이어지는데, 그 끝 부분인 28절에 노아의 탄생이 언급되고, 9절에 당시 그의 나이가 500세였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창세기 9 29절에서 그가 구백오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다고 한다.  10장에는 매우 긴 족보가 나오는데, 그의 세 아들들을 통하여 생겨난 후손들을 자세히 언급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두 세대와 그의 두 나이에 대해, 그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전체 이야기를 포함하여 기록케 하셨다.

이에 덧붙여 하나의 저주가 시작되고 역사가 끝난다. 노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라멕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5:29). 노아에 대한 이야기가 라멕의 손자 가나안( 9:25)에 대한 저주로 끝나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 사실인가. 이와 관련하여 시작 부분에서( 5:32) 그의 세 아들이 언급되고, 끝부분에도 언급됨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임종 직전에 노아가 한 것은 그의 세 아들에 관한 축복과 저주였다.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도표화 해보자.

 

● 노아 이야기의 시작

● 노아 이야기의 끝

1

셋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5

1

세 아들과 그들의 행동

9

2

노아의 출생

5

2

가나안의 저주

9

3

저주로 인한 몇가지 위

5

3

950

9

4

500

5

4

노아의 죽음

9

5

그의 세 아들

5

5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

10

 

5장에 나오는 다섯가지 요점 모두가 9,10장에서 거의 정반대의 순서로 병행 된다. 하나님은 이 두 병행되는 내용 사이에 노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놓으셨다. 그 이야기 자체는 세 주요한 사건을 망라하는 것이다.

(1) 방주를 짓는 것과 뒤이은 홍수

(2) 제단을 쌓은 것과 뒤이은 언약

(3) 포도원 재배와 뒤이은 저주

 

이상은 우리에게 어떠한 행위들을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선하든 악하든 그 영향력이 멀리까지 미치게 됨을 가르쳐 준다.

(1) 방주는 여덟 사람을 구원했지만 홍수는 나머지를 모두 진멸했다.

(2) 제단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고, 그것은 또한 지상의 인간을 위한 통치에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3) 포도원은 수고에 대한 현재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지만, 슬프게도 노아가 술에 취하여 수치를 드러내게 하였다. 노아는 그의 두 아들들을 축복하였고 다른 한 아들의 후손에게 저주를 내렸다.

 

이것은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엄숙한 경고가 된다. 이는 마치 연못에 던진 돌 하나로 인해 그 물결이 제방둑 끝까지 퍼져 나가는 것과 같다이러한 원리가 옛날 아담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2).

로마서 14 7절은 우리에게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고 말한다. 주님의 순종하신 한 행위로 인하여(아담의 불순종한 행위로 인한 가계와는 대조적으로) 그 가계에 속하는 모든 이에게 의와 축복이 임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그러한 것이다( 5:1719).

그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시간표를 유의할 때, 방주와 홍수에 관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 기간에 해당하는 날들은 다음과 같다.

(1)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땅에 비를 내려”( 7:4).

(2)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7:4).

(3)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10,12).

(4) “물이 일백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7:24). “물이 일백오십일 후에 감하고”(8:3).

(5)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8:6).

(6)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8:10).

(7)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 하였더라.”

(8) 우리는 또한 노아의 나이가 얼마였는가 하는 시간적인 요인도 주목해야 한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7:6).

이 나이는 11절에 다시 반복된다. 노아의 나이는 8 13절에도 언급된다.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은 방주에 관해서나 홍수에 있어서나 놀랍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 제단은 하나님의 길들을 나타낸다.

(1) 노아는 피의 제사가 하나님께 정상적인것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가인이 무시했던 중요한 것이었다.

(2) 그는 또한 그 제사가 정결한 것이어야 함을 알았다.

(3) 그는 레위기 11장이 쓰여지기 훨씬 오래 전에 무엇이 정결한 짐승인지 분별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길에 친숙했다.

(4) 다시금 하나님의 길들이 노아의 제물에 대해 기뻐하심을 나타내셨을 때 드러나게 되었다(8:21, 9:17).

포도원과 술취한 결과로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 그분의 종이 새 땅의 산물을 남용하고 그 타락된 성품을 나타내어 그 결과로 손자를 저주하는 결과를 초래한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었겠는가? 그것은 방주를 지을 때나 제물을 바칠 때와 같이 어떤 지시함이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노아 자신의 마음에 있었던 어떤 고안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 취하는 자리이며,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역순으로 마태복음 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그 동일한 사상임을 생각할 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광야에서 있었던 첫 시험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것이었다. 주님은 사십일간 금식하셨고 그때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시험을 받았다. 물론 우리 주님은 그것이 하나님이 그분에게 내리신 명령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거절하셨다. 이처럼 사단은 인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도록 시험하였다.

두 번째 시험은 우리 주님이 하나님의 방법()과 모순되는 행위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단은 우리 주님을 거룩한 성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렇게 시험하였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4:6).

사단은 시편 91 11,12절을 잘 알고 인용하였지만, 그는 네 모든 길에서’(in all the ways)라는 문구를 생략하였다마귀는 공개적인 시위를 함으로 무언가 획기적으로 성전에 모인 군중들의 호감을 얻고 그들의 지지를 얻으라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고난의 길이요 겸손과 수치와 죽음의 하나님의 길보다 더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첫 시험에서 그 상황은 이미 존재하였다. 주님은 광야에 계셨다. 그분은 배 고프셨고 아무런 떡이 없으셨다.

두번째 시험은 그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조작되어졌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주님은 그 시험의 미묘함을 보셨고 이렇게 응답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4:7).

세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시간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정해진 때 이전에 무언가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는 시험이었다. 높은 산에 세운 후, 사단은 주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잠시 보여준 후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다 너에게 주리라.” 그것들은 합법적으로는 주님의 것인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씀에서 분명히 진술된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2:8,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신 것임). 마귀는 지금’(now)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그때’(then)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에 주님은 거절하셨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 될 것이다. 계시록 11 15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그래서 방주에서와 제단, 그리고 포도원에서 모든 사람을 시험하는 이 세가지 일이 발견된다. 노아는 그 두가지에서 통과할 수 있었지만 주님은 영광스럽게도 그 세 요소 모두에서 승리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셨다. 그러나 땅에 계신 동안 인자로서 모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 그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길을 따랐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방주와 홍수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6 5절에서부터 8 22절에 이르기까지 전개된다. 그리고 다시금 그 자세한 사항이 역으로 완전한 균형을 이룬다하나님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는가?

첫째로 기억을 돕기 위해서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명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기억했다성령께서 영감받은 기자들을 통하여 그같은 형식과 패턴을 유지함으로 그 긴 구절들을 잘 암기할 수 있도록 돕다니 이 얼마나 은혜로운가!

둘째로, 어떤 병행되는 구절이 없는 진술이나 세부적인 진리를 보다 중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이제 창세기 6 5절에서 8 22절까지의 기록의 경우는 이 병행 구조가 분명히 성령님에 의해 위치되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1) 땅이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찼다. 하나님은 내가 멸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6:521).

(2) 노아가 방주를 짓는다(6:22).

(3) “너와 네 가족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7:1).

(4) 홍수가 임하기까지 칠일을 기다린다(7:710).

(5) 땅에 사십일간 비가 내린다(7:1033).

(6) 물이 땅 위에 백오십일간 있었다(7:24).

(7)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8:1).

(6) 백 오십일 후에 물이 땅위에서 감하였다(8:13).

(5) 사십일간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8:46).

(4) 두 번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내기까지 칠일을 기다린다(8:712).

(3)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다(8:16).

(2) 노아가 제단을 쌓는다(8:20).

(1) 여호와가 내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1,22).

 

다른 세부적인 사항도 마찬가지로 쉽게 끼어 맞출 수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목록 이상으로 길어져서 통제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들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전후에 언급된 노아의 나이에 관한 참고는 반드시 덧붙여야 하겠다(7:11,8:13).

이 대목의 중심 부분은 창세기 8 1절이다. “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사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심판뿐만 아니라 은혜도 있음을 보게 된다. 노아는 하나님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그처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으며 그 분의 아신 바 된 것이다. 주님이 이 세상의 자기 자녀들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계신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1).

사실 이미 천국에 도착한 많은 성도들은 주님께 덜 사랑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의 환란과 갈등속에 처한 성도들에 대해서는 그분이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사라는 대목은 오늘날 고난의 깊은 바다를 통과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의 큰 위로가 된다.

 

 

(1997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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