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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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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3. 17:03 횃불/1998년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8)

 

기독교계

기독교계라는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다양한 생각과 느낌이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복잡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기 때문이다. 자칭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고, 스스로 기독교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못한, 수많은 세례교인들을 즉각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진리에서 떨어져 타락한 무리는 어두움이요 하나의 두려운 변칙이다. 타락한 기독교회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하나님의 교회도아니다. 그것은 부패한 신비주의적인 혼합체요, 영적인 기형이며, 사단의 걸작품이고, 하나님의 진리가 타락해 버린 것이요,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것이요, 덪과 올가미요, 거치는 것이며, 온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도덕적 오점인 것이다. 그것은 가장 최선의 것이 타락한 것이기에 최악의 타락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단이 만들어놓은 거짓 기독교 공동체이다. 그것은 유대주의보다 훨씬 나쁘고, 이교도의가장 어두운 면보다 훨씬 더 악한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외면상 더 차원 높은 빛이 있고, 더 많은 특권을 누리며, 아주 고상해 보이는 신앙고백이 있으며, 매우 훌륭한 강단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엄중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배교자들이요,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남아 있는 쓰디 쓴 찌꺼기일 따름이다. 기독교계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훌륭한 분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서 재가되어 버리는 가운데 가장 밝게 타오르는 부분이 있고, 흙 무더기 속에도 보석이 묻혀있기 마련이다. 기독교라는 용어가 적용되는 허다한 거짓 그리스도인들에 관해서 우리가 그들의 현재 모습을 보든지 혹은 장차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생각해 보든지 할 때, 이 보다 더 소름 끼치게 할 것은 없을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으로 장차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올바른 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진지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타락한 것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거룩하게 분리되고자 하는 필요를 긴급하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변질된 정신과 원칙에 대응하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 다.

주님의 가르침을 다시 살펴보자. 우리가 이미 상고해 본 바 있듯이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계신다. 세 가지의 분명한 주제를 언급하시는데, , 열 처녀, 그리고 달란트 비유가 그것이다. 각각의 이 비유에는 두 가지 상반된 특징이 등장하고 있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과 사단에게 속한 것, 하늘에 속한 것과 지옥으로부터 나온 것 등이다. 가장 엄숙하고 실제적인 교훈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이 세 가지 비유를 살펴보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24:45~47).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역의 근원과 목적을 볼 수 있다.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이 말씀은 사역의 근원을 보여 준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이 말씀은 사역의 목적을 보여 준다.

이들은 매우 중요한 본질이며, 깊이 숙고할 만한 가치를 지닌 내용들이다.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하나님의 집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역(ministry)은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따라 되었다. 성경에, 인간의 권위로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례가 전혀 없다. 인간 스스로가 조작해서 이뤄지는 사역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역자를 지목하시고 세우실 수 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택하여 제사장 직분을 맡기셨다. 그 누구라도 이 거룩한 사역을 간섭하는 자는 죽임을 당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대하 26:16~21)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에 사람이 무모하게 나서는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가. 하나님께서 임명하셔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변질된 기독교계의 경우는 어떤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은 우리의 귀에 하나의 경고로 들린다.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을 사람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주님의 몸된 교회에 경고해 주시는 것이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1-4).

 

이 거룩한 부르심의 원리는 성막 직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사람이 감히 손댈 수 없다.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불렀나니.” 브사렐은 자기 자신을 선택하고 지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일할 자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이 역시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일이 기 때문이다.

재가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그러므로 브사렐은 물론이요 오홀리압은 모든 사역의 참된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직접 부여 받았다.

예언의 직분과 사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언자를 정하시고, 준비시키시며, 파송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내가 보내지 않았으나, 저들이 임의로 행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보내시지도 않았으나 스스로 행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에 불경스럽게 침입한 자들이다. 그러나, 제사장 직분에 침입해 들어온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스스로 들어간 셈이었다.

독자들 중에 이 대원칙이 오늘날에는 변하지 않았는가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정해진 사역의 기초가 변했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근원에서 흘러나온 그 생동하는 흐름이 바뀌었는가? 가장 귀하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제도에서 그 존엄성이 끊겼는가? 신약시대라고 해서 그 사역의 고상함이 상실되었는가? 그 거룩한 사역이 단지 사람이 정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는가? 하나님의 집에서 사람이 멋대로 직분을 맡거나 동역자를 택할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확실하고 절대적인 것, 오직 한 가지이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역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거룩한 것이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4-6).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 12:28).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7-13).

 

여기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역에 대한 장엄한 근원이 있다. 이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놓여 있는 기초로부터, 하나님의 영광 중에,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것이요 천상적인 것이며, 사람에게 속하거나 지상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다( 1장 참조). 교회의 사역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인간의 권위로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만일 은사에 관한 문제라면, 성경에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선물이라고 확실하게 진술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지위에 대한 문제라면, 똑같은 방법으로,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그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라는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지역교회의 책임에 대한 문제라면, 장로이든 집사이든,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사도의 사람들과 대리자들을 통하여 세우신 자들로 된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성경 기록상 너무도 명백하고 분명해서 네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하신 말씀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더 심오한 영감의 세계에 이르게 되며, 근원에 있어서나 특성과 특징 그리고 원칙에 있어서 사역이 거룩하다는 확신을 더욱 갖게 된다.

이 진리는 서신서에서 완전하게 드러나지만, 마태복음 24 45절의 주님의 말씀은 이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집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주인만이 종들을 세울 수 있으며, 자기 의지에 따라 그 일을 행한다. 이 비유에서 진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사역의 목적은 다 똑같이 단순하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러 함”, “교회에 유익을 끼치게 함등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주님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고 - 교회에 덕을 끼치고 그의 몸을 보양 하신다. 이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은사를 나누어 주시고 교회에 그것을 유지시키시며, 더 이상 부족함이 없을 때까지 보존시켜 주신다.

그러나 슬프게도 여기 어두운 면이 있다. 기독교계의 어두운 면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충성되고 지혜로우며 복된 종이 있다면,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는 악한 종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종의 마음속에 주인의 오심이 더디다는 생각이 움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며가 그것이다. 기독교계의 역사를 통해서 이와 같은 예증이 얼마나 많이 있어왔는가? 부활하시고 영화롭게 되신,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로 말미암은 참된 사역을 통하여, 몸을 세우는 것과, 집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일 대신에, 성직자의 권위와, 변덕스런 규율과, 하나님의 유산에 대한 독점과, 육체적인 안일과, 개인적인 번영과, 이름없는 무수한 형태의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방법의 제사장적인 지배가 있을 뿐이다.

독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직제도(clericalism)와 사역(ministry)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완전히 인간의 추측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정결하고 거룩한 방편이다. 전자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에 그 바탕을 두지만, 후자는 사망에서 부활하셔서 높이 오르시고 영화롭게 되사 자기 뜻대로 교회에 은사를 풍성히 부어 주시는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결국, 사역은 본질상 천상으로부터 나와서 천상으로 돌아가는 것인 반면에, 성직제도는 본질상 지옥에서 나와서 다시 그리로 돌아간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에 강한 영향을 끼치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제멋대로 세우고 행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있다.

우리가 말하려 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넓게 깊게 관통하는 깊고 어두운 흐름, 즉 모든 분파 형태의 성직제도와 제사장제도(priestcraft)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 가증스러운 것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엄히 경고하는 바이다. 성직제도의 해악성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참된 사역의 깊은 축복에 대해서도 다 설명할 수 없다. 주님께서 사역의 은사를 부여해 주실 뿐만 아니라 충성하고 부지런한 자들에게 그 놀라운 은혜로 풍성하게 보상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은 거짓의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어졌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는 그 한 가운데로 침투해 들어온 사악함에 참여하지 않도록 은혜의 주님께서 당신의 종과 백성을 구해 주시기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계획된, 주님 자신으로부터 나온 참되고, 귀하며, 거룩한 사역을 주님의 종과 백성들이 이해하고 감사하며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이 성직제도의 사악성에 빠지지 않도록 구하는 한편으로, 사역을 무시하게 되는 극단적인 입장에 빠질 위험에 놓여 있다. 이 문제는 아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사역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 특성은 천상적이며 영적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불러냄과 세움에 있다. 주님께서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 등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주님께는 나누어주실 영적 은사를 풍성히 가지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사역을 포기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사단이 교회에서 역사하고, 악한 종들이 활동하며, 사람이 자기 권위로 무모하게 침해하는 등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시고 영화로우신 주님은 일곱 별을 가지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역에 대한 은사와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 어떤 사람을 일꾼이 되게 하시는 분은 주님 뿐이다. 주님께서 은사를 주시지 않으면 참된 사역은 있을 수 없다. 공허한 추론이 있을 것이고, 죄악스럽게 빼앗는 일이 있을 것이며, 그리고 빈 껍데기 뿐인 사랑을 하며,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존귀하신 주님께서 기꺼이 주신 은사 없이는 참되고 아름답고 거룩한 사역은 조금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은사를 주셨을지라도 부지런히 개발하고 힘쓰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로 주신 은사를 힘써 연마하지 않는다면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 갈 수 없을 것이다

후에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이 문제를 좀 더 다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다루어 온 무거운 주제가 우리 주님의 재림과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참된 사역은 크고 영광스런 사건 곧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수행된다. 뿐만 아니라, 거짓되고, 부패하고 악한 모든 일들도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 공정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8 4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