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4. 10. 14. 19:49 횃불/1998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19)

성경읽기(QT)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많은 유익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확신, 인도와 축복을 구하면서, 경계심을 풀고 성경의 이곳 저곳을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이 성경읽기를 할 때이다. 성경읽기가 체계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구절이 갑자기 페이지에서 튀어나와 뚜렷하고 밝게 강조되어, 그 순간 필요한 위로와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는다.

가끔 진실한 신자에게는 그날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시다. 그러나 이 장() 저 장(), 이 절() 저 절() 읽어서는 지속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때때로 이같이 성경을 잘못 사용한 인도하심이 잘못될 수도 있다.

성경읽기의 첫 번째 규칙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잘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여 한 문단씩 차근차근 끝까지 읽는다. 혹은 한 주제를 택하여 체계적으로 조사해 나가며, 한번에 소화시킬 수 없는 양을 읽지 않는다.

성경읽기의 두 번째 규칙은 묵상하면서 읽는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듯 읽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1년에 성경을 완독하고자 매일매일, 빠른 속도로, 읽은 장()들을 여행한 거리 표시하듯 표시하고, 뒤쳐진 경우 좌절감을 느낀다. 성경을 1년에 한 번 완독하거나 혹은 앉은 자리에서 성경의 한 책을 다 읽는 것은 물론 목표로 삼을 만한 일이나,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얻어내려 할 때는 바람직하지 않다. 묵상이란 요즘 사람들이 잘 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묵상이란 마음을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시키는 것이다( 1:13). 묵상할 때는, 한 구절을 택해 특히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도록 한 문단이나 한 부분을 계속 마음에 두고 생각해서 그 부분의 내용, 우리의 영혼을 위해 실제적인 것, 개인적인 것을 구하게 되고, 성령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성경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면서 성경구절을 생각한다. 이같은 과정보다 더 급박한 일은 없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본질적 특성상 시간, 인내, 사고가 필요하다.

성경읽기의 세 번째 규칙은 의미를 따라 읽는 것이다. 다음처럼 1인칭으로 된 질문을 그 구절에 직접 적용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피해야 할 죄는 없는가?

내가 주장해야 할 약속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은?

내가 순종해야 할 명령은?

내가 얻어야 할 승리는?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은?

아버지 하나님, 주 예수님, 성령님에 관한 새로운 생각이 있는가?

사람이나 사단에 관한 새로운 생각이 있는가?

그 구절에서 개인적이고 실제적 메시지가 나오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주시고자 하는 주요한 생각을 찾는다. 공책을 펴서 성령께서 부각시켜 주시는 생각과 교훈을 적어보면 도움이 된다. 즉 원칙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성경을 개인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의 예를 요한복음 12:111에서 살펴보자.

3절과 5절을 비교해 보고 유다가 마리아에게 한 말을 살펴본다. 그 다음 7절에서 순종해야 할 명령이 나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개인적으로 적용해 볼 때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될 것이다.

911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의 기적을 보고자 온 것은 아니지만 나사로 때문에 믿게 되었다. 여기 얻어야 할 승리가 있다. 부활의 토대 위에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증거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불신자들을 깨우칠 것이다. 새 생명은 모두에게 명백하게 드러나야 한다.

다시 한번 3절을 보면 마리아의 향유는 매우 비쌌다. 기름을 부었을 때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다. 여기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예배는 값비싼 것이나 그 결과는 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7,8절을 보면서 예수님이 유다에게 하신 말씀을 주목해 보면 아들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주님은 마리아의 동기를 아셨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옹호하고 변호하신다. 그분은 유다의 동기도 아셨으나 은혜로 감추어 주셨다.

10,11절을 보면 대제사장의 반응이 나온다. 여기서 사람에 관한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다. 불신자들이 진리를 미워하는 것은 아주 깊은 뿌리가 있다. 이는 나는 믿을 수 없다가 아니다. 나사로의 증거는 도전 이상이다. 이것은 믿고 싶지 않다는 문제이다. 불신앙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이런 저런 묵상을 모아 보면, 이 구절에서의 오늘의 생각은 믿는 자의 행함(마르다), 믿는 자의 예배(마리아), 믿는 자의 증거(나사로)로 나타난다. 나는 행하고 있는가? 예배드리고 있는가? 증거하고 있는가? <다음 호에 계속>

 

(1998 7,8월호)

 

'횃불 > 199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식일과 주일  (1) 2014.10.14
거절할 수 없는 사랑  (0) 2014.10.14
갈림길  (0) 2014.10.14
레위기의 다섯 제사 (3)  (0) 2014.10.14
노아-그의 생애와 그 시대(11)  (0) 2014.10.14
성령의 능력  (0) 2014.10.14
좁은 문  (0) 2014.10.14
그리스도를 만난 윌리  (0) 2014.10.14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