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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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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19:49 횃불/1998년

노아-그의 생애와 그 시대(11)

 

11: 베드로전서 3장의 침례

베드로전서 3장은 그 기자가 노아에 관한 글로부터 영적인 진리와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끌어낸 베드로후서 3장과 유사한 면으로 고려되어야만 한다. 또다시 그 동일한 원리가 따라온다. 그는 그 창세기의 기록을 하나님의 영광과 길들을 선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신약에 도래할 위대한 계시의 그림자로 사용한다. 그 장에서 흐르는 문맥과 사상은 노아의 배경과는 반대로 거룩한 삶을 놀랍게 자극하는 진리를 보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베드로전서의 주된 주제가 고난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것이다. 의를 위한 고난, 혹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같은 특정한 고난은 성도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죄나 잘못된 행위로 고난을 받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우리는 어리석음이나 잘못된 행위로 우리 스스로를 곤란케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결코 걷지 않았던 길이며, 우리가 그분을 결코 따를 수 없는 길이다. 그분은 자기 자신의 죄로 고난을 받으시지 않았고, 그분은 결코 죄를 범치 않으셨으며, 죄를 지으실 수도 없는 분이시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 2224절에서 이렇게 잘 말해준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그리고 다음 장의 18절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라 내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벧후 1:4)가 된 것뿐만 아니라 여전히 옛 성품도 가지고 있으며( 7:21), 때로 그 옛 성품이 나를 지배하고 잘못을 현저하게 드러나게 한다.”

결국 베드로는 그가 알았던 주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그분을 증거하는 일에 실패했다. 하나님은 우리로 범죄치 않도록 강한 능력을 공급해 주셨고, 그것이 여기서 우리에게 제시된다. 노아를 보면서 흥미롭고 격려가 되는 것을 주목하자. 그의 경험이 바로 신자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슬프시게 하기를 멈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공급하심의 한 모형이다. 노아는 물로 인하여 옛 세상의 모든 죄와 수치와 부패와 폭력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홍수 후에 그는 옛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 옛 세상이 그에게 죽었다. 바로 그 물이 그를 옛 삶과 그를 둘러싼 구원받지 않은 옛 동료들로부터 구원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유에서와 같이 그 동일한 요소인 물로 이제 신자는 범죄하는 것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물 속에 잠기는 침례는 그 홍수의 모형이다. 이 가르침을 살펴보자.

첫째로 그는 침례가 무엇이 아닌지를 말해준다. 침례는 그 자체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도, 죄를 사하는 미덕도 없다. 죄에 대한 해답은 1장에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오직 그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효력이 있다. 그러므로 침례는 육체의 죄를 없애는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에게 참된 침례가 무엇인지를 말하며, 그것이 죄와의 싸움에서 신자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를 말해준다. 그는 홍수로부터 그 물이 노아를 구원했던 점에서 유추하여 그 물이 신자들을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으며, 거룩한 삶으로 이끌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주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천국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셨다(22). 성도들 또한 하나님께로 인도되어진다(18).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다. 여기서 베드로는 에베소서의 진리에 관해 다루고 있다. 지금 우리의 위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또한 함께 일으켜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성도가 죄에 이끌리는 유혹을 받는다면, 침례에 표현되어졌고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그 가운데 두신 이러한 위치를 상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는 표현에 나타나 있다. 선한 양심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그와 함께 일으켜진 위치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그 안에 포함된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이 그 제물과 함께 항상 죄를 의식했다( 10:13).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마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람과 달랐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셨다. AV해답’(answer, 찾아가는)으로 번역된 것은 법적인 단어이고, RV질문으로 번역된 것이 보다 낫다. 이것은 실제로 어떻게 역사되는지를 나타내 준다.

신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유혹은 죄로 이끈다. 그 때 그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가만히 있고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질문하실 수도 있다.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는가?

그렇다.

너는 이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았는가?

그렇다.

죽은 자가 이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죽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니, 그럴 수 없다.

그 동일한 논쟁과 답변이 로마서 6 7절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즉 천국에 앉힌 바 된 자가 주님을 거스리는 죄를 범하며 천국에 있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천국에는 죄가 없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21:27).

결과적으로 성도는 이런 일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느낀다. 사실 선한 양심이 하나님 앞에 있다면 유혹으로 인한 죄에 빠진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그는 범죄하는 것으로부터 구원 받았고, 그의 침례가 이를 나타내 준 것이다. 홍수의 물이 노아로 하여금 옛 생명으로부터 구원했듯이, 우리의 침례의 물도 한때 우리로 죄 가운데서 살게 했던 옛 사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노아의 경험 속에서 오늘날의 침례받은 신자의 모형과 침례의 물에 의해 표현된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의 지위를 볼 수 있었다. 물 자체는 어떤 마력이 없다. 그것은 다만 영화로우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위치하게 된 그 위대한 경험에 대한 상징과 그 진리에 대한 적용을 나타내는 것뿐이다.

베드로후서 2 2절에서 그 사도는 또한 노아의 시대와 그 자신이 살고 있었던 시대를 비교한다. 그 장은 거짓 교사들을 폭로하는 장이다. 그들에 대한 심판이 지체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 가지 예를 인용함으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거짓 교사들을 취하여 가실 것을 우리에게 확증해 준다.

5절에서 그는 노아를 의의 전파자로 묘사한다. 그의 설교는 오늘날의 복음 전파자의 메시지와 유사하다.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그 의를 믿은 자는 실제적인 삶이 변화된다.

노아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던 불의한 타락으로부터 피하여야만 한다고 전파했다. 그러나 위대한 복음은 바로 그러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의가 전가된 사실을 말하며, 그같이 믿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다. 이러한 새 생명은 신자의 도덕적인 행위 가운데서 세상에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이제 신약의 모든 교리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로 구분할 수 있다. 십자가와, 교회와, 다시 오실 주님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복음서와 로마서, 갈라디아서는 주로 영혼 구원에 관한 것으로 십자가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립보서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위대한 계시를 밝힌 것으로 교회라는 주제에 해당된다.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계시록은 주님의 다시 오심이 주된 주제로서 재림의 항목에 속한다.

이제 베드로의 노아에 대한 세 참고 구절을 주목해 보자. 베드로후서 2 2절은 복음과 그에 대한 반대의 오류에 대해 말한다. 분명히 그 범주는 십자가이다. 베드로전서 3장의 신자의 침례라는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와 연관된 것으로 교회에 해당된다. 이것 또한 모든 족속에게 가르쳐야 할 마태복음 28장의 지상사명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베드로후서 3장에서 노아는 곧 다시 오실 우리 주님과 연관이 있고, 그 때 반드시 있게 될 심판을 나타내 준다. 그것은 재림에 속한다.

우리는 이제 신약에 나타난 노아와 그의 시대 그리고 홍수 심판에 관한 언급에 대한 결론을 맺고자 한다. 그것은 이제 창세기 5 28절로부터 9 29절까지에 있는 실제적인 기록에 접근하도록 해 준다. 신약 기자들의 노선을 따르는 것은 건전한 실행이 된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그 시대와 당시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나서 히브리서 기자가 했듯이 노아 자신에 대해 상고해 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의 전체 이야기 속에 있는 그 전개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만일 주님이 허락하시면 그렇게 해 보고자 한다. <다음 호에 계속>

 

(1998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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