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5. 1. 15. 16:29 횃불/1999년

성령으로 인치심

(에베소서 1:13-14)

H. A. 아이언사이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1:13,14).

 

이 말씀이 우리를 12절의 내용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 믿는 자의 대표로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먼저는 유대인을 향한 것입니다. 오순절 날에 그 메시지를 받은 자들은, 비록 그들의 죄로 인하여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기는 했지만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그 곳이 어디든 간에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인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들의 특권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13절에서 그는 말의 방향을 이방인개종자에게로 바꿉니다. 그러므로 이 말들은 특별히 우리에게 적용하기에 적절합니다. 다른 대명사가 사용되고 있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은 너희”, 즉 이방인들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이것은 그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나서 어떤 긴 기간이 경과되었음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믿는 즉시 구원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데에는 오랜 기간의 영적 교육이나 복음을 들은 후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처음 듣는 순간 그것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온 생애를 이교의 어둠에서 보낸 어떤 중국 여성의 불쌍한 질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순회선교사들이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은혜의 메시지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녀는 전율하면서 물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이군요. 이전에 전혀 들어 본 적도 없었고, 또 당신들은 내일 이곳을 떠납니다. 나는 다시 그것을 듣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한 번 믿는 것이 나의 영혼을 안전하게 지켜주기에 충분할까요?”

물론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복음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복음은 좋은 글자, 좋은 메시지, 길 잃은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되신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복종해야 할 좋은 충고가 아니라, 믿어야 할 좋은 소식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며, 또 우리는 그 메시지를 믿을 때 구원받게 됩니다.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번역을 오해했습니다. 믿는 것과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 사이에는 반드시 일정 한 시간적인 간격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말씀의 바로 앞부분에 동일한 말씀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기를 요청합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반드시 한 주간이나 한달 혹은 십 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들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물론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과 인치심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차이점은 건물을 짓는 것과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입니다. 건물이 지어지는 즉시 우리는 거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새로 지으실 때, 건물이 세워지고 성전이 마련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복되신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그를 자기 소유로 삼으십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다시 말하자면, 과거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약속하신 성령께서 지금 모든 신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고린도후서 1 22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그리고 우리가 읽고 있는 에베소서 4 30절을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들은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인치신다는 오직 세 곳의 직접적인 언급일 뿐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6:27에서 우리는 우리의 복되신 주님이 인치심을 받은 자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먹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주님께서 세례 받으시러 요단강으로 가실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그에게로 내려오며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17)고 했습니다. 그것은 복되신 구주로의 인치심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이며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인침을 받은 자로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이란 소유권과 보증을 표시하는 도장입니다. 우리가 식품가게에 가서 빵을 사게 되면, 거기에 작은 도장이 찍혀있거나 혹은 빵의 이름이나 상표가 찍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쇠로 이름을 새긴 동전을 가루반죽에 찍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빵에 찍혀 있는 이름은 제빵회사의 품질보증입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떡, 산 떡, 생명의 떡이며, 그분이 성령을 주실 때 성부께서 그에게 인을 치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의뢰하게 될 때, 동일한 복되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 사람은 내게 속한 사람이며, 나는 그를 내 것으로 인정하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치십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인치신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오직 고린도서와 에베소서 뿐임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고린도와 에베소는 고대에는 제재업의 큰 중심지였습니다. 통나무 땟목들이 흑해로부터 보내져 오곤 했으며 항구에 있던 땟목들은 여러 통나무 회사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회사들은 그들의 직원을 보내어 통나무를 살펴보고 그것들을 골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난 이것들을 사겠소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난 이것으로 하겠소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약간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자기들이 골라 놓은 모든 통나무마다 어떤 쐐기를 박아놓습니다. 이것을 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통나무들은 여러 주 동안 물 바깥으로 끌어내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들 각각에는 그것들을 사기로 약속한 회사의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미네소타 주의 세일트 클라우드에 있는 높은 다리 위에서 재목들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작업하고 있는 인부를 보면서 내 친구에게 이 통나무들이 다 한 회사의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야. 여기 미네소타에서 사업하고 있는 여러 다른 회사들 것들이지.” “그렇다면 땅에서 어떻게 그것들을 가려낼 수 있지?”

그는 다리 위에서 그것들의 마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강을 따라서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면, 여러 회사들은 자기 통나무들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보잘것없는 자일지라도 우리는 약속의 성령에 의해 인치심을 받았으며, 그리고 약속된 날이 와서 주님께서 자기 소유를 찾으실 때, 그 날은 그분의 소유를 회복하는 날이 될 것이며 또 그분은 성령께서 인치신 모든 자들을 땅에서부터 취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4:30)는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일단 하나님의 성령께서 복음을 믿는 자 안에 거처를 정하시면,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흠 없이 설 때까지 성령님은 그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살아있는 성도는 성령님의 전이며, 그러므로 그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 있기 위해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성령님은 그의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4절까지 이어지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절에서 성령은 인으로, 14절에서는 보증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얼마간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목재들을 물에서 끌어낼 때 완전하게 지불하는 목재상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우리의 복되신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계약금(보증) 혹은 담보물로 주시고, 마침내 우리를 이 땅에서 취하셔서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천국 집에서 완전히 누리게 될 그것을 지금 작게나마 누릴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마주 대하여보게 될 때, 죄의 마지막 흔적과 연약함이 제거될 때, 그리고 우리가 사모해 온 그분과 같이 될 때, 그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가요?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 구속 받은 모든 자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죄인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은혜 가운데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갈보리의 십자가로 내려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싸워 이기고, 또 그분을 위하여 구별되어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분의 소유로 삼으신 것은, 그분의 보혈로써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 5:9) 우리가 성령이 거하실 만한 처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99 10월호)

 

'횃불 > 199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아-그의 생애와 그 시대  (0) 2015.01.15
철학과 헛된 속임수  (0) 2015.01.15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0) 2015.01.15
영원한 구원(10)  (0) 2015.01.15
사랑 받는 자  (0) 2015.01.15
모임의 진리(1)  (0) 2015.01.05
하나님의 구원 계획(2)  (0) 2015.01.05
노아 - 그의 생애와 그 시대  (0) 2015.01.05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