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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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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1. 11:36 횃불/ 2000년

인류 최초의 노래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4:23,24).

 

필자는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많은 시간 동안 생각에 잠기고 또 잠겨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성경을 통해서 전해진 인류 최초의 시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필자의 마음에 아픔이 있는 것은 이 최초의 시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지으신 창조물을 기뻐하는 시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지는 못하여도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눈물의 시라도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역하고 끝을 모르는 방황과 방탕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향하여 가는 불쌍한 인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슬픈 노래이다.

 

라멕은 가인의 5세손으로 가인의 어그러진 길로 달려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름이 말해주듯 능력 있는 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거나 인간을 돕는데 쓰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많은 인생들을 핍박하고 괴롭히며 더 나아가서 그들을 죽이며 죽이겠다고 경고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라멕은 하나님을 철저히 반역한 사람이었다. 라멕은 두 아내와 결혼하였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하와라고 하는 아내만 허락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만약 아담에게 더 많은 아내가 필요했다면 그에게 다른 아내를 주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한 아내만 허락하셨다.

인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여러 아내로 말미암아 여러 자식들을 남으므로 심각하고 비극적인 열매들을 만들어 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일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다. 한 사람에게 한 아내와 한 남편만 있을 뿐이다. 인류는 접점 번성해 가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들을 사용하여 여러 아내를 두거나 여러 여자들을 쾌락적 대상으로 삼아 수많은 죄를 지어오고 있다. 라멕은 이러한 인류의 미래를 예언한 행동하는 선구자였던 것이다.

 

라멕의 아내 이름도 새겨볼 의미가 있다.

첫째는 아다였다. 뜻은 아름다움이었다. 라멕은 아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아내를 삼은 것 같다. 그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추구한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온 후손은 진정 경건하고 아름다운 후손은 아니었다. 그의 아들들에게서는 장막을 치고 육축을 치는 자와 각종 악기를 만들어 음악을 하는 조상이 나왔다.

둘째 부인 씰라보호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강력하게 반박하고 자기생각대로 타락의 길을 간 라멕의 아내가 그 이름을 씰라라고 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짓는데 있어서 아내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라멕은 아내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쏟아 놓고 있다.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였다. 한참 피어나는 소년을 죽인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 자기는 상처만 입었는데 죽음으로 복수하였다.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동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용서나 관용,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예 상상할 수도 없고 자신이 입은 작은 손해를 몇 십 몇 백 배 갚아 버리는 이 복수심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짐승의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인류는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 자로 인해 생긴 감정을 풀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해왔다. 인간의 역사는 복수의 역사가 아닌가? 인간에게 있어서 용서와 관용, 화해는 곁을 꾸미기 위한 포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아내들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그가 나에게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나는 그를 죽였다. 그를 죽인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가 나에게 손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다면 계 내가 그를 죽였겠는가? 나에겐 추호도 잘못이 없다. 나는 당당한 일을 한 것뿐이다.”

라멕의 시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뉘우침이나 반성 또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그는 이 일이 당연하므로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있으면 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라멕의 이와 같은 태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짚어 보자.

첫째, 라멕은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정당화하고 있다. 그는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자를 죽이는 것도 당연하다고 강변하였다.

오늘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수와 죄에 대하여 핑계를 대고 이유를 들어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곳에 책임 회피하는 자들이 있고 심지어는 T.V에 까지 등장하여 자기를 변호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및 년 전 국회 청문회에서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연한 내용도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던 뻔뻔스런 모습도 보았다. 또 그들은 당연히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회개가 없다. 라멕은 죄에 대한 회개가 전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아니하는 악한 죄인의 모습인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죄를 반성하지 아니함이 가장 큰 문제다. 크게 보아서 이 나라에 전쟁을 일으키고 거기에 개입한 나라들이 회개나 반성하는 빛이 있는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범하고도 회개한 적 있는가? 일본에 붙어서 같은 민족을 괴롭힌 파렴치범들은 오늘날까지 대를 물려 가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 아니한가?

개인 개인은 어떠한가? 청소년들이 부모를 죽이고도 회개하는 빛이 없다. 그들의 얼굴에 뻔뻔스러움이 가득하다. 같은 반 친구들을 괴롭혀 죽음으로 몰고 가도 누가 반성하고 회개하는가?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세상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며 자기의 처지를 원망하며 회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회개하지 아니함을 더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지 아니한 마을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2:5).

죄를 짓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이 세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다

 

세 번째, 라멕의 특징은 죄책감이 없되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아내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 없이 살인 사실을 외쳤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크게 원수를 갚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로 또 누가 자신을 해치면 그때도 더 무섭게 복수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전철 안에서 중학생을 꾸짖는 노인에게 계단까지 따라가서 밀쳐 넘어뜨려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표본이다.

아내를 괴롭히며 날마다 술 주정하고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남편 구실도 못하면서 남편으로서의 권위만 강조하고 핍박하는 못난 사람도 보았다. 슬픈 것은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얼마 전 두 TV방송국에서 동성 연애자들이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얼마나 슬퍼하고 분노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부끄럽지 아니한 모습으로 자기를 변호하고 있었다. 사회자는 친절하게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가까운 징조이긴 하지만 해도 너무나 하는 것 아닌가? 이 시대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단 말인가?

외국에서는 동성 연애자들이 공적으로 나서는데 몇 십 년 혹은 백 년 이상 싸워서 된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하루아침에 공인(?) 받는 것 같지 아니한가? 그들은 마치 동성 연애가 당연한 것이며 인간들의 복잡한 삶의 한 모습이며 그렇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변함으로서 반대론자들을 마치 속 좁은 편견자들로 매도하였다. 적어도 필자가 받은 인상은 그렇다.

또 요즘 TV에서, 유명한 교수라는 K씨는 공자의 사상을 논한다 하면서 마구잡이로 성경을 비판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욕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그에게 수많은 사람이 동조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랴!

공영방송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면서 진화론은 거의 날마다 선전하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랴? 하나님은 이 모든 죄를 알고 계신다.

 

라멕은 말하였다. “가인에게 해를 끼친 자는 벌이 칠 배라면 라멕을 해치는 자는 칠십칠 배를 앙갚음 받는다고····라멕은 죄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랑하고 자기 힘을 과시하여 자기를 해치는 자에게 칠십칠 배로 복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뻔뻔스런 라멕에 대하여 하나님은 영원한 멸망을 준비하셨다. 이 시간에도 그는 지옥에서 몇 천 년째 울부짖으며 고통을 견디고 있다. 그는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엄청난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있을 때 죄를 마음대로 지으면서 자기 힘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양심의 가책 없이 죄를 짓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사탄에게 철저히 속아서 세월만 낭비한 것임을 지옥에서 깨닫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가 소년을 죽인 것도 사탄이 시킨 것이었다는 실체를 깨닫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가 자기를 해친 자에게 칠십칠 배나 갚겠다고 선포하므로 많은 사람을 떨게 한 교만한 행동이 사탄의 지시대로 움직인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갈며 울고 있을 것이다. 그가 살아온 모든 세월이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살았다는 것을 지옥에서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사단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다. 그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류를 속이는 것이다. 라멕도 사단에게 고스란히 속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면 지옥에 들어갈 사단의 하수인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인생을 그 죄 값인 심판의 지옥에서 건지시려는 것이다. 인간의 끔찍하고 더럽고 추한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시어 우리를 영원한 지옥에서 건지시려 한 것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명확하게 증거하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이사야 1:18-20).

라멕의 뒤를 이어 계속 죄를 발달시킨 가인의 후예들에게는 이제 항상 두 길이 열려 있다.

인생들의(그대의) 모든 죄를 다 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믿고 천국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멸망의 지옥에 그대로 던져질 것인가 분명한 두 길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형편없이 타락하며 더러워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사랑을 거절하고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겠는가?

 

200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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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