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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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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1. 11:40 횃불/ 2000년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한 희생

월리암 켈리 지음 / 종수 옮김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5)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것을 의심하게 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 해답을 우리 안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 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만족한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찾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자신에게서나 혹은 자기 감정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영혼을 도우실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양심이나 마음의 내적(영적) 상태가 만족할 만한 참된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신뢰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면 속임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의심이나 번민에 대한 해결을 위해 안식은 반드시 완전한 터 위에 있어야 한다.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희생을 통해서 밖에는 없다. 따라서 성령님은 친히 구원에 대한 필요를 일깨우신 영혼들의 필요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해답으로,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 사역( 10)을 증거하신다. 그 후에 성령님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믿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8:1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즉각적으로 구절을 바꾸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전적으로 우리 밖에서,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찾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여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고, 무거운 죄 짐을 졌지만, 이제 회개한 사람을 위해 의롭게 되고 영원히 쉼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을 예비하셨다. 그에 대해 죄인은 자기 죄 외에 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모든 사람의 악함과 심지어 사단의 죄악을 능가하신 것이다. 한 분, 오직 한 분만이 이처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경영이 가능하시다. 태초에, 즉 만물이 있기 전부터 계신 분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분은 곧 하나님이셨다. 기약대로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졌고, 사랑 안에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서 오셨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 안에서 나타낸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이나 천사의 모든 생각을 뛰어넘어 위대한 일을 성취하셨다. 그리스도는 의로우신 분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드리셨으며, 따라서 이제 심히 더러운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아버지 품속에 있는 아드님으로 하나님의 모든 기쁨이 그에게 있는 분이시다. 그분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실 계획을 가지셨는데, 곧 가장 존귀하고 은혜로운 목적을 성취하고, 그리고 그 고난 후에 따르게 될 영광을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 됨을 취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자신을 지극히 낮추셔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인자로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나시고 십자가에서 죄가 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함께 굳게 세워지고, 모든 죄인들로 믿어 의롭다 하심에 이르도록 증거되게 하기 위함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이시다. 우리 심령이 참으로 곤고하여 무언가 분명하고 확실하며, 재론의 여지없는 답을 구할 때,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는 증거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답이다. 이것은 하나의 약속이 아니라 성취된 사실이며,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가치를 가진 실제로써 과거 혹은 미래, 땅에서나 하늘에서도 이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다.

이것은 기약대로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무죄한 사람을 시험하셨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쫓아내시며 복된 계시를 주셨다. 사람은 심히 부패하고 죄악이 관영하였으므로 하나님은 홍수를 보내셔서 모든 사람을 멸절하시고, 방주에 들어간 몇 명만을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셨다. 그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을 주셨다. 그 후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신을 좇았으며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여기 세상 죄의 진면목을 보라. 범죄와 우상숭배, 게다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거절한 극악 무도함을····

이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사람의 극악무도한 죄와 모든 죄악을 용서하실 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만나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기쁜 소식, 곧 은혜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하게 하셨다.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한가? 바로 이 사랑만이 혼동에 빠진 여러분의 심령에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고, 또 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정확하게 기약대로(혹은 때가 차매)” 되어진 일이 아닌가? 여러분이 바로 경건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면,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심이 당신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삼으라. 그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시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받으실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무력함을 변명하고자 하는가?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물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이것도 예상하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여러분이 먼저 자신을 개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한다면 성령님은 여러분이 전적으로 무력하고 심히 죄악된 죄인임을 깨우쳐주시는 일 외에는 도울 길이 없으시다. 자기 상태를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자기 의를 세우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저버리고, 오히려 사단의 모조품을 붙들게 된다. 여러분,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왜냐하면 여러분은 연약하고 경건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으며, 또 구원하실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하고, 또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도록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은혜와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경건치 않고 연약한 여러분이 자신을 포기할 때까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것을 포기하기까지, 성령님의 참된 역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혹은 속죄사역)을 바라보도록 여러분에게 죄악의 비참한 결과를 보여주고 스스로 부르짖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한 여러분은 이기는 성도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자신은 죄사함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게 된다. 예수님의 피를 통한 죄 사함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 면류관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결코 자신의 참된 영적 상태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영혼에게 자신을 주실 수 없으시다. 성령님은 여러분이 연약하고 경건치 않음을 여러분 심령에 증거하시고, 바로 그리스도는 그러한 자들을 위해 죽으신 것을 믿으라고 강권하신다. 오직 이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죄악성을 모두 설명해준다. 여러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성령님의 평가는 그리스도가 피를 흘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죄사함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게 되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는 것이다. 실제적인 성결은 진리의 말씀, 곧 우리 구원의 복음에 대한 믿음 후에 따르게 되어있으며, 그 순서가 바뀌는 일은 없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그의 죽으심을 의지하게 되면 성령님이 능력과 사랑의 영으로, 그리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역사하신다(딤후 1:7 참조). 그렇다. 성령님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포기하기까지는 도우실 수가 없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구속 안에서 쉬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도 쉼을 얻게 된다.

 

200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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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