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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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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1. 12:01 횃불/ 2000년

영원한 구원(22)

H. p. 바커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성경구절들(8)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2:19).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적이 없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바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생명 나무가 있는( 22:2)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생명 나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법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여기에서 더럽히면이라는 말과 멸하시리라는 말은 헬라어에 있어서 같은 낱말인데 이렇게 두 가지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만약 멸하시리라는 말이 어떤 사람들의 주장과 같이 영원한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더럽히면이라는 말도 역시 영원한 멸망을 가리킨다고 보아야만 하는데 그렇다면 이 구절의 말씀은 불합리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성전이 더럽혀졌다든지 혹은 멸하게 되었다는 말을 할 때 유대인들은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점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더럽히면이라는 말과 멸하시리라는 이 말(이렇게 두 가지로 번역된 말)의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가졌던 견해를 보자.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더럽혀졌다든지 또는 극히 가벼운 손상을 입었을 경우, 그리고 또 성전 관리인들이 저들의 임무를 등한히 했을 경우에 더럽히다라는 말이나 멸하다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의미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의 말씀은 요컨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7)는 말씀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11:20,21).

아울러. 로마서 11장 전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원 가지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들 유대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였습니다( 11:20). 유대인들이 넘어짐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베풀어지게 되었습니다( 11:12). 여기 이 경고의 말씀은 이방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내어 쫓김을 당하리라는 경고의 말씀은 신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진 경고가 아닙니다.

월리암 R. 니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증을 부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로마서 11:20,21에 나타난 경고의 말씀을 일반적인 경고의 말씀으로 간주하지 않고 개인적인 경고의 말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 전체를 두고 행한 경고가 아니라 신자들을 개인적으로 상대하여 경고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성경적으로 온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가 성경적으로 온당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그의 양들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이 여기에서 신자들에게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고 경고한 경고의 말은 이 경고를 듣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그런 위협적인 경고가 아니라 신자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경고이기 때문이다(딤전 6:17과 롬 11:20을 비교해 보기 바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신자의 개인적인 멸망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올지 않다. 로마서 11:19-24의 말씀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 없이 기독교의 어떤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역사(歷史)를 섭리하시는데 있어서 유대인의 위치와 이방인의 위치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저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은총과 축복을 누리는 자리에서 얼마동안 제외되었고 그 대신이방인들이 얼마동안 그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 대신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물려받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서 11:19에서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독특한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22절의 경고의 말씀에서 이 독특한 이방인들에게 일반적인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개인적인 경고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22).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축복하시는 경륜과 방침을 따라 이방인들도 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제외 당하는 날이 오고 그 대신 이스라엘이 다시 복원(復元)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5).

이 말씀은 어떤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한 지역교회, 즉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기록된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촛대는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를( 1:20)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교회를 향한 경고인 것입니다. 즉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그 교회가 사람의 눈에는 교회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결국 촛대가 옮겨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진정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이후로도 복음을 전파하는 많은 교회들이 에베소 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타협과 방종으로 인해서, 또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에 영접하고, 나아가서는 이런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여 교회를 운영하게 하므로 인하여 에베소 교회의 전철을 밟게 되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증은 신자들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교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3:11-18).

이 말씀도 어떤 신자 개인에게 대한경고가 아니라 한 지역교회, 즉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은 영적인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그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불신자들(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였음이 틀림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흰 옷(그리스도의 의)을 사서 입으라는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그런 교회를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이 말씀 마지막에 가서 각 개인들을 향한 호소를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3:20).

교회는 토하여 내침을 당한다 할지라도 믿음을 가진 개개인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보증은 교회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 15:1,2)

성경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그 무엇을 굳게 지키므로 죄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그런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어떤 과정이 아니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가죄의 세력에서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는 그의 생애에서 계속적인 과정을 밟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 말씀에서는 구원을 과거시제로 서술하였다가 다시 현재시제로 서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받은 것이요라는 말은 과거시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에 있어서 부정과거형이며 직설법 능동태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5:2에서 바울은 다시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함으로 구원을 현재시제로 서술했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에 있어서 현재형 직설법 수동태입니다. 이것은 지금 현재 어떤 행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이 만일 바울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2) 지금 죄의 세력에서 구원을 얻는 도중에 있는 것이고 은혜 안에서 자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해 가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들이 신약성경을 통해 영적으로 자라는 것과 같이 그렇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보내주어 말씀을 전하도록 하신 그 사람들의 말을 굳게 지킴으로(기억하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거나 설교를 듣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그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것을 굳게 지키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 끝에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저들의 신앙이 진실한 것이었다면이라는 말입니다. 저들이 진실로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었다면이라는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0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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