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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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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1. 12:04 횃불/ 2000년

천사들(Angels)(8)

J. B. 커리 지음/ 조대희 옮김

 

7: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

 

두 가지 해석

창세기 6장의 첫 부분만큼이나 구약성경 중에서 자주 논쟁의 구설수에 오르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은사있는 신령한 형제들이 예로부터 있어왔던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자신의 분별을 가르치게 되는 자리에서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보다 명백히 드러내기 위한 시도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보려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한 편견을 버리고 공정하게 이 문제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해석 중 하나는, 창세기 6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보려는 입장입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노아의 시대 이전의 어떤 천사들은 사람의 딸들이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는 그들과 부자연스럽고도 부도덕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이 성립되어서는 안될 관계의 결과로 인하여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네피림이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천사들과 여자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용사이며 고대에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4).

이 분별을 옹호하기 위하여 신약성경으로부터 다음 세 군데의 말씀들이 인용되어지고 있습니다.

(1) 베드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라고 쓰고 있다.

(2) 유다는 그 편지에 동일한 천사들에 대해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6)라고 말하고 있다.

(3) 게다가 다음 부분도 인용됩니다.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18-20).

이 세 곳의 말씀들을 종합하여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노아 시대 이전의 어떤 천사들은 마귀와 그 추종자들의 반역이라고 하는 죄와 더불어, 아마도 개인적으로 훨씬 더 지독한 죄를 범한 것으로 본다.

즉 자신들이 선택한 여인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고 불리우고 있는 죄이다( 6).

그 결과 두려운 심판의 실례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베드로와 유다는 기술하고 있다. ‘영원한 결박이라는 말의 의미야 어떠하든지, 어두운 구덩이에 갇힌 천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운 실례이다. 이렇게 영원히 결박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육체가 무덤에 머무르시던 사흘 동안에 친히 그 영()으로 마귀와 죄에 대한 십자가로 말미암은 대승리(大勝利)를 전파하러 가셨던 것이다.”

 

이상이 창세기 6장의 첫 부분에 대한 하나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대의 견해도 있습니다. 그 반대 견해란,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이며 그들은 사람의 딸들”, 즉 가인의 자손들 중에 속해있는 여인들의 매력에 이끌린 나머지 저마다 좋아하는 상대를 골라 자신들의 아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셋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별(區別)된 삶을 무시해버리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인류는 점차 하나님과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길로부터 탈선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대홍수로 멸망시키셨던 것은 사람들의 악한 행위로 인하여 땅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해석이 창세기 6장의 전후 관계를 살펴볼 때 한층 합당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견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인가?

이는 구약성경의 70인역(헬라어 역)에 의해서 지지받고 있는 견해입니다.

그 번역가들은 히브리어의 베네 엘로힘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천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고대(古代)의 요세푸스라는 역사가나 외경(外經)에 나오는 에녹서의 저자도 이 견해를 지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와 같은 견해는 몹시 오래 전부터 취해져 내려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당시에는 70인역이 자주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유대의 주석자(註釋者)나 초대 그리스도인 저자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강력한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훨씬 오래 전 시대로부터 전래된 반신반인(半神半人 demigod)이 인간인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신화로 인하여 그 근거를 잃게 됩니다.

한층 바른 해석은 번역이 아니라 원문(原文)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70인역을 대할 때에는 간혹 애매모호하게 해석된 부분들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네 엘로힘이라고 하는 단어는 욥기에 3회가 나오고 있습니다(1:6, 2:1, 38:7). 그 세 곳 모두 명백히 천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주해자(註解者)는 말하기를 욥기의 1장과 2장의 장면은 이며, 하나님의 존전에 나오고 있는 예배자들은 경건한 사람들이고, 그들 안에 섞여있는 자는 지상을 배회하고 있던 사단이라고 합니다. 이 설명은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지만, 38장에서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우고 있는 것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자녀라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천사들뿐이었습니다. 따라서 1장과 2장에서도, 그들은 피조물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그와 아주 유사한 단어와,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 중에서 그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단어는 분명히 사람인 신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 말씀이 창조주와의 관계 가운데 있는 천사들과,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으로 주님과의 관계 가운데 들어가 있는 신자들과의 친밀한 입장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이상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6장 전반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부분의 의미에 달려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올바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한층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라고 하는 가르침에 대한 반론

이 세상 역사의 어느 시기엔가, 천사가 인간인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가르치는 것은 오직 창조주 외에는 없는 능력, 아무리 위대한 피조물에게라 할지라도 결코 부여된 적이 없는 능력을 천사들이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본질적인 성질을 바꿀 수 있다든지, 아니면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지에 관한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2:30).

이 말씀은 부활에 임하는 사람들과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특징을 일컫고 있으나,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에도 주님은 이 곳에서와 아주 동일하게 장가들고 시집가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24:38). 그 세대에도 불경건한 자들의 특징에 대하여 언급하셨을 때, 주님은 영적인 세계에 있던 자가 인간의 사회에 침입하였다는 것 등에 대해선 암시조차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라는 말이 여기에서 시도하고 있는 반론을 변개시킬 순 없습니다.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인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기 전에는 동일하게 하늘에 있는 천사였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장가갈 수도 시집갈 수도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애독하는 분들이라면, 천사가 여러 경우에 있어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나타났던 사실을 명백히 살펴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인간의 모습을 빌려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취하였던 것뿐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어떻게 그들이 창조주께서 애초에 의도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질상에 있어서 자신들의 본질마저 바꿀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결코 애매모호한 상태로 적당히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이 가르침이 진실이라면 이 천사들은 하나님에게만 속해있는 유일한 권한을 탈취한 것이 됩니다.

실제로 그들이 독자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성질과 새로운 존재 형태를 창조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세상을 뒤흔들만한 일들로 발전될 수 있는 소지의 이러한 주장들이 애매한 논리를 근거로 하여 성립된다고 한다면, 이는 정당한 해석으로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앞서서 인용한 마태복음 24 38절의 주님 말씀은 노아 시대에 일어났던 현상들이 인자의 날직전에 또다시 일어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끝날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에게서 좋아하는 여자를 골라 자신들의 아내로 삼기 위하여인간사회에 침입할 수 있는 것으로 가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천사들이 첫 날에 장가들고 시집가고했었다면 마지막 날에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만약 가르쳐지고 있는 대로 이 더럽혀진 관계의 열매로서 네피림(거인: 장부)”이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 이후 시대의 거인은 어떻게 하여 탄생하게 된 것이겠습니까?( 13:33, 2:10,20-21 참조). 그들도 천사와 인간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이었겠습니까? 어찌되었든지 창세기 6 4절의 언질을 볼 때, “거인은 그러한 부자연스러운 관계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자들이 아닌 것임을 알게 됩니다.

 

전후관계에 의한 해석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서 죽인 기사와 가인의 계보가 나옵니다. 이 계보는 가인으로부터 두발가인에 이르는 칠 대에 걸쳐있는 자들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아벨 대신에셋이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곳에 이르러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26)는 흥미로운 설명이 붙여졌습니다.

가인이 고의로 아벨을 쳐죽인 사건을 볼 때 가인의 성질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가인은 포학(暴虐)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으로부터 두발가인까지 칠 대의 계보는 ()으로 난 것은 육이요”( 3:6)라는 말씀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4:23,24).

라멕의 이러한 외침은 가인의 자손들 역시 포학하고 잔인했었다는 더 없는 증거입니다. 당시의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홍수에 휩쓸려 멸망했던 것은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불경건한 자들이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또한 공적인 예배가 시작된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5장은 셋의 자손들 중에 나타난 이들의 계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셋의 자손들이 모두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가인 자손들의 특징과 아울러 당시 세상 사람들의 특색인 포악성과 비교한다면 5장의 가족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것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또한 이곳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 안에 담겨있는 의미 가운데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통해서, 놀라운 구원과 위로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을 다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이 두 장()에는 두 가족에 관한 것들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불경건함으로 인한 오명을 남기고 있으며, 또 다른 한 가족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한 간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별은 6장에 들어오면서 곧장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2)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아이가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4)이었습니다. 그들은 악한 자기 조상들의 성질을 이어받아 땅을 포악으로 가득 채워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나오는 용사들네피림(거인)”을 동일한 자들로 볼 수 없습니다. 아이가 생겨났을 무렵이나 혹은 그 이후에도 네피림이 지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이 결혼했을 당시에나 그 이후에도 네피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기자가 이 곳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옛날 용사가 있었을 무렵에 거인도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그 지방에 거인이 있었으나 거인은 그 당시 그 지방에서만 태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간혹 세계의 여러 곳에서 대단히 키가 큰 사람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유전자(遣傳子)의 영향입니다. 창세기 6장은 그 당시 그러한 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된 말씀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처소를 떠난 천사들”( 6)이라는 말씀은 이미 다루어 온 두 가지 견해 중 어느 쪽에도 적용시킬 수가 있습니다. 만약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한 천사들이라고 한다면 이 말씀을 그대로 적용시켜도 좋겠지만, 이를 또한 사단의 최초의 반역에 가담했던 천사들의 죄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서 28 18절에는 사단에 대하여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또한 앞서서 인용한 유다서 말씀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이 천사들 그룹을 범죄한 천사들”(벧후 2:4)로 불렀습니다. 이 단순한 표현을 통하여 베드로는 사단과 함께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했던 천사들, 그 결과 이 세상에 모든 종류의 죄악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던 천사들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겠습니까? 그 이외의, 그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은 죄를 범한 천사들에 대한 것을 일컫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유다서 7절에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동일하게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갔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 번역이 정당하다면, 육욕에 이끌려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 그들의 죄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 번역되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저희(자신의 처소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와 같은 모양으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갔던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성이 깊은 그들의 기질에 그대로 들어맞는 음란한 행위였으나, “살과 배가 없는”( 24:39) 영적(靈的)인 존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육()의 몸을 갖지 않는 한 육욕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입니다. 다만, 마귀에게도 욕망(慾望)이 있는데 그것은 육욕보다 한층 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는 합당치 않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좌를 노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처소를 떠났던 것입니다.

사람이 귀신(범죄한 천사들)에게 붙들린 예는 성경에 많이 나오지만, 성적(性的)인 만족을 구하기 위하여 귀신이 사람의 모습을 취한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은 죄를 일삼으면서도 이러한 종류의 죄악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육적인 욕망을 추구해가도록 인간들을 부추겨 나갑니다. 이것도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반역 중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서에는 두려운 심판의 예로서 세가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1)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스라엘 사람들.

(2) 범죄한 천사들.

(3) 육욕을 좇았던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

 

동일하게 베드로후서 2장에는 범죄한 천사들과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소돔과 고모라 성이 심판의 예로서 들려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던 것도 인간 때문이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재앙을 불러들이게 되었던 것도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천사들에게 그 책임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쓰여질 리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인간보다도 훨씬 높은 지위와 특권이 부여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나라와 시대의 많은 보수적인 주해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창세기 64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자손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셋의 자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삶의 자세를 버리고 자신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저버렸으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이 때로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특징지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00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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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