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12 지역교회의 영접

 

3) 방문자와 새로 이사 자의 영접

우리들 가운데서 아주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실행이 하나 있다. 그것은 천거서가 만찬에서만 낭독되는 전통인데, 이것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역교회가 만찬에 영접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역교회는 교제에 영접하며, 이것은 특권과 책임의 공유를 포함한다. 우리는 천거서가 만찬 자리뿐 아니라 기도집회에서도 낭독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영접된 사람이 기도나 가르침에 참석할지도 모르는데 믿는 자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형제일 때, 특히 사실이다.

천거서는 사도 시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고후 3:1-3)이 한 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천거서가 떡을 떼는 입장권 같다는 암시는 없다. 다른 지역을 방문하거나 거주지를 옮긴 믿는 자들은 영접하는 지역교회의 교제에 천거 받는다. 그리고 뵈뵈 자매의 경우처럼(16:1-2), 그들은 성도들의 마음과 가정으로도 영접된다. 천거서는 이 성경적인 예 이후에 올바르게 본받게 되었다.

로마에 있는 지역교회들의 한 방문자로서, 뵈뵈는 성도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어 있었다. 방문자와 거주하러 온 사람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에베소로 왔을 때(18:18-19, 18:24-28), 그들은 그 지역교회를 도울 예정이었다. 우리는 방문자와 거주하러 온 자 사이의 구별을 볼 때 지혜를 사용한다. 한 지역교회를 돕기 위하여 오는 믿는 자의 영접에는, 그들의 도움이 참으로 축복이 되는지를 분명히 하는 데에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일 로마서 14:115:7이 그러한 천거서에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 될 것이다. 로마서 14:115:7은 최초 혹은 방문자로서 지역교회의 교제에 영접되는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이 문맥들은 비록 배경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배경만큼이나 다를지라도 교제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천거서는 그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지역교회의 영접에 있어서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고전 16:10, 고후 8:22, 4:10, 18:27 ). 만약 지역교회의 영접에 있어서 교제를 신청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으로만 된다면, 이 과정은 총체적으로 필요 없었을 것이다. 방문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천거서를 받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을 수가 종종 있다. 영접할 지역교회의 장로들을 먼저 만나보는 것은 방문자를 영접할지 어떨지를 생각할 시간을 그들에게 줄 것이다. 비록 천거서가 영접을 위한 일반적인 신약성경의 질서이지만, 개인적인 천거와 다른 존경 받는 믿는 자를 아는 것이 안내를 위하여 쓰일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는 약간 간단한 방법은 있다. 천거서가 그러한 문제들을 막는 안전장치이다.

 

4) 징계 받은 자의 영접

고린도후서 2:6-8에 나오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것은 분명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징계 받는 사람과 같은 사람으로 믿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서술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2:2-11의 가르침은 징계 중에 있는 사람을 영접함에 있어 우리들을 안내하는 분명한 가르침이다. 그 지역교회는 그를 출교했고(6), 그 지역교회는 그를 다시 영접하여, 위로하고 너무 많은 근심에 잠(7-8)기지 않도록 그들의 사랑을 그에게 확증한다. 이 책 18장에서 20장까지는 징계와 회복이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룬다.

 

5) 교사들의 영접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자세히 읽지 않을지라도 교사를 천거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역교회의 목자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적은 무리를 위한 인도와 영적인 양식을 준비할 뿐 아니라, 양들을 해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지킬 책임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양들이 좋은 꼴을 먹는다고 해서 양들에게 독 있는 잡초를 먹게 하는 목자는 어리석은 목자가 될 것이다.

아볼로를 천거하는 데 쓴 편지(18:27)는 매우 중요하다. 아볼로 자신의 행동은 금방 아가야에 있는 형제들에게 추천 받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편지는 쌍방에게 시간을 절약하게 했다. 사울을 영접함에 있어서의 지체(遲滯)는 전적으로 사울이 박해자였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라고 사도행전 9:26-29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은 아볼로에게는 이 논의를 적용할 수 없다. 영접이 자동적이라면, 이 편지는 왜 필요한가?

고린도에 있는 지역교회에 대한 바울의 디모데 천거(고전 4:17, 고전 16:10-11)는 종으로서의 특성과 가르침에 대하여 확신하도록 씌어 있다. 그 시대에는 디모데 같은 하나님의 사람조차도 필요했다. 하물며 우리들이 사는 오늘날에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는가! 더 많은 증거는 빌립보 사람들(2:19-23)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살전 8:1-2)에게 보내는 바울의 말 안에서 교사들의 영접에 필요한 주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장에서 영접에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는 것을 지역교회의 영구적인 특성과 신약성경에 있는 천거서의 사용으로부터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에 있어서, 우리는 많은 은혜가 필요하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 책임진 형제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며, 그리고 지역교회 교제 안에 있는 모든 분들의 기도와 지원이 필요하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