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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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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역교회 간의 교제

 

2) 지역교회 간의 교제 범위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은 고린도전서 1:1-3에서 지역교회 간의 교제의 범위를 기술하는 바울에 의하여 사용된 말이다. 이 교회 서신에서 주권이 모임 원칙에 연계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옳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먼데까지 복음을 전했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원래 지역교회와의 연계가 무시되지 않았다. 큰 어려움이 나중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일어났을 때,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지역교회들이 자진하여 바울의 격려로 도움을 보내는 일을 떠 맡았다. 바울 자신은 예루살렘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진( 21:17) 선물의 특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22, 고후 8:19). 그러한 서로간의 사랑과 관심은 참된 교제의 영적인 표현이다. 지역교회 간의 교제는 아굴라 혹은 아볼로( 18:27) 같은 성도를 가르치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고후 8:18)에 의해서도 촉진된다. 그것은 또한 여행할 때 방문하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천거서에 의해서도 표현된다. 이 편지들은 지역교회들간에 안부(인사)를 전하며, 모든 성도에 대한 상호간의 관심과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한 편지들은 필요할 뿐 아니라, 교제가 강화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순서가 아직도 사용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예루살렘에서 먼 지역교회들은 최초 지역교회의 모본을 따랐다. 바울의 많은 서신은 일반 모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며, 최초의 모본을 닮기를 바라는 강한 희망을 표현한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전 4:17),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고전 11:16),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그리고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전 16:1)라고 썼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이루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지역교회에 편지를 썼을 때, 그는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6)라고 말했다. 이 순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종 안에서 주 예수님을 먼저 보았으며, 바울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주님을 알도록 인도 받았다. 중요한 점은, 이것은 개인적인 실행의 모본이 아니라, 문맥이 보이는 것처럼, 그것은 지역교회를 위한 모본이었고, 그들이 차례로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살전 1:7)이 되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그들은 다시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살전 2:14)라고 칭찬받았다. 바울은 유대에 있는 성도들이 고난을 받았으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고난 받았다고 단순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닮음은 그들이 고난을 견디고, 그들이 가르침 받은 것에 충성되고 참되게 남아 있는 그 방법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 3:8)라고 썼다. 또 다시, 그것은 지역교회 간의 교제가 공통적인 실행에 기초하고 있다는 모본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지리적, 민족적 혹은 사회적 경계에 제한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지역교회가 모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까지라도 확산되는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믿는 자들을 얼굴로 대하여 본 적이 없었으나( 2:1),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2:5)라고 썼다.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두 말씀은 군사 용어이다. 규모(order)는 군인들의 질서 있는 계급을 의미하며, 굳은 것(steadfastness)은 방어 혹은 공격의 견고한 벽을 나타내기 위하여 방패와 방패가 이어지고 창과 창이 겹쳐질 때, 즉 전장(戰場)에서 촘촘하게 밀집된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한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들의 믿음이 굳은 것을 알았을까? 그 간단한 대답은 그들이 모든 성도의 지역교회에서 행하여졌던 가르침의 모본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복된 본받음은 지금도 행하여짐에 대하여 겸허하게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지구를 돌아 북쪽과 남쪽의 끝에서 믿는 자들이 지역교회의 입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사람에게 공통된 가르침을 행하기 위하여 지금도 모인다. 이것이 지역교회들 간의 교제의 범위이다. 그것은 조직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적인 기구나 규정에 의하여 통제받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이해와 능력의 분량을 따라, 하나님 말씀으로만 인도 받기를 바라는 심령과 마음의 교제이다.

지역교회들은 많은 비공식적인 연계들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 세대보다 더 많이 여행하며, 국내외에 있는 지역교회들 간의 정보는 멀리 떨어져 있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일을 알게 한다. 지역교회들간의 서신 왕래만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지역교회들의 잡지들이 세계 여기저기에 있는 지역교회들에 관하여 믿는 자들에게 알려주며, 복음의 사역과 축복에 대하여 그들에게 연락을 갖게 한다. 이 잡지들은 신약성경 시대에서처럼 성경적인 각 지역교회에 공통된 진리의 가르침뿐 아니라, 말씀집회(conferences)와 특별집회에 관한 정보를 또한 제공한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