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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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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지역교회의 찬송

 

성경은 많은 아름다운 찬송과 노래를 포함하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음악적인 악기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세상의 인기 있는 노래들은 빨리 사라지고 잊혀졌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한 새 노래를 가지고 있다. 비록 회개 할 때 한 새 노래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주어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새 노래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늘 새롭고 결코 낡아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새롭다. 우리들이 땅 위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늘의 노래를 배웠다. 그것은 영원히 새로운 것이다(5:9).

비록 신약성경이 음악적인 악기 사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노래에 수반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 않다. 많은 수반되는 것들이 기술되어 있다.

 

1) 즐거움으로 노래함 -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그들의 노래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이 알려진다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알 수 있게 되고, 일상 생활의 사실이기도 하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노예상태로 있는 동안에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홍해 옆 광야에 그들의 발을 옮겨놓자마자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15:1)했다. 구속의 노래는 그 피의 가치를 아는 자들에 의해서만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 안에 있는 성도들의 증거(간증)의 가치를 충분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간수와 그 간수의 가족에게 그러한 증거(간증)였던 것은 빌립보의 깊은 감옥으로부터 나온 그 노래였다. 노래가 나을 수 없는 상황 아래서, 바울과 실라는 등이 터지고 잔혹하게 발이 묶인 채로, 한밤중에 하나님께 찬미의 송가를 노래했다(16:25).

모든 것이 선하고 거룩한 것처럼, 노래에 있어서도 주 예수님은 위대한 모본(모범)이셨다. 마태복음 26 30절은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라고 말한다. 겟세마네로 나아가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믿는 모든 이유를 나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차가운 마음도 감동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주님은 또한 십자가 이후에도 노래하셨다(2:12).

세상 노래들은 매우 다르다 음악적인 경향은 사회로부터 느껴지는 압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와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주어진 그 시대의 음악으로부터 도덕적인 풍조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운다. 과거 20년간의 유행가 가사를 남으로부터 들어 보거나 대충 보기만 해도 그 경향을 알 것이다. 당신이 막다른 길에 가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있는 것 전부인가?라는 가사는 지금 시대에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마음에 허무함을 남기는 것이라는 것을 보일 것이다. 비극적이지 않은 가사는 도덕적으로 퇴폐적이며, 결혼과 가정의 기초, 그리고 오랫동안 인간에게 있어서 풍성한 은혜였던 모든 것을 훼손하고 있다. 마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선전으로 말미암는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영향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기록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젊은이들에게 매혹적인 높은 맥동음에 오래 노출되는 최면 효과의 결과는 그 음악 효과에 그 의지를 굴복하는 것이다. 이 효과들은 철저하게 기록되었으며, 그 증거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도할지도 모르는 육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범이 필요하다. 그들의 모범은 그들이 동경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어떤 젊은이가 록(rock) 음악 소리에 끌린다면, 그 음악하는 가수와 그 그룹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연주자들의 팬들은 그들의 생활의 세세한 것에 대하여 방대한 축적된 지식을 갖는다. 각성제, 음행, 간음 그리고 동성애가 그들의 생활의 주요 요소이다. 스타들의 인기를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출판업자들에 의하여 이 요소들이 종종 이용된다. 사단(마귀), 죄의 종이 되는 것이 영광스러운 자유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바울과 실라는, 이 불쌍한 영혼들의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보다, 빌립보 감옥에서 더 자유로웠다.

거룩한 음악은 아주 다른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이 헨델의 (메시아) 혹은 바흐의 (마리아 송가)를 즐기기 위하여 성령의 내주(內住)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으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향하여 노래할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이 지역교회에서 찬송할 때, 이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기쁨의 정의 중의 하나는 마음이 노래할 때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 주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아옵나니

아무리 그 노래가 감미롭다 할지라도

성령의 가르치신 심령이 아니라면

주님의 선율을 토해낼 수 없는 것을

 

2) 은혜로 노래함골로새서 3:14-17

기뻐하는 마음은 노래에 대한 한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골로새서 3장은 평화로운 마음 또한 노래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쁨이 있는 것이 마음이 노래할 때라면, 평화는 마음이 차분한 때인 것으로 기술된다. 골로새서 3:14 13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에 언급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다. 그 해답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중재하게, 판정하게) 하라(15)이다. 다른 믿는 자에 대한 나쁜 생각은 우리들의 교제를 빼앗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노래에서 주님을 빼앗고, 우리들의 마음에서 평화를 빼앗는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중재하고(15), 그리스도의 말씀이 거하여(16), 주 예수님의 이름이 억제하며 제지하는 것이다. 15-16절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나 17절은 주 예수라는 이름(칭호)으로 되어 있는 것에 주의하는 것은 유익하다. 우리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면,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으며, 주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의 판정자이다. 그 때 우리는 마음에 은혜(감사함)로 하나님께 노래(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16).

 

3) 감사로 노래함 - 에베소서 5:18-20

감사라는 말은 축복에 대한 사의(謝意)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일 때, 그것들은 그냥 자유롭게 주어진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노력함 없이 일어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에베소서 5:13-20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된 결과이며, 술로 충만되는 것과 대비되고 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한 위대한 진리를 말하는 자리가 아니지만, 17절에서 이것이 모든 믿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18절의 정확한 동사의 시제는 너희는 계속 충만되어 있어라(Being filled, be ye filled)이다. 이것은 영적인 상태이다. 카리스마적인 사람들이 보통 성령이 충만된 것으로 가르치는 격앙되고 감정적인 상태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골로새서 3:14-17은 유사한 구절에서 거의 동일한 말씀을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성령이 전체적으로 지배하게 될 때 서로 말함 즉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할 것이라는 것이다. 19절에는 이 점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다시 우리는 서로 화답하며(speaking to one another)(5:19)에 대응되는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3:16)라는 골로새서 구절을 비교한다. 양쪽 구절에서 노래하는 것(singing)말하는 것(speaking)과 구별된다. 말하는 것은 동료 믿는 자들의 귀에 대하여 하는 것이며,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귀에 대하여 하는 것이다. 골로새서에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노래하는 것은 마음에 감사함(은혜)으로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노래하는 것은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많은 복음주의자 가운데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대대적인 찬양집회 (Ministry of Music) 와는 매우 반대적이다. 거기에서는 인간적인 재능이 음악 가운데 사용되며, 회중(군중)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노래한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은사들의 네 가지 목록(리스트)에는 노래하는 은사나 음악의 은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에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한 재능들의 사용과 통제는 그 권위에 대하여 성경 어디선가에서 보여져야 한다. 긍정적인 모본의 원칙은 나로 하여금 성경의 침묵이 허락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 전에 주의 깊은 성경 해설로 잘 알려진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잡지에 찬양집회(음악에 의한 전도)에 관한 연재기사가 있었다. 이 잘 쓴 연재기사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일은 평상시에는 가르침의 모든 점에 대하여 성경적인 권위를 추구한 데 비하여, 그 기사에는 권위로서 사용된 성경이 한 구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저자들은 성경에 너무나도 정통했기 때문에 성경을 잘못 적용할 리가 없었다.

에베소서 5:19에 나오는 노래(melody)라는 말은, 반주와 함께 노래하는데 사용되는 평상 그리스어이다. 여기서 말하는 반주 혹은 음악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이것이 성령이 연주하는 한 오르간이다. 한 지역교회가 모여서 함께 노래 부를 때, 성령께서 총지휘자이며, 각자의 마음을 찬양의 멜로디(노래)로 이끄는데, 그것이 참으로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melody with your heart to the Lord)는 것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따로따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영감을 받으며, 찬미는 하나님께 찬송하며, 신령한 노래는 하나님께 찬송을 이끌어내는 영적인 역사(歷史)에서 일들을 자세히 말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여전히 이 세 가지 형태의 찬양을 노래한다.

 

4) 인도하심으로 노래함 - 고린도전서 14:14-17

우리는 기쁘고, 평화롭고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이해하는 마음을 보려고 한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4:15에서, 우리들의 노래가 지적인 의미 없이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에베소서 5:19에서 본 그리스어 프살로(psallo)는 여기에서 다시 사용되었다. 우리는 노래하는 것은 성령과 노래하는 자의 이해가 수반된다는 것을 들었다. 이 구절은 지역교회의 노래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으며, 성령과 노래하는 자의 이해 이외에는, 노래하는 데 수반되는 다른 어떤 것도 신약성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해석의 규칙에 대한 우리들의 논의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들에게 따를 긍정적인 모본을 주기 때문이다.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집(Gods building)(고전 3:9)이며, 하나님은 일에 있어서 지혜로워야 할 건축자들이 따라야 할 청사진을 주셨다. 그리고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전 3:10). 이 가르침의 빛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기초뿐이며 구조는 건축자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지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종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봉사에서 음악적인 악기 사용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다. 구약성경은 또한 동물희생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그 쓰임에 대한 논쟁거리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유대인의 모든 의식들은 없어질 그림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림자와 실체 사이를 대비한 이 책 6장을 보라.

레위적인 체제에서 악기들이 사용되는 가운데서도 그것들이 지성소 안에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지역교회에 대하여 쓰인 성소에 대한 것이 이 말씀이다(고전 3:16-17). 그것은 바깥 뜰이 아니라, 안에 있는 성소이다.

노래하는 것에 대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구절들은 참된 노래의 하나님 쪽을 강조하며, 그것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음악적인 악기 사용은 반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가는 참된 노래(melody)는 악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에 중요성이 놓이며, 이것은 마땅히 놓여야 할 자리이다.

 

5) 영광 가운데서 노래함 - 요한계시록 5:9

어린 양이 보좌 한가운데에 계실 때에(5:6), 이 하늘의 노래가 뜰에 가득 넘치는 것이 모든 독자들에게 분명할 것이다. 이것은 아직 미래의 광경이다. 하늘과 땅의 천년왕국 광경에서 노래에 대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14:1-3, 15:2-4, 19:1-6) 그러나 요한계시록 5장은 모든 구속 받은 자들이 영원히 참여할 어린 양에게 대한 영원한 노래를 기술한다. 우리들은 결코 낡아지지 않는 영원한 노래를 노래해야 하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입술이 어린 양을 가치없게 하는 노래들을 부르는 데 결코 사용되지 않도록 얼마나 주의해야 되겠는가!

지역교회 안에는 악기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교회집회(모임)에서 악기 사용은 17세기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것이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