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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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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사람이 나타낸 모임에서 역할

히로사와 노리

사도행전 9:1-9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9장에는 실제 이름이 등장하는 사람 일곱 명이 나옵니다. 각각의 역할에 대해서 확인하며 성도들의 섬김과 일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을 할 때 참고로 삼고자 합니다. 첫 번째 사람이 1절에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가 10절에 아나니아, 세 번째는 27절에 바나바, 그리고 32절에 나오는 베드로, 33절에는 에니아, 36절에서는 다비다라는 자매인데 별명은 도르가이며, 그리고 43절에서는 피장 시몬이 나오는데 이 성도들은 각각 그 역할을 했습니다.

 

먼저 사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9장에 등장하는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박해자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복종하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그 능력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1절에 보면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라고 하는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사울은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또한 사울은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네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의 성격은 매우 열심이고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지금 시점에서는 주님을 위해서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과 이 성질이 깨어지고서 주님 앞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열심이라는 성질을 보기 위해서 20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 여기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갖고 있던 총명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했습니다.

사울을 통해서 아는 것은 출생할 때 갖고 있던 능력을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한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을 9절에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고 했는데 이 때에 사울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1절에 참고가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8절을 확인해 보면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사울은 눈을 보지 못한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간 적도 없었습니다. 사울이 타인의 손을 빌린다는 것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 사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가르침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흘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갖고 있던 좋은 것은 한 번은 깨어지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만약 이 경험을 하지 않으면 원래 가지고 있던 좋은 것을 잘못 사용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열심은 좋은 것이지만 잘못 사용되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뛰어난 능력도 깨어지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사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주님 앞에서 깨어져야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배웁니다.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울은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택함 받은 그릇이었습니다.

 

다음으로 10-19절에서 아나니아를 보고자 합니다.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아나니아는 사울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쓰임 받은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아나니아를 택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아나니아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환상 중에 주님이 부를 때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에서 어린 사무엘을 기억합니다. 부름을 받았을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금방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행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에서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자 곧 나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건한 아나니아, 즉시 순종하는 아나니아가 쓰임 받았습니다. 사울은 앞으로 온 세계를 다니며 전도하는 쓰임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다메섹이라고 하는 그 지역모임 안에서 행했습니다. 한 지역교회에 속해서 그 모임의 성장과 진보를 일했습니다. 사울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나니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복된 것은 주님께 쓰임 받을 사울을 인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도자들을 인도할 때 그 사람이 구원 받아서 큰 일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도자를 인도하는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아나니아는 전 세계를 전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일한 사울을 인도했습니다.

 

다음은 26,27절에서 바나바입니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은 예루살렘 성도들과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믿는 자가 되었음을 아무도 믿지 않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바나바가 사울을 받아들였습니다. 27절을 확인해보면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다고 했습니다. 길에서 본 것과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바나바는 소개하는 사람의 역할을 했습니다. 사울과 예루살렘 성도들이 교제할 수 없었지만 여기서 교제할 수 있도록 바나바가 역할을 했습니다. 모임교제 가운데 바나바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 자신이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하셨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 중간에서 중재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좋습니다. 여기서 바나바가 목회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요나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동료인 다윗 사이에 중재를 위해 애썼습니다. 여기서 바나바는 중재 일을 했고 아나니아는 모임 안에서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32-35절에서 베드로입니다.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 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베드로는 처음에는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의 소명을 받고 순종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사도로 택함을 받아 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에 대해서는 믿는 자가 된 다음에 주어진 은사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믿기 전에 가진 재능이 있고, 믿고 난 이후에 주님께로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은사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애니아를 낫게 했을 때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34절에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의 은사를 가지고 병을 낫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다비다에 관한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여기에 "기도하고"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도르가를 살린 것도 은사로서 행한 것이고 그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베드로는 사도의 은사를 가지고 애니아를 낫게 하고 도르가인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따라서 절대 자신을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낫게 했고 기도의 결과로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주어진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결코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은사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33절에 애니아를 보겠습니다.

33절과 35절을 보면 애니아가 낫고 난 이후에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말이 아니고 그 사람 자신의 몸과 행동을 가지고 주님을 증거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 보았던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도 그러했고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그러했습니다. 말이 아니고 자기의 몸을 가지고 증거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이전에 어떤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파 사람이 쓴 책이었으며 그래서 목사가 등장했는데 어느 전도 집회에서 훌륭하다 일컬어지는 사람이며 지위가 높은 어떤 사람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 사람을 믿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사람이 믿음으로 인도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전한 어떤 말씀으로 결심했습니까?'라고 전한 사람이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늘 전도집회에 맨 앞자리에 앉는 나이든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믿는 여자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믿는 여자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구도자가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뿐만이 아니라 몸을 가지고 증거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36절 다비다에 대해 보겠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여제자라는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여제자라는 말에도 눈이 머물게 됩니다. 요한복음 내에서 세 번 내제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말 안에 거하면 내제자"라고 하셨습니다. 13장에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제자"라고 했습니다. 15장에는 "많은 열매를 맺으면 내제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들과 여기 여제자라는 말이 겹쳐서 보입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고 이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며 많은 열매를 맺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비다를 통한 가르침은 39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다비다가 죽었을 때 모든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든 겉옷과 속옷을 보였습니다. 선행과 구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다비다가 재봉기술을 갖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습득한 재봉기술을 가지고 과부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리들도 학습한 재능과 공부한 이후에 습득한 재능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만약 서예를 공부한다면 어제 앞에 있었던 안내 같은 것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습득한 재능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비다 자매는 모든 과부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겼습니다. 믿음의 추억은 많은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청년일 때 선배 형제자매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추억이 되어서 지금도 힘이 되고 있습니다. 다비다가 겉옷과 속옷을 모든 과부들에게 준 것은 믿음의 좋은 추억이었을 것입니다. 선행과 구제를 가지고 다비다 자매는 자기를 치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9-10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기서 자매들의 두 가지 장식물이 나와 있습니다. 9절에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는 장식이 있습니다. 10절에는 "선행"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장식인 단장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여기에는 염치와 정절로 치장하는 단장, 선행으로 치장하는 단장,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하는 단장 세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4절 후반에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다비다는 선행으로 자기를 단장했습니다.

 

마지막 43절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여기서는 피장 시몬이 베드로를 영접하여 대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집에서 여러 날 유했다고 했습니다. 어느 기간 동안 신세지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피장 시몬은 이것을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머문 집이 피장, 즉 가죽을 다루는 사람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피장인 갑바치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보통은 가죽을 다루는 피장의 집에 가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고 구원받은 형제로서 그 집에 갔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복된 교제를 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방해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접하는 접대를 생각하면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인줄을 모르고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이와 같이 피장 시몬을 통해서는 접대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9장에서 일곱 명의 각각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사도행전 9장을 읽었을 때 사울과 베드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했는고 하니 1-30절까지는 사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32-마지막 절까지는 베드로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니까 9장은 사울과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일곱 명의 각각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각자를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있어서 내가 할 주님의 일은 무엇인가?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잊었다는 것은 31절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9절에 "디메섹에 있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25절에도 "그의 제자들"이라며 이름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서 성벽에서 달아 내렸습니다. 이 일이 없었다면 바울이 살해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30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이 나옵니다. 사울의 신변에 위험을 알았기 때문에 그 위험을 제거하려고 다소로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때 무명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유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1절에는 지역모임에 관한 중요한 세 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평안을 그 모임에서 유지하는 것, 두 번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 세 번째는 성령의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모임전체에 주님의 평안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일 때 불안을 느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평안을 끼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노력해서 평안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인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기사에서도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모임의 교제는 사랑의 교제이며 이것은 매우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것, 즉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지역모임에 특징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위로로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성령은 말씀으로 인도되기 때문에 말씀으로 위로 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결과 모임은 든든히 서 가고 수가 더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나의 모임 내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모임에 다소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5 12 27일 강서모임 -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