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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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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가르치신 기도(1)

키타무라 타다시

마태복음 6장에 있는 기도의 내용으로 여러분이 사용하는 찬송가 첫 페이지 왼쪽에 있는 주기도문과 관계되는 기도에 대해서 교제를 나누겠습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을 암기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 식사할 때 이 기도를 했습니다. 일본어의 고문 문장으로 된 성경구절이지만 제가 지금도 암기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의미도 모르고 그냥 소리만 내었습니다만 오늘은 이 기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6:9-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곳은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금 읽은 6장의 말씀 전부를 보면 세 가지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2절에 보면 남을 돕는 구제가 나와 있고, 또한 5절부터는 기도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16절부터는 금식에 대해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율법학자들이 하는 행위와 비교하면 예수님이 그들과 다른 가르침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할 때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해야 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들도 때때로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은 안 된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안 된다고만 말하지 말고 무엇을 해야 된다고 반드시 말해야 됩니다.

여기서 1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라는 말이 나옵니다. 4절 후반에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세 군데 다 나오는 말씀입니다. 5장을 잠시 보면 5,6,7장은 산상수훈이라 일컬어집니다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의 백성이 어떻게 행하여야 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절에도 있고 20절에 보면 하늘의 백성의 특징이 나와 있습니다. 21절부터는 가르침입니다.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비교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와 있습니다. 21절에서 예를 들어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나 나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가르쳤지만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참된 의미를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21절 마지막까지는 가르침에 대해서 주님이 대응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행위에 대해서 주님과 율법학자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양쪽 다 공통점은 그 눈을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향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흐르는 가운데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나와 있습니다.

 

7,8절에 보면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9절부터 보면 전반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후반은 사람에 대한 세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서 교제를 나누게 될 때 오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향하도록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16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합니. 또한 45절에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며, 48절에도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가르침에 대한 마무리입니다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한가 아닌가"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은 불완전한 것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이 온전한 것이 어떠한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는 말이 어떤 말인가를 생각해 보면 두 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원래는 하나님께 기도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딤전 6:15-16절에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원래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구원 받아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은혜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은혜와 성령이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신 십자가의 사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죄인이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생각지도 못할 관계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시편 146편부터 마지막까지는 할렐루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을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송축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8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 말씀을 좇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12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14 저가 그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거리로다 할렐루야

 

148편은 몇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절에서는 하늘에서의 찬양이 있습니다. 모든 사자, 모든 군대 즉 주님의 군대가 나와 있습니다. 이들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권장합니다. 3-6절까지는 하늘에 있는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달과 별, 하늘 위에 있는 물들을 향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들로 하여금 주를 찬양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7-10절에는 땅에 있는 피조물들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피조물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11절부터는 인간에 대해서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피조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은 이들로 말미암아 찬양을 받는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은 애굽의 종이 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왜 종 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고 하는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물었습니다만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는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18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모세는 바로에게 가서 말합니다.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여기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백성을 놓아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인 가운데 광야 여정을 하게 됩니다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성막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찬양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서 1:1-14절까지 3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4-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의 구원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6절에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4절에 보면 하나님이라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한글 성경에는 빠짐-편집자 주).

7-12절까지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독생자께서 실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독생자로 말미암아 그 세워진 계획이 실행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마지막 12절을 보면 "그의 영광"이 나와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신 것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인데 즉 찬송을 한다는 것입니다.

13-4절에서는 성령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을 독생자가 이루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의 보증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도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나옵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실행해 주셨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면 감사와 찬송과 예배입니다. 우선 우리들은 구원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만 이 은혜는 우리들을 구원하고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 구원이 없다면 우리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신 분을 향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의 부모님은 우리들을 키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를 자녀들에게 주신 부모님들께 감사합니다. 따라서 어버이날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가정에 어머니는 믿는 사람이고 그 자녀가 주일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불신자였습니다. 집에는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식사 기도를 하면서 그 어머니와 아이는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믿지 않기 때문에 아멘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자녀가 하는 말이 '우리 집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와 개밖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따라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여러가지를 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찬송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가와 관련이 되는 것이 바로 찬송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가지 것들을 자녀에게 주지만 아버지가 난폭하다고 가정을 해보십시다. 예를 들어 그런 경우에 아버지는 고맙습니다만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인격자라면 그 자녀는 아버지에 대해서 좋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분의 성품은 사랑으로 넘쳐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분이시며, 의로운 분이시며, 또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정말 놀라운 성품을 갖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보고 놀랍다고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예배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면 예수님의 신분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자이십니다. 그리고 높고 높은 신분을 갖고 계십니다. 점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움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또한 이 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갖고 계신지도 점점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분은 원래는 하나님이신데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분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이 분 앞에 우리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이 분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몸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셨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산상수훈의 가르침, 각가지 행하신 일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풍병자가 나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 일을 보고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이 몇 군데 더 나와 있습니다. 소경이나 귀머거리나, 절름발이 등이 나은 기록에도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생애 불편했던 것들을 제거 받았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다른 곳도 있습니다만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그 아들을 살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처음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라고 했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말씀에는 우리는 주님이 임하실 이 나라가 완전히 실현이 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며 이 나라가 완전히 확립이 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와 같이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단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단이 현재 공중 권세 잡은 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귀가 정복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정복되는 때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이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지 않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미 이 나라가 도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너희 가운데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으며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사단과 죄와 죽음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세계평화를 바라며 여러가지 정치적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세계평화를 바래야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빨리 오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따르면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사실 그 모든 목적은 이 나라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완성을 바래야 합니다. 따라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계시록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는 성막이 만들어져서 예배가 드려졌으며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막 이후에 머지 않아 솔로몬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성막은 광야에서 이동을 했습니다만 성전은 한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도 동물 희생제사를 통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다윗은 악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정하고 성가대도 조직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서였으며, 동물 희생 제물이 사람들을 위해서 취해졌지만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참된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땅에서 예배를 드리며 여기 말씀처럼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5:18절 후반부터 보면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된 희생제물인 예수님이 드려졌기 때문에 동물 희생제물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신약 성도들에게는 악기와 성가대가 필요없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찬송을 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고용한 사람에게 자기를 대신해서 찬송을 하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꿈 속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목소리로 듣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고용한 사람을 보내고 자기 목소리로 찬송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찬송의 능숙과 서툶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심으로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 몇몇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복음서를 보면 누가복음 2장과 3장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일본성경에서는 영아(우리성경에 아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절에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여기서는 어린 아이(우리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음)라고 나와 있습니다. 일본어 성경에 따르면 처음에는 영아로 나와 있고 팔 일이 지나는 때 어린 아이로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22절에는 사십일이 지난 이후입니다만 아기(일본어 성경에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로 되어 있습니다. 42절에는 예수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아이 예수(일본어 성경은 소년 예수)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갓난 아이가 되어 주셨으며 어린 아이라고 불림을 받으셨습니다. 12살에는 소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다음에 3:23절에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여기는 예수님이 삼십세쯤 되었습니다. 3장에서는 12살에서 서른 살로 갑자기 뛰어 갑니다. 여러분 가운데 12살과 서른 살 사이에 계신 분이 있습니다. 12, 13, 14살 이렇게 자라서 서른 살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저는 예수님이 놀랍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을 통과하셨기 때문입니다. 12살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춘기를 지나고,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청년기를 지납니다. 우리 사람들과 같이 육체적인 성장을 경과했습니다.

2:52절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께서 12살부터 그 지혜가 자라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지혜가 자라가는 연령이 있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도 자라갔습니다. 여기서 키가 자란 것을 말하기에 우리도 동일하게 육체적인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잘 아시는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스러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사랑하시는 분도 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몸을 가지고 사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삶을 살아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사역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하게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의 특징은 자기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우리들은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어떻게 행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을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보내신 이의 뜻은 39절과 40절에 있는 그대로입니다. 두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는 39절에 있는 대로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두 번째는 40절에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또한 우리들을 향하신 그 일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부활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뜻이 여기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2016. 10.1 강서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