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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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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로저스 -

천사가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선포한 분, 주님의 많은 특징과 뛰어나심 및 완전하심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분이 전도자로서 본이 되심을 잘 생각했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전도자이시고 동시에 메시지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1960년대 캐나다 작가인 마샬 맥루한의 세속적인 말을 “그리스도는 좋은 소식의 매개체였다”라는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주님께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말했듯이 그분은 항상 말씀이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의 전도의 모범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심오하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육체로 나타난 하나님이셨고 완전한 모본이 되는​​ 전도자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적으로 인식된 전도자로서 짐을 지고 있는 자, 잃어버린 자, 떠나는 자, 죽어가는 자, 유족, 낙심한 자, 마음 완악한 자, 그리고 진실하고 영원한 것을 찾지만 죄악에 젖어 있는 혼에 대한 복음적 돌보심과 염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순간의 행복, 썩어질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참으로 필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많은 갈급한 혼들에게 현장에 나타나셨습니다. 전능한 신성을 가리시고 사람과 같은 육체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즉시 치유하고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때때로 그분은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부여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구원을 찾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이해하고 더 확실히 깨닫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각 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셨는데 마치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를 찾는 것과 같았습니다. 군중들은 그분을 에워싸며 상기되어 변덕스럽게 찬양을 불렀고 종려나무 가지를 그 앞에 놓아드렸습니다. 그러나 구주는 적은 수의 개인을 위해 주의 깊고 세심하게 말씀하셨으며 알아들을 준비가 된 혼에게만 의미가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막 4:23).

 

현대인들의 선입관에 따르면 주님은 거의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분은 군중을 피하고 명예를 얻기 원하지 않으며 기적이나 이적을 바라는 사람들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분은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음식이 너무 적은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기적적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분은 분명 대중을 냉정하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외치며 고소하는 군중들이 비웃고 조롱하며 비난하는 끔찍한 장면을 생각하며 그분을 잠시 멈추게 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영적 진리에 담긴 어떤 위대한 내용을 군중에게 설득하려고 하지 않으셨고 새로운 영적 운동에 군중을 동요시키는 데 관심이 없었지만 그분의 메시지는 여러 면에서 확실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심각하게 왜곡된 믿음에 관한 당시의 오해와 혼란을 해결하고자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말하기를 ...”라고 말씀하신 후 “그러나 내가 …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주님은 종종 진정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을 드러내셔야 했습니까? 믿음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해야 할 그들이 믿음을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많은 거짓 종교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그분은 상한 심령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셨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그분의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심오한 진리를 말씀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은 그랬지만) 육체적, 영적 속박에서 고통받는 마음을 진정으로 풀어주는 삶의 변화를 원하셨습니다. 배고프고 상처를 받았거나 억눌린 자들에게 그분의 메시지는 안도감을 주고, 짐을 덜어주며,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물가에서 죄 많은 여자에게 주님께서는 따뜻한 보살핌과 칭찬의 음성으로 대화하십니다: “네가…잘 말하였도다.”(요 4:17). 그러나 진리는 주님에 의해 빠트려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그녀의 진실을 고백하게 하여 그녀의 상태를 알려주시며 더 이상 그녀를 부담시키거나 수치스럽게 하지 않고, 그분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녀에게 은혜롭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물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것들이 사실이기 때문에) 참된 울림을 주며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을 침묵시키면서 항상 낮은 자리를 택했고 그분의 메시지에 아버지의 손길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았으며 그분은 오직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분의 메시지들은 영혼들을 향한 자신의 열정에서 나왔지만 진정으로 그분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셨다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내가 이것들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마치 자기 관심에 대한 어떤 질문이라도 없애기라도 하듯. 그분의 권위는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우리는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는 아버지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많은 인용문과 말씀을 회고할 수 있고, 그분의 복음전도의 모본의 다른 많은 방법들이 탐구될 수 있지만 이 글에서 논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복음전도의 모본에 흥미로운 한 가지를 여러분에게 남기고자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정말로 관심을 기울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때때로 많은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분의 표현과 발언은 많은 사람들이든 혹은 개인이든 간에,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필요와 우려를 해결하려는 개개인의 혼에 초점이 맞추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마음에 갈망했던 “영원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