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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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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조이스-

주 예수님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였는데 그분의 말씀의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그분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어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 지식과 이해력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지성과 능력을 창조한 분이기 때문에 독특한 교사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주제와 청중을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그 상황에 대한 적절한 말과 의도된 결과를 얻기 위해 의사 소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 방식을 관찰할 때 우리에게 풍성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배우심

이사야는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학식 있는 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내가 피곤한 자에게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 하시나니 그분께서 아침마다 일깨우시되 나의 귀를 일깨우사 학식 있는 자같이 듣게 하시는도다”(사 50:4). 그분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아버지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분께서 광야로 물러가사 기도하시더라”(눅 5:16). 주님은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과를 시작하시기 전에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단둘이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가르치신 대로 사심

제자들에게 서로 섬기도록 가르치면서,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써 섬기는 법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요 13:15). 복음을 위해 복종했거나 자기를 부인하거나 고난을 받거나 여부에 관계없이 그분은 먼저 그러한 삶을 살았으며, 그분은 또한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삶의 방식과 가르침 사이에 현저한 불일치가 있다면 그 사람의 가르침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교사가 본받아야 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심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눅 24:27). 그날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은 그들이 배웠던 진리를 주님께서 새롭게 비추어주시는 특정한 성경과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식은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수많은 성경에 확실하게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듣는 자들이 성경에서 가르침 받은 근거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듣는 자를 교화하고 굳게 하는 능력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예화를 사용하기

그분은 추상적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이야기와 예를 사용하셨습니다. 가끔 그분은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사용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요 3:14). 다른 이야기들은 일상적인 직장생활 가정생활 또는 종교 생활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분은 가까운 곳에 있는 예들을 사용하셨는데 제자들이 성전 건물의 웅장함을 말할 때, 가난한 과부의 연보하는 모습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과 같은 최근의 일도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단순히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주의를 끄는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어떤 진리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예화는 양심에 자극하여 추상적 진술로는 불가능한 장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에서 바리새인들이 종들을 때리고 아들을 죽인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평결을 내렸을 때 무의식 중에 그들 자신들을 정죄했습니다(마 21:41). 주님께서는 능숙하게 그 비유를 결론으로 ​끌어 내심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 속에 사악한 농부들이 자신들이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종종 비유를 사용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는 일상의 경험과 영적 진리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비유는 영적 실제에 접근하는 창 역할을 합니다. 주님의 비유들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자들에게 비유는 진리를 밝혀줄 것입니다. 비유를 들은 후에 듣는 사람은 이야기의 이면에 있는 의미를 숙고하고 성령님에 의해 이해력을 얻습니다.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비유는 단지 이야기 일 뿐이기에 영적 진리는 그들의 이해로부터 숨겨져 있습니다(막 4:10-12,24-26). 어떤 비유는 농부들의 비유에서와 같이 직설적이고 요점은 분명합니다(마 21:33-46). 듣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영적인 진리를 이해할 것인지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나중에 필요한 진리

주님은 나중에 필요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것의 대부분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 부분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 13:7). 그분은 제자들에게 장래에 필요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현재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었지만, 사건이 일어날 때 - 그분의 죽음, 부활, 승천, 오순절 - 그분이 가르쳤던 진리는 성령님이 그것들을 기억하게 할 때 더욱 잘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가르칠 때 우리는 항상 청중의 이해 수준과 현재의 경험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행 20:27) 전체를 가르치고 그들의 마음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것이 현재 우리의 상황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단지 석 달 후에 우리의 믿음을 지속시키기 위해 기억해야 할 진리일 수도 있습니다.

 

반복

주님은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가르침에 어떤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그들의 마음이 잘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주님에게서 배웠고 그는 실제로 같은 방법으로 실천했습니다(벧후 1:12-13). 진리는 가르치고 다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청중에게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선언이 흥미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이 주어진 진리를 가르치는 것처럼, 진리는 언제나 신선한 방식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살아 있으며, 성숙한 신자들은 그것이 익숙한 교훈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가르쳐진 진리를 듣는 것은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침 방법은 우리가 집회에서 공적으로 가르치든지, 주일학교에서든지 또는 저녁 식사 시간에 개인적으로 교제할 때 등에서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원칙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 영원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