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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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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마리셋-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발견되는 비교할 수 없는 위엄과 완전함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 일입니다. 그분은 한없는 우리의 경이의 초점이며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에 관한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런 계시는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며 그분에 대한 끊임없는 감사와 기대를 가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주님에 관한 성경에 수많은 보배로운 진리가 있으며, 이 글에서는 그 중 한 가지 즉 본이 되는 아들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려하고 탐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기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칭찬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과 의도를 가질 수 있지만, 우리의 미약한 시도는 종종 실패할 뿐만 아니라 본이 되시는 아들 안에서 발견되는 비할 데 없는 완전함을 생각하면 우리의 실패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6:38에서 우리는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아름다운 말씀에서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노력할지라도 우리의 노력은 종종 결함이 있고 미약하지만 그분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은 끊임없이 확고했으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성취하려는 그분의 열망은 언제나 우리 주님의 말씀과 행동의 핵심이었습니다. 주님 외에 그 누가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요 8:29)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갈보리의 엄청난 고통과 버림, 슬픔이 눈 앞에 있음을 알고 고뇌하면서도 그분은 항상 굳게 서서 “항상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계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8절은 그 완전한 아들이 어느 정도까지 순종하셨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누가복음 2장에서 우리는 본이 되신 아들 주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일상 생활, 이웃, 학교 운동장, 가족 모임 등에서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을 묘사해야 한다면 어떤 형용사와 서술어를 사용할까요? 누가복음 2장에서는 주님에 관해 독특한 표현으로 “아이가 자라며 영이 강하게 되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6절에서 우리는 12살 때 성전에서 박사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시며 그들에게 문제들을 묻기도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분은 그들과 논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겸손하게 성전에 앉아계셨습니다. 이 아들은 매우 놀랍고 비할 바 없는 분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말을 들은 모든 자들은 그분께서 깨닫고 답변하시는 것들로 인하여 깜짝 놀라더라”(47절)고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그분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그분을 보고 놀라며”라고 읽은 직후에 누가복음에 기록된 마리아에 대한 처음 주님의 온유한 대답은 “어찌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해야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그들에게 복종하시더라”(51절)고 읽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창조자, 만물을 붙드시는 분, 별을 만들고 우리의 호흡을 주관하시는 분이 나사렛의 마리아와 요셉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순종하는 자녀로 사셨습니다. 진실로 주님은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일에서 그분은 본이 되시는 아들임을 실제로 보여 주셨습니다.

 

본이 되는 아들로 우리가 주 예수님의 진리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은 그분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데 보낸 시간을 고려할 때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자기들을 키우신 분들을 외면하고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등을 돌리며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관계를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읽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본이 되는 완전한 이들이십니다. 막 1:35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새벽에 아직 날이 밝기 훨씬 전에 그분께서 일어나 나가서 외진 곳으로 떠나 거기서 기도하시더라.” 주님께서는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을 매우 우선으로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4:23절은 완전한 아들이 산 꼭대기에 올라가 아버지와 함께 홀로 남아 기도했던 때를 언급합니다. 누가복음 6:12절은 우리 주님께서 밤새 기도하며 아버지와 대화하며 보내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소통을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기도로 아버지와 대화하셨고, 한적한 곳을 찾았으며, 군중에 둘러싸일 때에도 아버지와의 교제를 누리기 위해 잠시 멈추고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도 본이 되신 아들로서 주 예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이 부분에서 우리는 주님의 머리에 가시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자주색 옷을 입히고, 조롱당하고 학대받고 거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읽습니다. 요한일서 4:14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갈보리까지 보내셨습니다.

 

이 장에서는 십자가 위에 그분을 생각할 때 아들을 본으로 삼으신 우리 주님에 관한 아름다움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주님을 거절하고 조롱할 때, 주님은 “그분이 사랑하던”(26절) 제자와 함께 그분의 어머니를 내려다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고통 가운데서 멸시를 당하고 거부를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그분의 어머니에게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하고 요한에게 “네 어머니를 보라!”(26-27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인데 그토록 개인적인 큰 고통의 시기에 우리 주님은 자신이 없을 때 마리아를 보살핌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완전한 아들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비할데 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한때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요일 3:1)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