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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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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 즉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나라와 분리한 민족을 말합니다: “이 백성은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지 아니하리로다.”

 

첫 번째 비유(민 23:7-10)

하나님은 그들에게 첫째 자리를 주시고 그들을 그분 자신의 유일하고 독점적으로 만드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 자신을 위해 분리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성별되고 그분의 기쁨을 위해 성별된 백성입니다. 그분의 눈에 택함을 받은 백성(신 10:15; 32:9-10). 그들은 그분이 영광을 받으실 백성(사 49:3, 61:3), 특성으로 거룩한 제사장의 백성(출 19:6),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신 14:2, 시 135:4)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밝은 미래가 있으며(사 18:2-7). 그녀가 열국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때(신 28:13), 평화가 그녀의 분깃이 될 때(사 60:18)입니다. 그날에 그녀는 번영을 누리고(미가 4:4) 열방 위에 존귀와 명예와 권세의 지위가 높아지리라(사 61:4-9). 그 때에 이스라엘이 백성 중에서 이름과 찬송을 얻으리라(습 3:20).

 

이스라엘의 미래의 복과 영광은 과거의 복과 영광을 능가하고 더 빛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좌절되거나 전복될 수 없습니다. 발람은 그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보며 “누가 능히 야곱의 티끌을 셀 수 있으며 이스라엘의 사분의 일을 셀 수 있으리요?”(민 23:10)라고 묻습니다. 넷째 부분이 이토록 많으면 전체 진영이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관점은 마지막 때의 증대, 힘, 권능을 가리킵니다(창 13:6; 28:14; 32:12).

 

발람의 비유에 나오는 많은 귀중한 원리는 현재와 미래에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데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복을 받습니다. 비록 사탄이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의에 도전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목적이 성취되고 그 목적은 하늘 영광에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찬송할 뿐 아니라 그분의 의로움도 영원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현세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이는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심과 같이 우리도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입니다(요 17:16). 고린도후서 6:14-18의 호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분리되고, 그분의 기쁨을 위해 성별되고, 그분의 찬양과 영광을 위해 거룩해졌습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안에서 우리의 위치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우리는 잠시 이 땅에서 나그네이자 순례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면서 사람 앞에서 하늘의 부르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 있는 거룩한 성전이요,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곳인 지성소입니다(엡 2:21).

 

발람이 “나는 의로운 자의 죽음으로 죽기를 원하며 나의 마지막이 그의 마지막과 같기를 바라는도다!”(민 23:10)라고 외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발람은 의인의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그의 최후는 이스라엘의 손에 멸망당했습니다(민 31:8). 발람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끝”은 천년왕국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발람처럼 의인의 죽음은 기꺼이 죽고 싶지만 의로운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영으로 주님께 인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은 매일의 의로운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허무한 것을 버리고 참되어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로서 경건한 증거를 합시다. 이것만이 이 부패하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한 효과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증거는 문자로 되어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 즉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한 영향력이 부족할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민 23:18-24)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첫 번째 시도에서 발락은 발람이 그의 눈에 이스라엘을 약화시키기 위해 진영의 일부만 볼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술은 눈에 보이는 것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반대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발락은 이제 발람을 데리고 진영 전체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지점으로 데려 갑니다. 다시 발람이 사술을 구하러 나갔으나 이제는 주님(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십니다(민 23:16). 호칭의 변화는 중요한데,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의 배타적인 소유로 간주되어 분리된 백성입니다. 이제 이 비유에서 이스라엘은 언약의 은혜에 근거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언약에 비추어 볼 수 있는데, 그 언약의 성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야곱 안에서 불법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 안에서 잘못을 보지 아니하셨도다”(민 23:21)는 하나님의 눈이 제단 위에 있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한 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적, 외적 모두에 있는, 즉 내적인 것을 언급하는 죄악과 외적 삶에 대한 왜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셨을 때 죄악을 보지 않으셨기에 그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은 완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배은망덕한 특징이 있는 목이 뻣뻣하고 반항적인 백성들이 아니었습니까? 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의와 패역을 보지 아니하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에게 죄악이나 패역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의 근본은 그리스도의 사역이고 그 성취가 절대적으로 확실한 언약의 관점에서 바라보십니다.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10: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있는 그대로 보시고 갈보리에서 그분 아들의 완전한 희생을 근거로 그들의 죄악과 패역을 그분의 눈앞에서 없애 버리심으로써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그분은 구속의 땅에 있는 이스라엘이 그분 앞에서 완전케 하십니다.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 4:8).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흠과 점이 없이, 완전히 자기와 화해된 새 피조물의 흠 없는 아름다움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구속의 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롬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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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