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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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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앞의 계명과 마찬가지로 이 넷째 계명은 그것이 포함된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하기 위해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6일 후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안식의 원칙을 세우셨습니다.”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창 2:2-3). 우리는 하나님께서 피곤해서 쉬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분은 변화나 약점을 알지 못합니다. 원칙을 세우실 때 하나님은 연약한 피조물과 그들의 영적, 육체적 필요를 염두에 두셨습니다.

 

신명기에서 이 율법의 재언급에서 추가 조항이 더해졌습니다(신 5:12-15).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과 편 팔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도 그들의 마음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과거 요구 사항

율법을 주실 때 안식일은 민족과 하나님 사이의 “영원한 언약”(출 31:16)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가장(家長), 다른 가족 구성원 및 직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가축을 사용하는 것과 지역사회에서 외국인의 활동 “네 성문 안에 있는 네 타국인”(출 20:10)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하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는 날이었습니다(출 16:29, 암 8:5). 안식일에 제사장의 봉사가 증대되었습니다. 상번제를 위하여 아침에 어린 양 두 마리를 드리고 저녁에 다시 두 마리를 드려 평소의 한 마리 대신에 드렸습니다(민 28:9-10).

 

이 법을 어긴 자들에 대한 심판은 가혹했습니다. 안식일에 나뭇가지를 모으다가 불을 피우다 발견된 사람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민 15:32-36). 만나를 주실 때에 안식일 전날은 갑절로 거두어 백성을 이틀 동안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려고 하던 자들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출 16:22-30).

 

그 땅은 일곱째 해마다 안식할 것이요 경작된 땅은 그 해 동안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해에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충당할 만큼 이전 해에 충분히 공급하실 것입니다. 이 점에서 그들의 태만은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490년(70×7) 동안 그들은 불순종했습니다(대하 36:20-21; 렘 25:11; 단 9:2).

 

현재 의식(儀式)

유대인의 계산에 따르면, 한 주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녘에 시작하여 토요일 같은 시간에 끝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실천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모든 곳에서 유대인 생활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통파, 전통적 유대교 또는 세속적 유대교 신자의 순응도는 다양합니다. 현대 국가가 허용되어야 하는 대중 교통이나 상업의 수준과 같은 문제와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논쟁은 이스라엘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정통 가족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기도를 암송하고, 토라를 읽고, 축제 음식을 나눌 것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와 같은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이 안식일 전에 이미 켜져 있었다면 그대로 둘 수 있습니까? 라디오가 안식일 전에 이미 재생되고 있었다면 볼륨을 높일 수 있습니까? 그러한 행위는 노동으로 간주됩니까? 젊은 유대인들은 그날에 휴대폰을 사용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반쪽 안식일”로 언급하여 어느 정도 타협을 인정합니다.

 

현재 관련성

의미심장하게도, 넷째 계명은 신약에서 반복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언급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한 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기독교 안식일로 언급합니다. 주님의 날 준수 단체는 조용한 종교적 준수의 특별한 날로 그 날의 보존을 옹호합니다. 그들은 일요일이 또 다른 바쁜 쇼핑의 날, 한가로운 운동의 날 또는 심지어 세차 같은 날이 된 서구 사회의 세속화 증가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다소 다른 이유로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주 6일 근무에 이어 7일째 쉬는 근무제를 폐지하려고 했으며, 이는 생산 바퀴가 하루 종일 유휴 상태가 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무신론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끈질긴 종교적 감정을 약화시키려는 근본적인 희망도 있었습니다. 11년간의 실험(1929-1940)은 재앙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필수 요소라는 생각을 지지해 왔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때 정죄한 율법 준수의 또 다른 예라고 간주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하루를 하나님을 위해 따로 떼어놓는 원칙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한 주간을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으로 분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할지라도 창조 이후에 하나님이 하신 일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날(일요일)은 종종 활동으로 가득 찬 날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루 종일 여기저기 다니며 설교하고 가르치다가 지쳐서 침대에 쓰러집니다. 어디선가 휴식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이 땅에 대한 그분의 목적이 성취될 때 영원한 안식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모든 일이 그렇듯이, 문제는 극단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너보다 더 거룩하다”는 태도는 휴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육체는 육체 노동에서 회복하기 위해 휴식과 수면이 필요합니다. 마음도 쉼을 얻어 새롭게 되살아날 필요가 있습니다. 의학적 근거만으로 이러한 필요를 소홀히 하면 신체적 또는 정신적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에 가서 잠시 쉬라”(막 6:31)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은 봉사의 시간을 보낸 후 그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보살핌을 나타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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