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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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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7. 10:31 바울과의 항해

교회(敎會)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하게 되었을 때에 위대한 진리의 실마리를 계시로 받았습니다. 이는 믿음의 순종을 위하여 알게 하신 바 사도로서의 주옥같은 교훈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영광의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힐책하신 것 가운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과 은혜시대의 성도들이 하나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도 중 지극히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할지라도 곧 주님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늘에서 영광스런 머리가 되신 주님의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한 몸의 진리는 바울 외에 다른 사도가 언급한 일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특별히 바울에게 알게 하신 비밀의 경륜이라 불렀습니다. 실로 이는 바울의 광범하고 다양한 교리 중에서도 이채로운 진리였습니다.

로마서 16 25-27절의 말씀에서 이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능히 너희를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비밀의 내용이 에베소서 3 1-12절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기록하면서,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셨다.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다.

이 세대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셨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다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예언이며 축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다만 초신자들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가릴 것 없이 하나님께로 나서 성령님으로 한 몸이 되고 동일한 성령님으로 하늘에 계신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연합되었다는 사실은 전에 결코 알려지지 않았던 진리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교회에 관하여 상고한다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것이기에 구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 관한 사실은 주님의 심중에 있었던 은밀한 계획이었으며 독생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사실이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오셨을 때에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에 관련하여 바울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고 말했습니다.

한 몸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신자를 가리킵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선물은 지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만듭니다.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통적이고 사도적인 교회 입니다. 초기에는 아무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7).

초대교회에서는 다른 아무런 지체에 관한 사상도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을 때까지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진리는 알려지지 아니했습니다.

교회에 관한 지식에 앞서 사실이 먼저 나타났습니다. 이제 성도 각자는 이에 관해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서신 어디에서나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관한 진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머리로 주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에 대한 준비로 한 몸을 이루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는 다른 점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머리 되심과 주님께 복종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실제로 이 진리를 실천함에 있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서로 매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순종을 위해 알리신 이 위대한 진리란 무엇일까요? 각 신자의 실생활에서 이 진리가 실현 되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는 확실히 몸도 하나요 머리도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 기구 중에 하나도 불필요하거나 버릴 것이 없으며 어떠한 일도 머리가 모르는 채 되어지지 않습니다. 교황 제도를 비판하던 루터에게 로마 카톨릭은 교회는 하나의 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응수했었습니다. 그때 종교 개혁의 위인 루터는 , 그렇습니다. 그 머리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초신자 여러분! 전실 전력하여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만약 당신이 머리를 붙드신다면 당신은 유일하신 몸의 지체가 될 것입니다. 한 머리에 많은 몸이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여러 몸들 가운데에서 어느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언젠가 전도자에게서 이와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한 몸이 있을 뿐 다른 것은 모릅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이었습니다.

이것은 불친절하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기나 다른 이를 비난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위대한 비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체들로서 서로 서로 이 진리의 제한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에게 열렬한 사랑을 금지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느 전도자와 부인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부 인: 당신은 어느 교회에 속해 계신가요?

전도자: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습니다.

부 인: 그렇지요. 저도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또한 교회의 일원이랍니다.

전도자: 자매님, 확실히 우리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군요. 자매님은 한낱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전에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 몸과 한 성령님에 대해 배운 후로는 한낱 그리스도인이 됨을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부 인: 그러나 당신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전도자: 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과 더불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당신에게 소개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해 주실 때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른 무슨 신분이나 지위를 원하시며 필요를 느끼시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입니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첫 열매로써 교회의 일원입니다.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입니까? 분리주의의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모든 믿는 자가 함께 있었으며 주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아 그날로 더해졌는데 3천명 가량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2:41,42).

어느 곳에서도 오늘 날과 같은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건만 무분별한 배도의 현상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만약 두 세 사람만이라도 그렇게 한다면 진정한 교제가 있게 되며 주님께서 상실했던 머리의 위치를 회복하시고 가리워졌던 한 몸의 진리가 드러나므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진리와 더불어 지역교회의 진리는 한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정한 지역에 모여 있는 신자들은 한 몸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 외에는 지역교회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신자들의 무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실례들과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중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를 중에 있느니라( I8: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주님의 백성들의 성서적인 모든 집회에 적용됩니다. 주님이 항상 중심이 되시며 머리가 되셔서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를 인도하십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 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2:12)는 말씀대로 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지역교회가 시작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 몸의 각 지체는 분명한 계기에 그 도시에서 지역 개교회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이들은 오순절에 천하 각국으로부터 찾아 온 사람들로서 피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자 널리 흩어지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쫓겨 나기도 했습니다. 복음은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모임(교회)이 형성되는 곳 마다 지역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모임이 형성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든지 두 세 사람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함께 모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지역교회는 우후죽순처럼 솟아 났습니다. 이 적은 무리에 다른 이들이 더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성령님의 침례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배척당했던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극히 단순했습니다. 아무런 인위적인 조직도 없었으며 신분상의 성직자 제도도 없었고 신분상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인정받았던 신자는 여행 중 어느 곳에 가든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순종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즉시 일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신자는 자신이 교제할 수 있는 무리를 찾았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런 형제들에게 천거서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어느 지방에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16:1, 고후 3:1, 18:27). 그러나 이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에베소 교회에서 제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만일 에베소 교회에 있는 알려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면 그의 요구가 정당하게 인정되었을 때에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에도 영접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고 초대교회의 단순함에 비하여 얼마나 변질되어 버렸는지 커다란 각성의 필요를 느낍니다. 몇 가지 자문자답을 통해서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는 지금 행할 수 있습니까?

미지근하게 사랑하고 있었을 때에 전과는 달리 죄악과 유해한 교훈이 외부로부터 흘러 들어와 송이꿀처럼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이 모든 타락과 실패는 성령님에 의하여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잘못된 교훈으로 인해 장차 당하게 될 불행한 파멸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작별 인사를 할 때에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이 문제에 관해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바울은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냉랭한 심령에게나 타락한 상태에 있거나 간에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악한 시대가 이르렀을 때에 어떤 길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초에 어떻게 일했던가를 찾아 내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 그대로 모든 말씀을 불경건하게 잘못 가르친 자들로 인하여 잘못된 교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말씀이 교제에 영접해야 할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교제에서 거절해야 할 사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과 머리로 삼아 주님의 모든 교훈과 방법을 받아 들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가르침에 바르게 서 있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에는 틀림없겠으나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잘못을 스스로 깨닫기 까지는 영접되지 못할 것입니다. 도덕적인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거룩하지 못한 행실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 실패가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태에서는 영접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죄에 대하여 깨닫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확증을 보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사실이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등한시 되어 왔습니다. 마치 큰 집에 가치있는 그릇과 무가치한 그릇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약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합당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뒤죽박죽된 상태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하며 이 모든 것에서 떠나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며 불의에서 떠나 있는 무리들과 함께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딤후 2:19-22).

또한 한 몸의 진리의 토대 위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다른 지역에 있는 무리들이 비슷하게 모이고 있으며 동일한 신분이라면 이것은 원칙적으로 초대교회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도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를 다시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참상을 시인하는 것이며 단순하게 화평의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4:3). 어려움이 많이 따를 것입니다.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서글픈 사실들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주님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고자 한다면 일어나는 모든 경우에 합당하게 해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는 참여해야 할 교제를 더욱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한 주님을 섬기며 한 몸의 간증을 잘 나타내 주는 교훈과 모든 방법에 대하여 열려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들과 함께 모이지 않기 위해서이며 다른 사람의 죄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특별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악하게 살아 가고 있는 사람과 동행하거나 인사만 나눌지라도 그의 악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2서 참조).

그러나 만약 성경을 분별하게 된다면 모든 어려운 문제는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최초에 한 교회에게 적용된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두는 하나였습니다.

전도출판사 출판 바울과의 항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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