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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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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1. 13:58 빛 가운데로 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자들

죤 찰스 라일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혼잡하게 한다는 헬라어 원어는 어원이 학자에 따라 다양하여 여러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말하면 상인이 상거래에서 속임수를 쓴다든가, 포도주를 파는 사람이 순수한 포도주를 팔지 않고 협잡물을 타서 판다든가 하는 내용의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틴데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거나 임의로 삭제하는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번역했고, 라인 역에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지 아니하고" 라 했다. 영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하게 하지 아니하고"라 되어 있고 그 난외주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아무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발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아 사도시대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바른 마음으로 충성되게 전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시대에는 순수한 말씀만이 전파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불의의 비밀은 당초부터 역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오늘날에 있어서랴. 진리에 바로서지 못하고 의곡되게 말씀을 전하는 모든 풍조를 우리는 배격하고 경계한다. 자의로 말씀을 빼고 더할 수 없다. 스스로의 기호에 따라 말씀의 무게를 더하거나 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정죄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첫째, 성경의 그 어느 부분이든지 그 절대적인 영감설을 의심하거나 부인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가 된다. 한 그릇의 물만 못쓰게 할 뿐 아니라. 물의 근원까지 못쓰게 만든다. 한사발의 생명수만 못 먹게 할 뿐 아니라, 전체 샘물마저 흙탕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성경의 어느 부분이든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을 부인한다고 하자. 그러면 위기에. 이른 것은 그 한 부분만이 아니요 우리의 전체 신앙생활이다.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그 한 장절만이 아니요 우리의 근본적 신앙이다. 신앙의 근원이 마르는 것이요, 신학의 뿌리가 썩어져 들어가는 것이다. 썩어져 가는 뿌리에다 무슨 줄기와 잎사귀에 생명이 있겠으며, 무슨 아름다운 열매를 얻을 것인가. 종국엔 한 그루 고목으로만 남을 것이다.

성경의 절대 무오설에 관해선 난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필자 자신도 잘 안다. 우리가 선뜻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점들이 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어떠한 동격에도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입장은, 성경의 구구절절 한마디 한 마디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하는 이 신앙이다. 이것이 필자의 겸손한 판단이다. 현재의 지식과 연구로 풀 수 없는 지엽적인 난제가 있다고 해서 기본 원리마저 부인한다는 것은 일반 과학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신학에 있어서도 있을 수 없다. 한정된 인간의 두뇌와 지식으로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도전할 수 있으랴.

둘째, 교리를 내세우고 주장할 때에 냉철한 제삼자의 입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가 된다.

교부들의 글이나 교파의 가르침을 성경의 평이한 말씀과 동등하게 그 권위를 인정할 때에 우리는 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을 제쳐놓고 특정된 사람의 의견과 주장만 가지고 노닥거릴 때 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는 생각지 않고 천중만 생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다는 자각보다 설교를 위한 설교를 할 때, 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시대에서 낙오된 사람, "종교적 아량"이 없는 사람, 완고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낙인될까 두려워 그 일에 신경 쓸 때, 우리는 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영원한 멸망과 영겁의 지옥 불이 모든 불의한 사람들을 기다린다고 바로 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설교자마다 자기가 좋아하고 특별히 강조하는 교리가 있다. 너무 이에 치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강조하고, 일면만 알고 다른 한 면은 지나쳐 버릴 때가 많다. 모든 말씀을 이것 저것 아무 쪽으로도 기울게 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정죄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모름지기 바울의 교훈대로 모든 일을 "믿음의 분량대로" 할 것이다.

반면 모든 설교자는 마땅히 전할 것은 담대히 전해야 한다. 사람들의 비방에 대한 필요 없는 우려로 인해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가 되어선 안된다. 무턱대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교리가 두려워, 율법의 행함 없이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영광스러운 진리를 바로 외치지 못하는 자, 율법주의자라는 말이 듣기 두려워, 성도의 거룩한 행실에 대한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자,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말하기를 꺼리고, 중생에 대하여 바로 전하지 못하고, 두원의 확신에 대하여 바로 외치지 못하며, 성경의 진리가 부끄러운 듯, 성경상의 용어가 시대에 뒤떨어진 듯, 말씀을 곧이 곧 대로 전파하지 않고, "좋은 말" 적당한 말로만 둘러 맞추는 모든 자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라는 것이다.

세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개개인의 입장과 형편에 따라 바로 적용해 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가 된다. 교회마다 성도와 죄인들이 섞여 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다 죄인이 아니듯이 모든 사람들이 다 성도가 아니다. 구원 얻은 자들이 있는 반면에 또한 죄인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이와같은 구분하기를 꺼린다. 침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또는 교인이 되었다고 하여, 모두 그리스도인이요, 은혜 받은 자요, 택함 받은 자요, 천국의 기업을 누릴 수 있는 자로 일괄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성령이 그 마음에 계시는 자와 계시지 않는 자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건마는, 이것을 바로 알리지 않고, 바로 외치지 않는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해지지 않을 때 그 강단 위에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선 안이하고 마음 편한 일이지만 그로 인하여 받을 정죄를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오직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와 죄인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말씀의 사역자가 구분할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가 된다. 세력 없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을 세력 있는 자 앞에서는 밀 못하고, 가난한 자 앞에서는 있는 대로 말하면서, 부유한 자에게는 아는 것마저 말하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는지, 우리 설교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살펴볼 일이다. 상류계급에 속한 사람이건, 하류에 속한 사람이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시는 바는 하나요 평등하다. 마땅히 구분할 것은 구분하지 않고, 구분 않아야 할 것은 구분하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역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일이 없는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판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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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