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교사 샘터
요나의 전도
(요나 3, 4장)
3장1절 두번째 요나는 감사할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거절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3절 “니느웨” 이 성읍은 수리아 왕국의 수도였고 최근에 와서 니므롯으로 밝혀졌다(창10:11). “사흘길”은 아마도 그 도시를 일주하는 데 사흘 걸린다는 말일 것이다. 4장 11절에 보면, 그 성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이 십이만명이 있었다(아마도 어린이일 것이다), 그 도시의 인구는 약 육십만명으로 추산된다.
4절 “40일”아무런 자비의 언질이 없었지만 이 세 낱말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자비가 없었다면 아무 경고없이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멸망시켰을 것이다. 창세기 6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백이십년간을 연기하셨는지 비교해 보라. 마찬가지로 요나의 메시지도 매우 엄격했지만 희망의 여지가 있었고 니느웨 왕과 백성들은 5절에서 9절까지 보면 즉시 이 희망에 매달린 것을 볼 수 있다. 4장 2절의, 그의 말을 보면 요나는 이 사실을 생각했고 또한 예상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니느웨로 가서 전도하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의 예언이 실패하게 되면 그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니느웨가 보존되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도시에 거주했던 앗수리아인은 그의 조국 이스라엘의 철천지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의 예언은 결국 확실히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선지자 나훔이 생생하게 묘사한대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하나님의 심판을 40일이 아닌 백오십년간 연기했다. 주의해야 할 일은 나홈의 시대에는 자비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은혜의 시대는 지나가버렸던 것이다. 그는 “주께서 악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라고 말하고”너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5절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했을 때 그들이 만났던 불신자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 대조가 에스겔 3장 4-7절에 강조되었는데 거기서 주께서는 니느웨를 생각하셨다. 오늘날 이 세상의 죄인들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들은 완전한 영광의 복음의 소식을 무수히 듣고도 여전히 믿지 않고 있다.
10절 “그들이 행한 것을 감찰하셨다” 그들의 회개는 단순한 종교적 형식이 아니었다. 생활의 개혁이 일어 났다.
4장1절 “요나가 심히 싫어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지자 중에서 그의 사역이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뻐하지 않은 선지자는 요나밖에 없다. 그는 무엇 때문에 불평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시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이 없었다면 요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겠는가?
5절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는 얼마나 여러번 죽겠다고 말했는가? 세번이나 말했다. 1장12절에 선원들을 대신해서 죽겠다고 했다. 4장3절에서 니느웨가 보존되었기 때문에 그랬으며 4장8절에 그늘을 만들어 준 박넝쿨이 시들었기 때문에 그랬다.
6절 “예비하셨다”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4가지를 준비하셨다.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
8절 여기서 요나는 태양과 바람으로 인하여 괴로워했다. 그가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는 둘 다 기쁨을 주었던 것들이다.
9절 “죽기까지” 이 말은 그의 나쁜 기질을 잘 말해 준다. 또한 멸망해가는 영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척도이기도 하다(마 26:38에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198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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