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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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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30. 18:49 횃불/1981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4)

죤 리치

바로의 노력-마귀의 궤계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애굽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곧장 궁으로 가 애굽의 거대함과 위풍으로 둘러싸인 바로의 전에 서서 여호와의 요구를 제시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5:1).

그러나 바로는 즉시 공개 도전을 선언하고 속박을 강화할 것을 명한다. 그는 다음의 말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멸시와 미움을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5:2).

 

이것이 사단의 방법이다. 불쌍한 죄인의 구원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궤계의 첫 단계인 것이다. 여기엔 위장이 없다. 그것은 지옥 사자의 울부짖음이요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 행위이다. 조용히 자신을 섬기는 그의 노예들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는 한 그는 그렇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을 다루기 시작하시면 즉시 지옥은 그를 붙들기 위해 오히려 약간 풀어줄지 모르지만 결코 사단은 아무런 투쟁없이 자기의 먹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죄인의 상태는 전보다 더욱 악화되는데( 5:15~23을 보라) 이는 그의 양심이 눈을 뜨고 그의 사슬을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이 드러나고, 탕자와 같이 스스로 돌이키는것이다( 15:17).

 

1. 원수의 첫번째 궤계

여호와의 요구는 바로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의 거절로 말미암아 그와 그의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의 전략은 달라진다. 바로는 하나님은 그의 원수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에공개적인 싸움에서는 자신이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비밀술책으로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여하간 그는 그 술책을 사용해 볼 것이다. 그는 모세를 불러 양보하여 말한다.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8:25).

이것은 매우 은혜로워 보이며 바로의 편에서는 상당한 양보였다. 그것은 마귀의 궤계를 얄팍하게 가리워 준다. 이러한 단편전략의 목표는, 그 백성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바른 목적과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간증을 망가뜨리려는데 있다.

 

모세는 그 궤계를 알아차리고 즉시 여호와의 분명한 말씀으로 대항했다.

우리가 사흘 길을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8:27).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하였고 그러므로 그것은 타협될 수 없는 것이었다. 애굽에서 나와서 여호와의 제단이 서야 할 장소까지의 거리는 여호와께서 친히 정하신 것이요 모세로서는 그 기준을 낮출 재량권이 없는 것이다. 그는 그 원수의 면전에서 여호와의 요구를 그대로 제시했다.

여기에 마귀의 궤계의 첫번째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만일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공개적인 대적으로 한 죄인의 구원을 방해할 수 없다면 마귀는 그로 하여금 이 땅 안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도록 하여 그를 붙들어 두려고 간교한 뱀처럼 진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마귀가 성공하지 않았는가!

 

사단은 누구든지 원만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유지시켜 주는 이 땅에서 제사드리는 종교를 채택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 그렇다. 마귀는 그러한 일에 후원과 성원까지 해줄 것이다. 세상은 그에 관하여 좋게 말할 것이며 그는 모두에게서 칭송과 존경까지 받게 될 것이다. 세상의 종교는 모든 것을 포용하며 그리스도께 전심하는 것만 아니면 아무것도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인 광야로의 사흘 길의 여행은 강행되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완전한 길이며, 제 삼일뒤에 이어지는 것은 믿는 자를 인도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음을 깨닫는 사람은 마귀와 그 왕국과 사단에 대한 봉사를 영원히 작별한다는 사실을 마귀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자여, 당신은 애굽에서 나와 사흘길을 걸었는가?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는가? 기억하라. , 당신은 세상의 죄악된 쾌락이나 세상의 종교 가운데 교제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한 진실한 간증을 맺거나 진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 6:24).

하나님의 부르심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 하셨느니라”(고후 6:17).

 

2. 원수의 두번째 궤계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8:28).

이것은 어려운 간청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 뜻은 내가 미칠만한 위치를 벗어나지 말고 큰 어려움 없이 너를 다시 끌어와서 성별된 백성으로서의 너의 간증을 망칠 수 있을 만큼 애굽에 가까이 있으라는 것이다. 경계선상에 있는 기독교는 사단에게 아주 유용한 도구이며 그것은 사단의 목적과 잘 일치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완전히 분리되어 나아가지 않으면서 아주 세상적이지도 못한 사람은 모든 이들에게 걸림이 된다. 하루 저녁은 기도집회에서 기도하고 다음날에는 가요제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세상은 경멸의 미소를 보낸다.

정직한 사람은 그러한 일의 깊이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 그들은 그를 위선자로 간주한다. 그는 악영향을 미치는 일 외에는 어떠한 일에도 무능한 상태가 된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나 세상,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 양심은 더럽혀지고 영혼은 짜증이 나게 되며 그의 전체 모습은 초라하게 되고 만다.

롯이 바로 너무 멀리 가지않은 부류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소돔에 사는 동안 정치와 경건을 혼합하려 하였는데 주민들은 그를 조롱하였다. 그의 세상적인 삶으로 인하여 그의 전도는 전적으로 무력하게 되었다. 그의 자녀들은 소돔 사람들과 결혼하였고 그 결과로 그는 소돔에서 끌려 나와 불 가운데서 구원받은 상태로 말년을 어두운 간증 가운데 동굴 속에서 외롭게 마쳐야만 했다.

 

어린 성도여, 사단은 당신에게도 이런 전략을 시도할 것이다. 사단은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 융통성 없는 자가 될 필요는 없다. 너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고상한 세상 노래들을 부르며 춤도 추고 흑은 약간의 쾌락을 누려도 괜찮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도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지 않느냐? 우리 자신을 별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같아야 한다.”

이런 사상은 모두 사단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 방법으로 사단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한 성도들의 간증을 흐리게 하려 하며 그들을 육적인 종교인의 수준에까지 끌어 내리려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책 속에서, 그분의 백성들은 다른 이방인들처럼”( 6:17, 고전 3:3) 행하지 말아야 하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임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여, 마귀를 대적하고 믿음에 굳게 서라. 당신의 모든 길에서 사흘 길을 위해 투쟁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무덤이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성별되는 척도가 되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기독교이다.

 

3. 원수의 세번째 궤계

너희 남정만 가서”( 10:11).

불쌍한 바로는 고통 가운데 빠져 있다.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점친 더 무겁게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조금 더 멀리 양보한다. 그는 이제 사흘 길 여행을 가도록 해주지만 그러나 어린 것들을 뒤에 남겨 두라는 것이다. 이것은 교묘한 일이다. 부모들은 광야에서 여호와를 예배하고 있고 어린 것들은 아직 애굽 우상숭배자들의 곁에 있게 되다니! 이것 역시 얼마나 굉장한 광경인가!

 

바로는 그가 만일 이 계획에 성공만 하면 그의 목적이 달성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어린 것들이 남으면 부모들이 곧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아뿔사!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이것을 잊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들을 세상에 남겨두어 세상의 쾌락에 몰두케 하며, 무절제하게 이런 노정을 달리도록 방심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어린 것들을 애굽에 남겨 두어 가장 불경건한 친구들과 함께 애굽의 모임에 참석하며 그 길을 배우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의 간증을 어둡게 해왔다.

롯과 엘리는 둘 다 이런 부류였고 그들의 가족 위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가 된다.

 

4. 원수의 마지막 궤계

바로는 심한 압력을 받았고 마지막 궤계를 꾸민다. 그건 매우 연약한 방법이지만 만일 그가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수 있어서 또 하나의 가느다란 연결이라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그것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10:24).

바로는 이제 매우 융통성 있게 행동한다. 그는 조그마한 것에도 만족해 할 것이다. 그의 요구는 합당한 것처럼 보인다. 양떼와 소떼는 여행하는데 짐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것들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세는 안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님의 용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요구 중에서 티끌만큼도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떼와 소떼도 틀림 없는 여호와의 것이다. 그분은 모두를 돌려받으셔야 했고 그러기에 바로는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그러한 답변을 듣게 된다.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10:26).

이것은 하나님의 요구였으며 결코 양보될 수 없는 것이다. 한 점이라도 타협될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소유를 가지셔야만 한다. 결단은 승리를 가져왔고 모든 계략에 실패한 그 원수는 패하여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성도여, 당신의 표어를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으로 삼으라. 결코 하나님의 요구를 낮추려 하지 말라. 그 요구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사단에게 어느 한 점도 양보하지 말라,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든 개념치 말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라. 여호와의 요구를 낮추지 않았던 모세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보다 차라리 사자굴을 택했던 다니엘처럼, 그리고 이 땅의 가장 거대한 군주가 세워놓은 신상에 절하기 보다는 차라리 풀무불 속에 들어갔던 히브리 청년들처럼 되라. 그들이 자신들의 충성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삼상 2:30).

 

성도들이여, 하나님께 향한 전적인 성별은 신령한 기준이다. 결코 반쪽 마음이나 두 마을 증간쯤에 있는 여인숙에 머무는 식이 되지 말라. 예배, 자녀들, 사업, 모든 것이 사흘길 여행을 함께 가야 하며 부활 생명의 표시인 하나님을 향한 성별을 지녀야만 한다.

 

(1981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