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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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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30. 18:56 횃불/1981년

광명을 찾기까지

 

나는 수년전 실명했던 한 여인에게서 시력을 회복하게 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 다녀오는 나의 발걸음은 마치 주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시력의 약화로 십년 동안 병원을 드나들었건만 오늘처럼 시원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수술하면 돼, 시력을 되찾을 수 있어하고 말씀하시던 것이 뇌리에 스칠 때마다 금방 눈이 환해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나의 시력은 정상적이었습니다. 졸업할 무렵에도 근시라서 안경을 쓰게 되었지만 이렇다 할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언제부터인지는 모 르지만 차츰차츰 눈이 침침해지고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진찰해 본 결과 홍체염으로 인한 백내장이었습니다. 병명을 알게 되니 아찔한 생각이 들어 서둘러 고쳐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안과 병원은 샅살이 찾아 다니면서 진료를 받았지만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고 더구나 병원에 가게 되면 으레 것 진료를 하고는 안대로 눈을 가리워 버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그이는 나의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하던 해 그 이의 생일에 인천을 다녀오면서 고속버스에서 그이는 불쑥 이런 이야기를 걸어왔습니다.

자 우리 눈알을 하나씩 바꾸기로 해 두개씩이나 꼭 필요 한 것은 아닐테니까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가 서로의 지체 속에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부부일체임을 실감할 수 있게 될거야.

당시 성모 병원에서 최초로 각막 이식수술을 성공했던 때이라서 그이는 이것을 안구 이식이 가능한 것으로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77:7~9)

 

그러기를 5,6

어느 병원엘 가나 진료나 처방이 다를 바 없었고 의사들의 대답도 한결같았습니다. 즉 지금으로서는 묘안이 없으나 혹시 잘되면 좋고 아니면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어차피 실명하게 될 것이니 수술이나 할려면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병원 출입을 끊었고 일체 복약이나 투약을 그쳤습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는 일이었기에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영영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깨닫지 못하나이다”( 14:20,21).

아무리 헤아려봐도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었고 그렇다고 어쩔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누가 위로를 해 준다 해도 위안이 되지 않았고 누가 용하다 해도 믿어지지 않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5:14~16).

어느 토요일 저녁에 여러 장로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야고보서에 있는 말씀을 따라 기도하고자 모이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석한 성도들 가운데에는 이 말씀에 대한 분별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장로님들께서는 밤을 새워가며 분별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이른 아침에 각 교회로 떠나셨습니다.

 

6: 7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31:9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38: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88:9 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17:7 내 눈은 근심으로 하여 어두워지고

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5:16,17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그 후에 선교사 중에는 미군병원에 교섭을 해서 미국에서 고칠 수 있을것인가를 알아보았으나 그 동안의 진료카드를 검토한 후에 불가능하다고 통고해 왔습니다. 이제 나는 성경에서 시력을 상실했던 실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처럼 내가 시력을 잃을만큼 걱정 근심이 많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7~10)

물론 이린 시련을 통해서 주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뜻이라고 확증할 수도 없었습니다.

 

십년이 지나는 동안에 시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이제는 명암을 분별할 뿐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 앞에 손가락을 펴보아도 둘인지 셋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지척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쳐도 그냥 지나쳐 버리기가 일부이기 때문에 숱한 오해도 받았습니다. 걸어 다닐 때에도 높낮이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목을 삐고 무릎을 깨기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태어난 막내 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얘가 크면 앞 못보는 엄마 손을 붙잡고 다니겠거니하고 생각하니 생각사록 샘솟듯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시력이 약화되었다면 얼마나 약화된 것일까? 홍체염이 악화되었다면 얼마나 악화된 것일까? 한번 진찰이나 받아보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참으로 신통치 않은 일이었지만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환자이니만큼 수술하면 된다던 의사의 말에 내 귀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의아한 채 의사에게 다구쳐 묻자 된다면 되는 줄 알아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나에게는 천사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입원했던 그 밤에는 잠꾸러기건만 마음이 설레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내가 다시 광명을 찾게 되는 걸까? 아니면 5년전 밑져야 본전이라던 어느 의사의 말대로 수술을 하고서도 여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아홉시에 수술실에 옮겨졌습니다. 전신마취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술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대가 벗겨지고 의사가 메스로 눈동자를 긁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렷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한줄기 불빛이 바로 내 이마 위에서 비치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의사가 가지고 있던 메스와 가제가 어른거렸습니다. “! 보 인다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혀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울먹였습니다. 그때 제게 메스를 대었던 의사의 손길에서 첫날 소경의 눈에 안수하시던 예수님의 손을 연상하게 되었고, 그 때 소경의 고백이 마치 저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이 다시 안수하셨을 때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게 되었듯이 수일을 요양하는 동안에 나는 완전한 시력을 찾게 되었습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 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8:22~25)

 

입원실은 마치 부활했던 나사로의 집을 연상케 했습니다. 십년동안 나를 지켜보며 안타까와 하던 친척 친지친구들과 기도해주던 교우들이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물론 절대 안정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 사실을 묻는 사람에게 너무 기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을 때 이를 체험적으로 했단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9:11)

내가 주님을 믿은 후에 이처럼 열렬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어쨌든 소경이었다가 눈을 떴다면 잠잠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더군 요.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9:30~34)

 

주님께서는 나의 질병을 완치시켜주셨을 뿐 아니라 이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도 공급하셨습니다.

수술을 받게 된 것은 우연히도 의료 보험이 실시되는 해 1 13일이었고 일주일 후 퇴원한 직후에 의료 수가는 거의 갑절로 인상이 되었으므로 입원기간은 환자로서 최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실은 12월에 입원 신청을 했는데 순위대로 연기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은밀한 손길로 소요되는 비용일체를 넉넉하게 채워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4:19,20).

요셉의 고난이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를 성취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고난의 풀무를 통하여 내가 의뢰하던 모든 것을 끊게 하시고 마침내 가장 적절한 시간에 소성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105:16~20)

나는 양재를 조금 배웠고 변변치 않은 솜씨나마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느질 솜씨는 대수롭지 않지만 바늘귀를 꿸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꿈만 같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실명인 채로 있다면 어떻게 할뻔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스칠 때마다 에벤에셀”(여기까지 도우신)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육신의 눈이 시력을 상실하게 될지라도 영원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주신 주님께 더욱 찬양. 찬양을 드립니다.

 

(1981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