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메칼리스터
5. 조상들과 가진 언약
무천년주의자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약속들을 하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동의할 것이다. 그 때를 제외하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으로 그들의 자손들이 그들의 표준대로 살아가지 않았고 따라서 그 민족은 그것에 대한 약속된 축복들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이 단언의 첫째 부분에 동의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에 관한 슬픈 이야기이며, 민족은 바로 이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월에 걸쳐 값 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그러나, 우리는 단언의 두번째 부분을 검정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조상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상실했는가?
우리가 아브라함의 언약을 다시 보자.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에게와 모든 백성들에게 흐르는 축복의 땅과 그의 자손에게 하셨던 약속들을 고려했다. 약속들은 그에게 말해졌고 반복되었다, 그리고 또한 이삭과 야곱에 대한 수많은 경우들(창 12:1-3; 13:14-17; 15:1-7, 18-21; 17:1-19; 26:2-5; 28:13-15). 그것이 자손들의 역할에서 아무 조건적인 암시도 없다. 그것은 “영원한” 언약이다(창 17:7,13,19; 대상 16:16,17; 시 105:9,10), 그럼에 따라, 정의에 의해, 사람에 의해 깨트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행하셨을 때(창 15:9-17), 그분은 조각을 혼자 통과하셨다 – 사람은 그 역할이 없었다; 그것의 성취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있었다. 개인은 불순종 때문에 언약의 백성들에 대한 그 자신의 관계를 잃을 수 있었다(창 17:14), 그러나 그것이 언약을 무효로 하지 않았다.
유사한 고려사항은 다윗의 언약에 적용한다(삼하 7:12-16). 그것은 “영원히” 또는 “영원히 계속되는”처럼 묘사된다(삼하 7:13,16; 23:5); 그것의 약속은 종종 실패에도 불구하고 반복된다(사 9:6,7; 렘 23:5,6; 33:14-17, 20,21); 솔로몬의 불순종은 징벌을 가져올 것이지만 언약은 무효로 하지 않을 것이다(삼하 7:14,15); 그것은 맹세에 의해 확인되었다(시 132:11);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께서 그것을 깨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씀한다(시 89:34-36).
배교의 중심에 조차, 하나님은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예를 들면, 렘 31:35-37). 민족의 역할에서 실패는 그분의 약속을 무효로 하지 않았다.
신약으로 돌아와서,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거절하는 가능한 최악의 죄를 범했으며, 언약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 되기 위해 분명하게 언급된다(롬 9:3,4; 엡 2:12).
로마서 3:1-4에서 바울은 몇몇 이스라엘의 역할에서는 믿음의 결핍이 결코 하나님의 신실함을 결코 무효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확실히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다만 몇몇이 그것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버려지지 않는다. 비록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에 반대를 말하는 경우이었더라도, 그 때 하나님은 진실을 위해 찾아낼 분이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로 발견될 것이다(4절).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신실하시다, 그리고 민족에 대한 그분의 약속을 존중하실 것이다.
로마서 11:1,2에서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그분께서는 그들의 “넘어짐”은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주장이 계속된다(11절). 그들의 “무지”는(25절)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으리라”(26절), 그리고 그것은 구원자가 올 때 일어날 것이다,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26절), 그리고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27절).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 말하고 있고, 교회가 아닌 것은 더 명확하지 않을 수 없다, 28절에서 그들에 관해 바울이 말하는 것은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그는 이미 자신의 마음에 슬픔을 받은 자를 위한 그것들처럼 이스라엘에 관해 말했다(9:2); 그들의 특권(9:4,5);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서 왔다는 사실에 관해(9:5); 그들의 잘못된 열성(10:2,3); 그들의 불순종(10:21). 이들 모두의 언급이 도저히 교회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로마서 9-11장의 전체적인 문맥은 그가 이스라엘에 관해 말할 때, 그가 문자 그대로의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와 같이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됨을 11:26에서 말할 때, 그것은 민족의 미래 구원이다.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로마서의 이 단락의 명백한 가르침을 뒤틀기 위한 것이다.
지금, 왜 그것은 메시야의 거절, 교회에 대한 증오, 모든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그들을 위한 구원인가? 우리는 추측으로 남기지 않는다. 로마서 11:28에서 바울은 모든 부정적인 것을 무시하는 사실을 진술한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약속한 자에 대한, 족장들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복음에 대한 그들의 증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들에게 오는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가 기록하면서 논쟁을 결론짓는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29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그분의 큰 약속들을 하셨고, 그것들을 지키실 것이다. 그것들은 성취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과 가진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영광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 약속들이 확실하게 성취될 때의 미래 천년왕국을 믿는다. 위대한 것은 미래뿐만 아니라 이 현재 시대 교회 안에서 우리들의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아니다.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리고 그들의 자손에게 그분께서 하셨던 약속에 관하여 그분의 생각은 바꾸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가 로마서 11:25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바울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자. 모든 축복이 우리 것이라는 것과 그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스라엘을 멸시함으로 우리들 자신의 오만함이 가득하게 됨으로 해서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이 되는 위험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위한 영광스러운 미래를 가지셨으며,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많은 약속들이 성취될 천년왕국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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