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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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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메칼리스터

1. 성경의 내용

왜 우리는 문자 그대로의 미래의 천년왕국을 믿는가? 첫째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천년주의는 계시록 20장 단지 하나의 구절에서만 가르쳐졌고, 그렇게 상징적으로 책에 있는 그것이 문자적인 1,000년의 기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것을 반대할 것이다. 

지금 계시록 20장은 그것의 기간이 주어지는 유일한 위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구절에서 여섯 시대보다 적지 않은 1,000년이 되도록 언급되고 있다(2-7절의 각각에서 한 차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위한 상태로 무언가를 진술하려는 성경을 필요로 하는가? 분명히 단번에 충분해야 한다! 

더욱이 계시록 20장은 우리가 지상에서 하나님의 문자 그대로의 통치를 읽는 성경 안에 유일한 위치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구약 성경 중에 그것과 함께 채택된다. 언급이 이렇게 광범위한 것은 그것들 모두를 통해 나아가는 이와 같은 연재에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시편 72; 이사야 2,11,35,65, 에스겔 20,34,36,47; 그리고 아모스 9장과 같이 이러한 구절을 읽는 것은 그녀가 다시 모아지고 정결하게 될 때 이스라엘을 위한 미래의 영광스러움이 우리에게 드러난다. 거기에는 억압에서 자유를 가진 보편적인 축복이 있을 것이다. 의와 공정함, 평화와 안전함이 있을 것이다. 불모지는 비옥하게 될 것이고, 풍부함과 빈번한 추수가 있을 것이다. 사해(死海)는 생명으로 가득 차고 야생 동물은 인간에게 위험이 없는 것처럼 유순해질 것이다. 땅에는 주님에 관한 지식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것들과 다른 많은 유사한 예언들은 그것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이 구약에서 명확하게 언급된다. 확실히, 그것들이 주어지게 되는 민족은 문자 그대로 되는 것으로 그들에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한다. 그들이 말씀 안에 있고, 그리고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서는 대로 그들을 믿는다. 

이것에 반대하는 무천년주의자는 말할 것이다, “그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면 왜 신약에서 반복되지 않는가? 우리는 세 가지를 지적하면서 거기에 대답한다.

첫째로, 그것들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어떠한 축복이 이스라엘로부터 민족들에게 흘러갈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부사항이 구약에 주어졌고 신약에 주어지지 않은 것에 놀라지 않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미 이러한 약속들을 주셨을 때, 그것들을 모두 다시 목록으로 나타낼 필요가 없었다. 

셋째로, 신약에서 그 이름을 가리키듯이 그분의 아들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계시와 관련되며, 이 결과에 따라 신약의 서신에서 강조점은 교회 진리에 있다. 구약의 가르침은 신약에서 모두 다시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더 적절한 질문은 이것이다: “신약은 구약에서 주어진 미래의 지상 축복의 약속을 부정하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인 것에 있다. 사도행전 1:6,7을 확인하라. 주 예수님은 하늘로 돌아가시는 것에 관해 그리고 제자들이 그분에게 묻는 것이다,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절했던 이 한달 이전보다 훨씬 더 나아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민족으로서 끝나게 된 경우, 미래의 지상 왕국의 아무 희망도 없던 경우에, 그 때 이것은 그들이 그 모두를 잘못했다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깨트리게 하는 주님을 위한 이상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아니하셨다. 반대로, 그분은 “때와 시기”는 그들이 알기 위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것이 일어날 때를 제외하고 그것이 일어날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오래지 않은 주님의 승천 후, 사도행전 3:19-26에서, 베드로는 구약의 가득한 암시의 메시지로 자신의 유대인 청중에게 말할 수 있다, 주의 돌아오심과 단지 그 때(20,21)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때”(21) 모든 구약에 예언들이 성취될 것이다. 

나중에( 15:13-17) 야고보는 아모스 9:11,12의 예언(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다)에서 그분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할 백성”(14)을 민족들 중에 취하시는 때, 현 시대 “이후”(16)일 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므나의 비유”에서 모두 잘 설명된다( 19:11-27). “특정 사람”(12)은 의심할 여지없이 주 예수님이다, 그분은 “그분 자신의 왕권을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그분은 “돌아 오실” 것이다. 그것은 그분을 거부했던 이스라엘의 민족(14)을 묘사하는 시민들인 것이 동일하게 확실하다. 주님은 민족에 의해 거절되셨다; 그분은 멀리 가셨고, 영광의 왕권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비유에 있는 사람은 동일한 장소에 돌아온다, 그리고 동일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의 사례금으로, 그는 그 왕권으로 도시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그분을 거절했던 동일한 장소에, 그분을 거절한 동일한 국가에 돌아오실 것이다, 그리고 신실한 사람들은 지상에 그 왕국에서 보상될 것이다. 

따라서, 먼 미래의 지상 왕국의 구약의 약속을 끊임없이 부정하거나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신약은 상반되고 있다: 그것들을 재차 단언한다. 약속이 거기에 있고 우리는 그것들을 믿는다. 

그러나 무천년주의자는 말한다, “이게 아니다. 이러한 축복의 약속들은 문자 그대로 미래에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들은 교회에 의해 즐기게 된 축복들에서 영적으로 현재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우리는 현재 상태를 고려할 것이고, 또한 그와 같은 요구가 철저한 검토를 낳는 경우를 볼 것이다.

http://www.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