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차드
이 기사의 제목은 “넉넉하게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8:37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5:12-8:31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구절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고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12:1-2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의 주요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세 장에서 바울은 인류 전체의 보편적인 죄를 확립합니다. 롬 3:19에서 그는 “율법이 어떤 것들을 말하든지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나니 이것은 모든 입을 막아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롬 3:21-31)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가 증명된 사람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셨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의롭다고 말씀하셨다고 지적합니다. 지상의 어떤 법정도 죄가 있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을 “무죄”라고 선언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정의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며 그들을 의롭다 할 수는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모세의 율법을 따르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취소하려는 시도는 헛된 일입니다(롬 3:20). 오직 하나님만이 죄가 있는 사람을 의롭다 할 수 있으며, 그분조차도 올바른 조건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받았느니라.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로 인해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내가 말하노니 이것은 곧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로우시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라는 것을 보이려 하심이라”(롬 3:24-26)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구절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기꺼이 받으셨다는 것이며, 이 수단을 통해 먼저 구약의 믿는 자들(“지난 죄” 25절)과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믿을 모든 자들(“이 때에” 26절)에게 구원을 가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단으로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그렇게 하시는데 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하시기를 거부하셨다면, 하나님은 불의하게 행동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죄를 인정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1절은 “율법과 선지자”가 죄인의 의롭다 하심이 항상 믿음의 근거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고 지적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의 가장 단순한 구분으로, “율법”은 모세의 다섯 권(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을 가리키고 “선지자”는 나머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요 1:45 참조).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데, 그는 구약 시대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두 사람의 예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예는 아브라함으로(롬 4:1-5) 모세의 책에서 인용한 예입니다.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분[하나님]께서 그[아브라함]를 데리고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네가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며”(창 15:5-6).
두 번째 예는 다윗으로(롬 4:6-8) 이것은 선지자(구약의 나머지 부분)의 예입니다. 아브라함(3절)과 다윗(7,8절)은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졌습니다. 아무도 모세의 율법을 따르려고 노력함으로써 의롭다고 여겨진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너희가 모세의 율법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었던 모든 일에도 그분[그리스도를]에 의해 믿는 모든 자가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것이라.”(행 13:39). 신약 용어로 의롭다고 여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들을 지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으셨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것이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사람들]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며 이로써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롬 5:12).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을 때 그들은 아버지 아담과 같은 본성을 물려받았습니다. 태어난 최초의 사람인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했습니다(창 4:8). 우리의 필멸성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우리의 영이 살아났지만(엡 2:4-5) 신약에서 “육신”으로 묘사된 우리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 8:10을 살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구원받으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꿈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지 않으며 경험도 이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우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았는지 아니면 배교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시험을 합니다. 그 시험 중 하나는 요한일서 1:8에 나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타락하고 죄스러운 본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11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그가 책망받아야 했으므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나니.” 베드로는 위선적인 방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위선은 죄입니다. 가장 저명한 사도 중 한 명이 죄를 지을 수 있다면 구원받은 다른 사람들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신자와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젊은 신자가 저에게 한 번은 “데이비드, 저는 구원받기 전보다 지금 기분이 더 나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좋네요! 이제 양심이 생겼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전에는 결코 신경 쓰지 않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들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복자보다 더 나은 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이는 향후 기사에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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