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차드
로마서 6:14-23
지난 기사에서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는 죄의 주인에게 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죽음, 장사, 부활로 그리스도와 연결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산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죽고, 그분 안에서 장사되었고, 그분 안에서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그러나 죄는 여전히 우리 안에 거주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로마서 6:13은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들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14절은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위해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는 죄가 군주처럼 군림합니다. 하지만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신뢰한 사람들로서 우리는 죄에 죽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통치, 즉 “은혜”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는 은총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엡 2:8). 즉, 신자로서 우리는 결코 죄의 결과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두 번째 큰 질문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짓겠느냐?”(롬 6:15).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할 것인가?”였습니다(1절), 즉 “우리가 여전히 죄가 우리 몸에서 왕노릇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우리의 현재 질문의 의미는 “우리는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았으므로 계속해서 죄악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입니다. 바울은 또 다른 질문으로 대답합니다. “너희가 어떤 사람에게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순종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16절).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여러분이 노예처럼 섬기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적 관념은 절대적으로 옳을 수 있지만, 여러분의 행동은 여러분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구원받았다는 우리의 주장을 정당화해야 합니다.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우리의 주장을 정당화합니다.
17절에서 바울은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할지어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너희가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틀”이라는 개념은 열에 녹은 금속을 붓는 틀에 대한 개념으로, 식으면 틀의 모양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틀에 부어넣으셨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그분 앞에 서 있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와 같다고 보십니다. 그 유사성은 우리의 삶에서 분명해야 합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우리는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18절). 그런 다음 19절은 우리가 우리 몸의 지체를 죄에 내주어 죄스러운 삶을 살았듯이, 이제 구원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체를 의에 내주어야 하며, 그 결과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내주다”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옆에 서다”, 즉 (당신의 주인에게) 자신을 내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었을 때 우리 자신을 우리 주인에게 내어놓았던 것처럼, 이제 의가 우리의 주인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로운 주인에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인도됩니다.
20절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부터 자유로웠느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동시에 두 주인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죄의 종이었을 때, 의는 그들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제약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들의 지난 삶을 상기시키며 “너희가 지금은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 안에서 그때에 너희가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그 일들의 끝은 사망이니라”(21절)고 말합니다. 우선,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 살았던 삶과 행한 일들을 살펴보면, 그것들로부터 어떤 긍정적이고 영구적인 결과를 얻었습니까? 반면에, 때때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행한 일들에 대해 말할 때, 여러분은 그들이 다시 한번 그 기억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들이 “지금 너희가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 일들의 마지막은 사망이니라.” 이것은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조차도 경험할 무언가이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생애에서 주님의 재림 가능성은 별개로). 불신자에게 육체적 죽음은 궁극적으로 “두 번째 죽음”(계 20:14-15)으로 이어집니다.
22절에서 우리는 완전히 대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너희의 열매를 얻었는데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영구히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기꺼이) 종이 되었습니다. 이 권한의 이전의 결과는 이제 우리가 이 새로운 관계의 혜택(열매)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거룩하게 됨, 하나님을 위해. 이 거룩함은 우리가 거룩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지금 우리의 삶을 사는 실제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끝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영생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현재 몫입니다. 하지만 8장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다가올 날에 그것을 훨씬 더 충만하게 누릴 것입니다. 이제 23절의 마지막 진술에 주목하세요: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죄는 삯인 사망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선물인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그것을 주신 분께 헌신하는 삶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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