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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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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2. 14:14 세상은

예배에 지친 한국교회

바이블파워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사람이 혼의 쉼을 얻으며 주님을 섬길 수 있다.

지난 10 18일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발전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국 교회의 예배, 어떻게 갱신할 것인가?’라는 1차 연구발표회에서 한국 교회의 성장 동력으로 평가됐던 새벽기도회, 철야예배, 오후 예배 등 다양한 예배 형태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강요한다며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기독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이날 ‘한국 교회의 예배 진단’이란 주제로 발제한 김경진 교수(장신대 예배설교학)는 “예배의 토착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기도의 형태들은 한국 교회의 기복적이고 무속적인 신학이 들어오는 통로의역할을 했다. 새벽기도, 통성기도, 산상기도, 철야기도와 같은 예배 형태들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현실속에서,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가족들의 안녕의 욕구와 가난의 두려움 속에서 매우유용한 역할을 했지만, 점차 이런 기도들을 통해 인간들은 물질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욕구들을 반영하기 시작하면서기복적인 기독교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갔다. 순복음 교회를 통해 나타난 삼박자구원과 같은 신학의 구조는질병과 가난으로 신음하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한 가닥의 희망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신학적 구조는결국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세계관으로 귀착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반성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발제한 내용들에는 한국식 기독교의 토착화와 관련하여 사실적인 내용들이 다수 들어있다. 그러나그가 “유용한 역할,” “한 가닥의 희망”이라는 표현들로 한국교회에 자리잡은 토속신앙적 기도 형태들과비성경적인 삼박자구원론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그의 발제가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교인들의 육신적인 필요충족이지나쳐 교회 세속화의 부작용이 생겼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기독교라는 종교가 전쟁과 죽음과 가난에 신음하던 이 민족에게 한 가닥 희망의 동아줄로 다가온 것에 의미를 두었고,그것으로 물질적이고 현세지향적인 세계관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면만을 부각시키는 데 그쳤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점에 비하면 김 교수의 생각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흔히들려오는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넋두리로 문제의 본질을 덮어두기에는 사망과 지옥의 악취가 한국교회에서매우 짙게 풍기기 때문이다. 과거 이 민족은 전쟁과 가난의 현실적 고난들을 새벽기도, 산상기도, 철야기도 같은 토속신앙을 교회로 가져오는 종교적 열성으로보상받으려 했고,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순복음의비진리에 속아 가난에서 벗어나 보고자 대량으로 유사기독교에 귀의한 것이다. 때마침 이 나라는 전후의가난을 벗어나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었고, 이에 교인들의 삶이 하나 둘씩 개선되기 시작하자 “예수믿으면 복 받는다.”는 속임수가 진리인 양 받아들여졌다. 당시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부자가 된 사람들은 많았고, 기업들도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은 국가의 경제성장에 편승한 교회기업이었지 진리를 가르치고 실행한 교회가 아니었다.


한국교회가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은, “그들의 믿음이 처음부터 진리에 뿌리내렸다면 오늘날처럼기복적이고 무속적인 신앙이 자리잡았겠는가?”이다. 한국교회는근본적으로 ‘기복’나무와 ‘무속’나무로 시작되었기에 나쁜 열매가 맺힌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무화과나무가올리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있겠느냐?( 3:12)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나쁜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8).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토속신앙적인 종교행위로 시작된 잘못된 나무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먹을 수 없는 열매들만 들춰보며 혀를 차고 있다면 결코 한국교회에 대해 현명한조언을 할 수 없다.


기복적이고 무속신앙적인 한국교회는 결코 교회라고 할 수 없는 세상 종교에 불과하다. 그들은어떠한 진리도 실행할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 십자가를 내세우며 자신들도 교회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주님옆에 달린 두 강도 역시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만 걸어놓으면 아무 짓이나해도 교회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그들은 『기록되었으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하였거늘, 너희가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21:13)라고말씀하신 주님의 책망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는 주님만 지신 것이 아니라 두 강도도 지었다. 한국교회는 누구의 “십자가”를 내세우고 있는 것인가?


김 교수의 발제에 대해 논찬한 동대학 겸임교수 곽재욱목사는 “감당하기 힘든 예배의 숫자 자체가 목회적으로 큰 부담이다. 예배를 줄이려고 하니 요령을 피우는것 같고, 달리 그 시간에 다른 어떤 것을 제안할 수도 없다. 우리는주일 낮 예배, 오후 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철야기도회, 구역예배, 교수연합예배 등 실로 많은 예배를 소화해내고 있다. 새벽기도회는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주일 오후 예배도 마찬가지다. 모든예배가 자원적이지 않고 의무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예배를 줄이려고 하니 요령을 피우는 것 같고, 달리 그 시간에 다른 어떤 것을 제안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된 것일까? 그들은 갖가지 예배로 교인들을 모아놓고종교행위를 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 년 열두 달 예배만 드리고 앉아 있다면그런 종교가 왜 필요한 것인가? 『너희의 수많은 희생 제물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가 말하노라. 나는 숫양들의 번제물들과 살진 짐승들의 기름으로배불렀으며, 또 나는 수송아지들이나 어린양들이나 숫염소들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1).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예배당에 의무적으로 앉아 있다면 그 일이 주님께 받아들여지겠는가? 팔다리와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은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일이 주님께 기뻐 받아들여지는가는 그와 별개의 문제이다. 그동안얼마나 새벽기도회가 부담되고 힘들었으면 목사의 입에서 새벽기도회가 재고되어야 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러나이것은 곽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판단받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있을 뿐이지 실로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그것 때문에 큰 부담과 고통을 끌어안으며 살고 있다. 이것이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리심으로 낳은 교회인 것일까?


주님은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8:32).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들은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종교행위에 속박된 삶을 살고 있다. 주님이 함께 지자고 하신 멍에는 결코무겁지 않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 11:29,30). 천근같은 멍에를메고 신음하는 교인들, 혼의 쉼을 얻지 못한 그들은 주님께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주님은 그런 멍에를 주신 적이 없다. 그들은 ‘누가’ 얹어준 멍에를메고 있는 것인가? 바로 마귀이다. 주님은 죽음을 두려워하므로마귀에게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해방시켜 주시려고 오셨지만( 2:14,15) 그들은 주님을거부하고 종교의 족쇄를 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자유롭지 못하고 온갖 예배에 속박되어고통받고 있다면 그들의 믿음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 했다(고후 3:17). 자유롭지 못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성경은 단언하신다( 8:14). 이것은 마지막 시대의 배교한 교회들이 어떤 영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들은 잘못된 영의 인도를 받아 교회에 다녀도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이보다큰 비극이 또 있겠는가? 교회가 세상에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구원 없는 종교행위로 사람들을 끌고다니다가 결국 영원한 멸망으로 던져 넣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는가? 그들은 이조차도 깨달을 수없기에 그들의 현실은 더욱 비참하고 슬퍼진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속는다는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속는다는 것은 영원한 멸망을의미한다. 한 번 속았을 때는 남을 탓할 수 있지만, 두번째부터는 자신을 탓해야 한다. 계속해서 속고 있다면, 그들에겐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이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