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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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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4. 10:20 횃불/1978년

개인 전도자는 될 수 있다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면 우리 자신의 지혜보다 차원 높은 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에드워드 라스트-

 

 

전도보다 그렇게 효과 있는 일도 그렇게 영속성이 있는 일도 그렇게 명예스러운 일도 없다.

사무엘 채드워씨는 말하기를 나는 모든 은사가운데 영혼을 내 주님께로 인도하는 능력과 지혜를 구하리라고 하였다.

참된 모든 신자의 마음 속에는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가 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개인전도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할 기회는 많다. 그리고 그 기회는 또 여러 가지이다. 우리는 전도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다. 기회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포착할 성령님의 용기를 기도하면 좋다( 4:35, 1:8).

우리가 매일 같이 접촉하는 수다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문전이나 이웃에서 버스나 가도에서 전도할 기회란 얼마나 많은가! 방심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그는 할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가도에서 결심자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런던 모교회에서 인도하던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얻자는 슬로건을 건 한 대회에 주로 군인들을 상대로 수천 장의 전도지를 배부한 한 개인 전도자가 참석했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여인은 과거에는 전도지를 그냥 배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나 그는 요즘 전도지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기회를 삼고 있다.

그는 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전에는 전도지를 받은 사람들이 길을 멈추고 저와 이야기하고 싶어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저는 지난날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구령의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개인 전도를 하고자 한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라. 기도하면서 걸어가고 가면서 기도하라.

그것이 개인 전도자의 가도(街道) 규칙이다. 그대는 만나는 누구에게나 겉치레로 전도하므로 그들의 뉴슨스(귀찮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영혼을 얻는 것을 촛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1:30). 영혼을 얻는 자는 자기 일을 선택하는 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다. 이와 같이 그대는 빌립을 내시에게로 인도하신 성령님께서 그대가 전도할 자에게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의지하면서 전도하러 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신령한 상식이 작용한다. 만약 내가 어떤 사람 여행 가방을 들고 기차역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를 가로막고 전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전도할 강력한 감동을 받았을 경우에는 나는 자진해서 여행 가방을 들어다 줄 것이다. 그리고 역에 이르렀을 때에는 나의 친절로 나에게 주어지는 짤막한 순간을 지혜롭게 쓸 것이다.

사람들이 전도에 귀를 기울일 가장 좋은 시간은 하루의 일과가 끝났을 때이다. 그리고 할 일 없이 거리를 빈둥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이나 가게 창문 옆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은 그때 그가 특별히 할 일이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제공할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라. 예를 들면 집회 안내서나 전도지, 한층 더 좋은 것은 복음서이다. 나는 대체로 요한복음서를 사용한다.

길을 빈둥거리며 걸어가는 청년에게 전도한다고 생각하여 보자. 나는 그를 만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실례합니다. 이 조그만 책자 한 권 권해드릴까요?” 그렇게 하고 나는 그에게 요한복음 책자를 줄 것이다.

그가 그것을 받아 들었을 때 나도 그 한쪽 끝을 잠시 붙잡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그냥 주어 버리면 그도 그냥 가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나는 잠시 접촉의 계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의 관심을 끌거나 그의 대답을 필요로 하여 말을 계속할 화제를 만들 것이다.

재빨리 나는 그가 받아 든 그 쪽 복음서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 손에 다시 갖다 들고는 그 책장을 넘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조그만 책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불과 마흔 여덟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요한복음 3 16절을 펼친 다음 아주 정중하게 친절한 태도로 그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볼 것이다.

선생님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라고 나는 묻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데 대한 개념이 여러 가지로 모호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말항 것이다. “선생님은 구원이란 문제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은 하나님나라에 가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혹은 중생한 경험이 있습니까?”

이와 같이 말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말해야 한다) 재치있게 상대방이 진정 어떠한 상태에 있는 것을 잘 진단해야 된다.

어떠한 경우이든 죄의 무서움을 마음 속 깊이 인식시켜주는 것이 좋다. 내가 그와 같이 말했을 때 방심적이고 무관심했던 사람이 깊이 인상을 받는 것을 흔히 보았다. 개중에서 이미 죄의 번민 가운데서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의 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나 구원의 길을 알기 쉽게 가르쳐 주면 좋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라.

전도할 때 성경구절과 예화를 지나치게 늘어 놓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을 돕는 대신에 혼동시키기 쉽다. 죄와 구원의 문제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는 몇 개의 성경구절만 인용해 주되 정확하게 하라.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답하도록 노력하라.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그대의 체험에만 의존하라. 만약 그대가 그대의 개인 간증을 짧게 해준다면 물론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논쟁을 하므로 곁길로 들어 가거나 딴 길로 이끌려 들어가지 말라.

내가 전도하는 상대방이 여러 교파나 그들의 견해에 관해서 논쟁을 벌이려고 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 사람 개인의 그리스도에 대한 책임에 관한 것으로 화제를 바꾼다.

만약 상대방이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관계가 되는 어떠한 성경말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결국 그것은 선생님과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직 성서적인 견지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으신 분이 아니니까요!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십시오. 그리고 나신 후에 만약 선생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시기 원하시면 이 문제와 다른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지도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세아 6:3).

만약 상대방이 말이 많은     사람일 경우에는 인내를 가지고 그의 말을 들어주라. 그리고 정중히 대하라. 그러면 잠시 후에는 그가 말을 그치고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논쟁을 하려 하고 죄에 번민도 없고 그리스도를 좇을 마음도 없는 사람일 경우에는 물론 대화를 계속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이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의 이와 같은 대화로 우리가 손해 본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복음서를 받아 주시겠지요. 그것을 조심스럽게 정독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그와 악수를 하며 헤어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라. “선생님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결신(決信)

그대가 전도하고 있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고 있고 또 구원의 길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을 때에는 즉각적인 걸신을 권고하라. 나는 그러한 자에게 『집 에가서 생각하여 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내가 전도하고 있는 상대방이 그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또 구원의 길을 받아 드릴 때에는 나는 즉각적으로 결신할 것을 강조한다. 나는 그때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한다.

우라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대화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구원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보통은 이에 대해서 거의 다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선생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또 기꺼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이에 대해서도 역시 거의 『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언제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라는 대답을 하기 전에 약간 주저 할 것이다. 『선생님은 지금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이 때쯤 되면 진실한 사람은 『네』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때 나는 그에게 성경말씀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그리고 나는 손을 내 밀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금 선생님을 구원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고 지금 그 분을 마음 속에 모시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손을 펼친 채 조용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린다. 그리고 상대방이 『주님을 지금 모시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때 나는 감사한 어조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백 명의 구원 받은 사람들의 손이 이 손을 꼭 잡고 악수하여주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가 의지할 성경말씀을 새겨주려고 노력한다. 이는 자기의 감정이나 결심을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또한 그로 하여 금 그리스도를 시인하여 기도의 습관을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도록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만이 그가 전에 교회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경우에는 성서적으로 살아있는 교회에 나가 친교 할 것을 권유하고 또 만약 그가 교회에 나가고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 교회 장로들을 찾아 그가 어떻게 구원 받은 사실을 간증하도록 권고 한다.

나는 그에게 사단이 유혹할 두 가지의 위험을 경고 한다. 첫째는 사단이 그를 넘어뜨리려고 노력할 것이고 둘째는 그를 억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만약 그가 주님을 계속 바라본다면 그가 넘어질 까닭이 없음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만약 사단이 언제라도 그를 넘어뜨릴지라도 사단으로 하여금 자신을 억누르도록 허락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고 나는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였음을 보여 준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개인 전도자는 그에게 온 기회를 재빨리 알아 그것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종종 기회를 놓치고 나서야 그것을 깨닫고 비통한 심정을 가진다. 전도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회는 참으로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포착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 기도할 필요는 있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이 길을 물어서 그 길을 가르쳐 준 후에는 왜 내가 그들에게 하늘나라에 가는 길을 아느냐고 친절히 물어보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며 자신을 꾸짖어 보았다.

개인 전도자는 재치가 있어야 한다. 재치 없는 전도인은 자기의 일에 손상을 입히기 쉬우며 또 그가 전도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하기가 쉽다.

재치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언행 할 것을 아는 빼어난 재간이다. 재치는 전도자로 하여금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말을 적절한 방법으로 말하게 하여 준다.

그리스도인들의 재치의 부족은 다른 사람들의 일을 방해한다. 나는 여러번 부모님들이 그들의 자녀들이 있는 데서 그들에게 전도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바로 꺼리는 경우였다. 그때 나는 그렇게 재치 없는 그리스도인들로 인해서 장벽이 가로 놓여진 것과 같은 느낌을 가졌다.

 

재치 있는 전도인은 기도하고 계획하고 조심한다.

때로는 얼마동안 영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찾아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전도 받는 상대방이 공격을 받고 반감을 사기가 쉽기 때문이다.

D. L.무디씨는 구령에 있어 숙련된 일꾼이었다. 그는 때로는 자기가 전도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종교적인 대화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는 얼마 동안은 이 중대한 구원문제를 다루지 아니하였다.

한번은 무디씨가 복음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오후 전 시간을 한 청년과 정구치는데 보냈다. 이 청년은 길게 붙잡고 이야기만 하면 즉각 반발한 사람이었다. 무디씨는 그 청년의 마음을 산 후에야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었다.

재치는 전도인으로 하여금 어떠한 날카로운 답변이라도 점잖이 처리하게 하여 주고 그 반발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그가 혼자 있을 때 생각날 친절하고도 교훈적인 말을 남겨주게 된다.

 

아주 세련된 전도인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실수를 범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트람벌 박사가 말한대로 가장 큰 실수는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정직한 노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러 번 개인전도에 실패한 적이 없었는가란 질문을 받았다. 그때에 나는 그 말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을 시인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개중에는 전도인이 책임질 수 없는 실수들도 있다. 그는 자기의 최선을 다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의지하였지만 바라는 결심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대 전도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지마는 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접했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모두가 참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개인 전도에 있어서도 전도 받은 사람들이 다 결심하는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한 사람들이라도 참이 아닌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우리 주님도 이 점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셨다. “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1).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면 안 되셨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40). 그리고 주님은 그의 놀라우신 지상사역을 마치실 무렵에 백성들의 마음의 완악함과 임박한 심판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셨다.

하나님과 영혼을 진실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와 구원에 관해서 무관심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의 아픔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 바울은 눈물로써 남녀를 경고하는 설교를 했다. 그러나 그는 슬픈 마음으로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10:16)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같이 개인 전도인은 냉담과 조소와 모독을 받을지라도 놀라서는 안된다.

또한 그는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후에 참이 아닐지라도 민망한 마음은 가져도 지나치게 낙심하지는 말 것이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 성경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내 생각에 주님의 미음은 괴로워 있었고 그의 음성에는 흐느낌이 있었으리라. 그러기에 주님은 열 두 제자들을 향하사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 6:66,67)고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 전도인은 전도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그리고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참이 아닌 경우로 나타난다고 하여 그의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참된 어부라면 그가 어느 날 고기를 하나도 낚지 못했다고 하여 그것으로 낚시질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계속 낚시질을 하러 나가서 성공하고야 말 것이다.

 

개인 전도인이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한 실수의 원인은 전도자 자신이나 그의 전도 방법일 수 있다.

영혼을 얻고자 하는 전도인이면 누구나 매력이 있어야 한다. 비판적인 마음은 구령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전도자가 사랑과 친절이 없음으로 인해서 영혼을 쫓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처음 보게 되는 것은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전도자 자신을 통해서이다. 조웰 박사는 설교할 때 사랑의 노래를 사용하라고 권고하였다. 이것은 개인 전도자에게도 역시 필요한 것이다.

 

(78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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