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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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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4. 16:56 횃불/1978년

토기장이

 

이전에 있는 해강(海剛)도요공장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근형(柳根瀅)선생은 고려청자의 찬란한 민족문화를 오늘에 되살려 보급하고 있는 존경을 받을만한 분이십니다. 이천으로 떠나기 전에도 돌아보는 동안에도 돌아온 후에도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던 토기장이에 관한 교훈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18:1~4).

수십명의 도예공들이 국내외 각지에서 들여온 다양한 흙을 곱게 걸어 녹로에서 그릇을 빚고 조각을 하고 잔손질을 해가며 무늬를 수놓아가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곱게 가라앉힌 흙무더기가 있고 그릇을 만들다가 부수어 버린 조각이 군데군데 던져져 있었습니다. 같은 흙덩이 일지라도 위대한 도예공들이 솜씨에 따라 천태만상의 그릇을 만들게 됨을 보면서 만유를 뜻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64:8)

작품이 그 사람의 솜씨와 생각과 아름다움을 나타내 주듯 삼라만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만든 그릇마다 그윽이 아름답고 아담하고 정교했으며 크기와 모양과 색상과 용도와 가지가 모두 달랐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9:21).

토기장이는 흙덩이를 마치 아낙네가 밀가루를 반죽하듯 자유자재로 붙였다 뗐다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긋고 파고 발랐습니다. 도예공의 구상과 계획대로 차츰 완성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응시하면서 마치 내가 잊어가고 있는 듯 대견스럽고 마음이 끌렸습니다.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29:16)

이것은 얼마나 논리적이며 지성적인 반문입니까?

인생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에서 흙으로 빚음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7).

뿐만 아니라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생은 흙에서 취하여 살아가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그런데 이처럼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인생의 실상이 흙으로 지은바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인생은 비지정적이고 이생에 어긋나는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없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14:1, 53:1)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10:4).

지음을 받은 인생으로서 창조주가 없다는 말은 자신의 근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또한 악인의 모든 언행심사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시고            다스리고 심판하심을 부인함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바로 살인적인 공산주의 사상이 그렇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창조주로 인정할지라도 오만하게도 하나님께 총명이 없다고 비난하며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힐문하는 자칭 지성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9:19,20)

과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 이실진대 좁은 인생의 지혜로 다 측량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따를 수 있을까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3).

해수(海水)는 불가두량(不可斗量) 이란 말이 있듯이 인생에게 다 이해될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이미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신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비밀입니다. 그 비밀 중에서 인생에게 보여 주시되 만물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는 논리는 마치 장님이 보이지 않는 모든 사물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진흙으로 만들다가 토기장이의 손에서 부서진 그릇은 다시금 곱게 부수고 밟아 새로운 그릇을 만들게 됩니다.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 같이 밟을 것이니”( 41:25)

하나님께서는 인생 개개인에 대하여 국가나 민족에 대하여 설계를 가지고 계시며 뜻을 두고 행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18:6).

인생은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39:7).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새롭게 설계하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지고 파상한 그릇을 곱게 부수어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과 물로 다시 새롭게 빚어 내십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9:24)

 

잘 빚어진 그릇은 섭씨 700도 내외의 온도에서 초벌구이를 한 후에 유약을 발라서 1300도 내외의 온도에서 두벌구이를 하게 되면 청자가 되어 나온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마 속에는 초벌구이 할 때에 깨뜨려진 그릇이 가끔 눈에 띄어 그 중에 조그마한 병을 기념으로 갖고 왔습니다. 깨어진 그릇은 그냥 남겨두거나 나누어 주지 않고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린답니다. 쓸모도 없겠거니와 도예공으로서의 깨끗한 이름을 보존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19:10,11).

깨어진 그릇!

다시는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없고 무가치한 인생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그릇으로 비유되고 있는 인생의 육체는 죽음과 함께 다시는 완전케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만일 인생이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인생이 끝나버렸다면 이는 마치 깨어진 오지병과도 같이 다시는 소망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

죄의 삯은 사망이요”( 6:23)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4,15)

만일 거듭나지 못한 인생이라면 둘째 사망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일생 다하기 전에 토기장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새사람이 되는 길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토기장이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롭게 지으시기 위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피로 값주고 사셨습니다. 은 삼십에 팔리셨던 주님은 마침내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해서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26:15).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27:9,10)

만왕의 왕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이신 주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리신 것입니다.

얼마나 서글픈 사실입니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얼마나 억울한 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우리의 생애를 다시 빚으시는데 있었습니다.

흙덩이처럼 보잘것없는 우리의 생애에 예수님을 창조주이시며 구세주로 영접하신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무한한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의 생애에 주 예수님을 영접하신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

거듭난 성도는 그 심령에 보배로우신 주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그릇은 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78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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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