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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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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5. 10:28 횃불/1982년

회복

히스기야는 이런 개혁자들 중의 첫째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숭배자였고 또한 국가는 여러 면에서 최악의 상태였다(역대하 28장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춤하지 않고 즉시 일할 준비를 갖추었다.

곧 저가 주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18:6).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빛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빛을 그에게 주신다. 히스기야는 우상을 헐어버리는 일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집을 청소하였고 자기 속에 간직된 빛을 따라서 사람과 사물을 정비해 놓았다. 다음으로 그는 유월절을 지키도록 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이는 기록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대하 30:1,5).

이것은 담대한 한 단계의 진보였으나 타락한 백성들의 전체적인 동의를 얻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비웃었고 보발꾼(사자)들을 조롱하였다(10). 그러나 몇몇은 견책을 느끼고 자신을 낮추고 나아와 큰 기쁨으로 절기를 지켰으니 솔로몬 때로부터 지켜오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26). 이것은 참된 희락이었고 적어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간 한걸음의 전진이었다.

 

요시야가 그 다음이었다.

소년기를 갓 넘었을 때부터 그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율법서를 찾기 시작하였고(대하 34), 또한 그는 거기서 모든 일들이 전혀 제대로 되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에 착수하였다. 유월절은 정확한 때에 맞춰서 첫달의 십사일에 지켜졌다. 또한 예루살렘 곧 합당한 장소에서 이행되었다. 큰 기쁨과 축복이 따랐으니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그 같은 유월절이 없었기 때문이다(대하 35:18). 이것은 한층 더 나아간 진전이었다. 이에 비해 사무엘의 때는 출애굽기 12장의 완전한 원형이 아니었다. 그 후 오랜 중단이 뒤따랐다.

 

느헤미야 시대에 온전한 회복이 있었다.

유다는 바벨론으로 잡혀갔으며 성전은 훼파되었고 백성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일어날 때까지 바벨론의 버드나무 아래서 암흑과 비통 중에 처해 있었다. 국민의 다수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보지 못했고 오직 남은 자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책을 손에 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 에 기록된 대로질서를 잡기 시작하였다( 3:2)

이것은 취할 만한 참 근거가 되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솔로몬과 사무엘을 지나, 그리고 기타의 선한 사람들의 긴 명단을 지나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것으로 바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발을 딛고 설만한 유일의 견고한 반석이다. “이렇게 주께서 말씀하시니라야 말로 우리가 서야 할 확고부동한 기초이다.

선인들은 우리의 본이 못된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간증을 존중히 여긴다 해도 그들 역시 의문의 여지없이 큰 실수를 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론은 이스라엘의 선한 대제사장이었지만 금송아지를 세웠던 사람으로서 후에 악한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송아지를 만든 근거로 아론의 예를 내세웠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따른다면 결국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될는지는 자명하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이 절대로 확실한 것이다. 에스라 6 19~22절에서 그들이 행한 바와 같이 우리도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

 

유월절은 출애굽기 12장에 따라 지켜졌다. 소수만이었지만 기쁨으로 지켰으니 여호와께서 저희로 즐겁게 하셨기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회복이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옛 것만이 원형대로, 그리고 적어도 축소형으로 부흥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초기의 전성시대에 비하면 소규모의 행사였지만 그들은 울고 또한 노래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3:11,12).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것이 바로 주의 만찬과 관련하여 행하도록 촉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제도를 창안해서는 안될 것이며, 개혁자들을 본받을 필요도 없고, 기타 시대의 위인을 따를 필요도 없다. 오직 근원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뿐이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에 유월절을 회복한 이래 마지막 3세기 동안은 복된 진리가 많이 회복된 때였다. 그러나 모든 단계에서 위험이 뒤따랐고 그 모든 일들이 판에 박힌 것이 되었다. 모든 종파들이 그런 식으로 되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전체는, 인간의 유전을 떠나서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서 읽는대로 주의 첫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려 하여모였다( 20:7). “그들은 주의 만찬을 먹기 위해 한 장소에 모였다”(고전 11:20). 이것은 주께서 오실 때까지계속되도록 분부되었다(고전 11:26).

교회적인 권위의식, 또는 사도적 교회의 재건이나 부흥에 대한 자랑 등을 우리는 철저히 부정하고 배격한다. 다만 피로 산 하나님의 양무리 중 흩어진 양떼의 연약한 잔존자로, 비록 약한 상태이나 위대하신 목자를 향해 주님의 상에 둘러 앉아, 그분을 모시고,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사랑하시는 주님의 간절하신 분부를 기쁨으로 준행할 따름이다.

 

(1982 4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