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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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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0. 07:42 횃불/1983년

잊을 수 없는 형제

 

사랑하는 형제여.

십년 전, 형제가 우리 작은 셋방살이 집에 찾아 왔었을 적을 기억하시겠지요. 지금은 형제나 나나 다 궁궐에서 살지만 그때는 심한 간고와 추위로 인하여 식구들의 얼굴이 다 붓고 매일 국수라도 계속 먹을 수 있기를 바랐지요. 현실은 항상 괴로운 것이지만 회상은 항상 즐겁다는 말이 생각 나는군요. 그때 불기조차 없는 냉방에서 형제와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밤새도록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깨달은 말씀을 서로 나누었을 때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때의 환경이나 날씨는 몹시도 추웠으나 우리 서로의 체온과 입김과 눈빛은 뜨겁게 빛나고 있었고 서로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지요.

우리는 그때, 우리가 일반으로 얻은 구원의 도리와,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하신 경륜과 신비로운 진리에 대하여 밤이 맞도록 얘기했지요. 그리고 우리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당한 숱한 경험들을 우리는 서로 나누었지요.

그때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진리하나님의 교회의 진리와 생활 규범에 관하여 서로 다른 견해가 없었습니다.

형제와 나는 주님 안에서 하나이었고 진리와 사랑 안에서도 하나이었습니다.

 

떠나가 버린 형제

-- 그렇던 것이, 지금은 어인 일인가요? 주님 안에서 안연히 거하던 사랑하는 형제가, 느닷없이 큰 광풍이 휘몰아치자 그대로 휩쓸려가고 말았으니···· 사단의 역사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고 형제의 믿음과 우리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동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형제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돈이 있어야 주님을 섬긴다 말하면서 훌쩍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도, 복음도, 모임도 형제의 눈에는 중동의 오일달라 보다는 아주 작게 보였던 것이지요.

진리의 사랑”(살후 2:10)을 받지 않고, 소명의식을 잊고 고기나 잡으러 가고( 21:3)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라는 말씀을 망각하게 되면, 결국 진리를 버리게 되고 처음 믿음과 사랑을 떠나게 됩니다.

복음적인 구원의 도리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계시된 거룩한 교회의 진리를 경시하거나 변질시키면서 자기의 사사로운 계획과 여러 조직과 물질과 사상으로 주님의 일을 경영해 가는 것은 성장하거나 부흥된 것이 아니고 넓어지거나 새로워 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타락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봅시다. 형제가 외국 자본과 외국 문물을 얼마나 많이 배워 왔는지 나로서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오래간만에 귀국 했다 싶어 기뻐하기도 전에, 형제의 입에서는 인간 본위주의와 합리주의적인 사고 방식으로 점철된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학문을 연구해야 된다고 형제는 주장했습니다. 조금 좁혀서 형제가 학문이라 함은 신학을 공부해야 사역자나 종교의 목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우리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 배우는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하신 뜻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신학이나 무슨 대학을 나왔거나 혹은 국민학교도 안 나왔거나, 그런 인간의 자식이나 기준을 보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무식하고 완고한 어부 시몬을 부르신 주께서는 그를 훌륭한 하나님의 종, 일꾼, 제자, 사도, 장로가 되도록 훈련하셨고 또 놀랍게 쓰셨습니다. 이 베드로뿐만 아니라, 그 당시 최고 학부라고 할 수 있는 가말리엘 문하(門下)에서 교육을 받은 바울을 부르신 주께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들어 크게 쓰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온전하신 것이고 그 은사와 부르심은 후회활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부르심이고, 하늘의 부르심이며, 경륜하신 뜻대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보잘것없는 육체의 모양이나 지식이나 환경 및 조건을 보시고 부르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번째 편지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 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1:10)고 힘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딪힐 것을 놓은 형제

형제가 신학 과정을 은밀히 수료하고 나서는 나에게, 이제부터 목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하여 한 마디 짚고 넘어가고 싶군요.

사실 성경에는 목사(牧師)”라는 직임이 있습니다( 4:11). 원어 성경의 뜻으로는 Poimen 곧 목자(牧者 요 10:2~16, 벧전 2:25)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은사가운데 교사나 집사, 전도자의 직분이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구원받은 형제들 중에서 그런 섬기는 일의 은사와 책임을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뿐입니다.

일 자체를, 그가 받은 직분을 들어 장로, 목사, 감독, 집사 혹은 선생이라고 호칭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성도, 온 교회 안에는 특별한 계급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8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에로 올라간다 하라”( 20:17)고 그의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2: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교회의 주인은, 머리는 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장로들 혹은 목사들은 목자장 되신 주님 아래서 지역모임을 돌보고 가르치고 치리하고 지키는 작은 목자들입니다. 장로들이 마땅히 위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말씀에 부합된 성서적인 인격적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온 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보살피며 수고하고 있는 장로 형제들을 존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태도입니다(딤전 3:1~7, 1:5~7, 벧전 5:1~5).

장로, 감독, 목사는 각자 분리된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한 인물로서 사역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에 그 직분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 명칭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형제여, 형제는 그 밖에도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는 여러가지 것들을 인정하고 있고 때로는 새 방법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4:3, 4:3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공중에 오심으로 휴거되는 그 순간까지 오직 생명의 은혜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참 자유를 누리면서 감사의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변질된 다른 복음이나 비슷한 복음을 좇아갈 수 없습니다. 율법과 조직과 인간의 방법을 동원하고 강요하는 종교지도자 밀에서 종살이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들과 사귀고, 혈육과 의논하고, 억지로 일을 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고, 그리스도 안의 심령의 자유까지 빼앗고, 유명한 이름과 업적까지 들먹이고, 외식하며 겉으로 꾸미고, 율법을 강조하고, 몽학선생의 행위를 따라가다가 육체로 마치고, 초등 학문의 교훈을 숭상하고,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어리석은 일을 성도는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일이고 헛수고일 뿐입니다. 복음의 진실성과 선한 양심,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떠난 사람들은 순박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자기를 좇게 만들고, 분열과 분리를 조장하고, 집집에 찾아 다니면서 폄론(貶論)을 일삼고, 남의 일에 참견하고, 해서는 안될 말을 퍼뜨리고, 게으름을 피우고, 일하지 않고,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자기를 내세워 자랑하고, 육체의 모양과 형식에 치우치고, 온갖 육체의 더러운 정욕적인 것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형제가 직접 갈라디아서 전장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그 말씀에 따라 형제의 신앙 노선과 생활을 검토해 보십시오.

 

돌이켜야 될 형제

형제여. 형제는 이미 그 믿음과 마음과 생활이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이탈하여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어서 돌이키십시오!

형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편리한대로 적용하고 있고 자의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옛날 첫 믿음 때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신령한 말씀, 말씀 그대로 깨닫고 믿고 순종하며 기뻐하던 그 모습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형제는 나에게 은혜의 복음만을 전하지 말아라. 행위를 강조하라. 예배를 지나치게 중심하지 말아라. 자매들이 종용할 필요가 없다. 신학이나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역을 할 수 있느냐, 물질을 많이 드리도록 강조하라, 주님을 섬기는 목적과 뜻이 분명하면 방법이야 좀 달라도 괜찮다, 그리스도인도 육신이 있으니 경우에 따라 혈기와 분노와 주먹도 쓰게 되는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형식과 강요와 인간의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형제는 너무나 많이 변했어요. 이젠 형제라 부르기조차 거북해 지는군요.

그러나 형제여, 나의 형제여,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십시오. 형제와 나의 지식이나 물질이나 계획이나 업적은 다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과 부흥의 비결은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주님의 품 안에서 영적인 교제를 다시 시작합시다.

형제여, 우리가 믿는 진리는 사람으로 인해 풍성해지고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진리로 인해 영원해집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5:19,20).

 

(1983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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