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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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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8. 07:51 횃불/1983년

주교사 샘터

생명과 영광

( 21:1-8, 22:1-21)

1:1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계 20:11에서는 그 천지가 없어져 버린다. 벧후 3:10에서는 천지가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벧후 3장에서는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는데,계 21:1에서도 같은 말씀을 볼 수 있다. 11:10에서는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라고 했고 이것 역시 계 21:2에 다시 나오는데, 그 다음 부분에서 이것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65:17-18에서는 하늘, , , 이 세 가지가 합하여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을 말하고 있다.

17:1-3에서는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들 중 하나가 요한을 초대하여 이리 오라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하는데, 21:9에서는 그들 중의 한 천사가 거의 비슷한 말로 써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그 다음에 오는 큰 음녀와 신부, 옛 바벨론성과 새 예루살렘성을 대조하고 있는 점에 우리의 주위를 집중시키려는 목적인 것 같다. 18:14,21-23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이 일곱번의 부정문으로 묘사되어 있다. 탐하던 과실이 더 이상 없고, 음악도, 세공업자도, 맷돌소리도, 등불 빛도, 결혼식도 더 이상 없으며, 바벨론성 자체도 결코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성의 풍성한 축복들도 이와 비슷하게 부정문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고(21:1),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다(21:4). 다시는 저주가 없고, 밤도 없으며, 등불이나 햇빛도 필요없다(22:3,5).

버림당한 자들의 고통 가운데에는 그들이 마음에 두었던 것들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된 것과, 그것들 때문에 구원마저 잃게 된 것에 대한 후회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반면에 구원받은 자들의 행위 가운데에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 때에 그들을 그렇게도 애통케 했던 것들로부터 더 이상 고통 당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마지막 두 장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의 잔치에 마지막 두 초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21:6에 나와 있고 다른 하나는 22:17에 나와있다. 두 구절에서 다 생명수가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제공된다. 이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그 표현에 있어서 흥미있는 변화를 볼 수 있다. 21:6에서는 내가····주리니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22:17에서는 원하는 자는····받으라라고 표현되어 있다. 전자에서는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볼 수 있으며, 후자에서는 그 생명수를 받아 마셔야 하는 인간의 의무를 볼 수 있다.

22:11 22:17과 연관지어서 생각할 때 이상하게 들린다. 22:17에서는 오게 하라····마시게 하라(Let him come····Let him take)”라고 하는데 반해서, 22:11에서는 그대로····하게 하라(Let him be)”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죄인은(구원받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있으라는 것처럼 들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영원한 상태와 관련지어 사람이 그것에 들어가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다니엘서와 비교해 보는 것은 계시록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12:10에 보면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문맥상으로 볼 때에 그 환상이 인봉되고 그 정한 기한이 길기 때문이다. 여기 계 22:10의 환상은 인봉되어 있지 않는데 그것은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가깝건 멀건 간에 악한 자들은 마찬가지이다. 오래 전 사 22:12-13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심판이 가까운 때에도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함과 같다. “그대로····하게 하라(Let him be)”라는 말은 만일 사람이 불의한 상태로 남기를 고집한다면, 그러한 그의 의지에 반해서, 억지로 그를 구원받게 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주교사 샘터 연재 끝)

 

(1983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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