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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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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7. 11:56 횃불/1984년

그리스도인의 모임

그리스도인의 모임 - 예언

 

-J. R. 리틀프라우드

1장 실로의 예언

 

()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治理者)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49:10).

 

늙은 야곱이 애굽에서 자리에 누리 죽어가면서 자기 아들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축복을 하기 위해 12아들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놀라운 영적 선견지명을 주셔서 미래를 내다보게 하시고, 그의 12아들로부터 생겨난 이스라엘의 작 지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특히 유다지파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治理者)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모이리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 장소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야 할 장소가 있어야만 했는데 그곳이 바로 실로였습니다. 2000년이 지나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애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그 땅에 있는 우상 숭배의 장소로부터 구별되어 있어야만 하며, 그 땅 거민들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네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 그 땅 안에 한 장소를 택하시리라는 것.

2.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리라는 것.

3. 그곳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리라는 것.

4. 그곳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나아가리라는 것.

7년이 지나 그 백성들이 땅에 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會幕)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습니다”( 18:1).

늙은 야곱의 예언은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져서 그 백성들이 실로에 함께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장소였을까요? 예레미야 7 32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處所)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이 말씀에서 다음의 두 가지의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실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셨던 장소라는 점과,

2.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행해진 악 때문에 나중에 그 장소를 심판하셨다는 점입니다.

사무엘상은 실로를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장소로,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이 모였던 장소로 묘사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삼상 1:3,24). 그 당시에는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벨리알의 아들들(우리말 성경에는 불량자들로 나와있음)이었으며,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삼상 2:12).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할(삼상 2:17) 정도로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서의 그들의 소행은 대단히 불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소행을 오랫동안 관용하시거나, 또는 그와 같은 장소에 오랫동안 머무르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기때문입니다( 93:5).

이에 하나님께서 블레셋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재난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은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습니다(삼상 4: 4). 그러나 이 조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자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삼상 4:11). 그 후 조금 있다가 비느하스의 아들이 때어났을 때 산모는 그 아들을 이가봇”(영광이 없다)이라 부르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니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고 말했습니다. 언약궤의 부재(不在)는 곧 여호와의 부재를 뜻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언약궤 위의 그룹 사이에 있는 그 영광의 구름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78:60).

따라서 오늘날과 같이 벨리알의 아들이 제사장으로서 행동하는 곳에서나, 경건치 못한 행위가 널리 유포되어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떠나시면서도 이 땅에 하나님 자신에 관한 어떤 징표를 남겨두시는 분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자 블레셋은 포획했던 언약궤를 치리 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삼상 5). 이에 그들은 새 수레를 만들고 그 위에 하나님의 궤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냈습니다. 다윗이 통치할 때 언약궤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삼하 6)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택하사 자기 이름을 두시고 자기 백성들 가운데에서 거하시는 장소가 되었습니다(대하 6:6, 7:12~16). 그런데 불행하게도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만들어 준 새 수레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삼하 6:3~7). 하나님께서는 오직 고핫 족속만 언약궤를 멜 수 있다고 이미 지정하셨습니다( 3:29~31). 오직 이 여호와의 법령이 지켜지고, 여호와께서 합당한 순서에 따라찾은 바 되실 때에만(대상 15:5,11~15) 예루살렘에 기쁨과 축복이 있었습니다.

 

. 인물

그러나 야곱의 예언은 실로라고 불리운 장소에 백성들이 모이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미치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한 인물, 곧 백성들이 그에게로 모이게 될 한 인물이 생겨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모이리로다”(우리말 성경에는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로 나와 있음). 유다 지파에서 생겨나 백성들을 자기에게로 모을 그 실로라는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요? 실로는 화해시키는 사람혹은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을 뜻하는데, 따라서 우리는 이 실로가 누구냐에 대한 해답을 즉시 얻게 됩니다. 참으로 평화를 가져오실 분은 오직 한 분 밖에 없는데, 그분의 이름은 평강의 왕으로서( 9:6)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1:20).

늙은 야곱은 먼 장래를 내다보고, 백성들이 그 분에게로 모이게 될 날, 즉 그리스도인의 모임의 양식(樣式)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라는 말씀대로 되는 때를 미리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늙은 야곱의 예언적인 분별은 대단히 예리해서 그는 그 약속된 실로가 오시는 시간까지 지적했습니다. 즉 그 약속된 실로가 오설 때까지 유다 지파의 통치권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통치권에 대한 상징)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유대인의 공회가 주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할 자로 정죄한( 14:64) 후 그분을 빌라도에게 데려갔습니다. 빌라도 앞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19:7) 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그들이 선고했던 사형 판결을 집행할 권세가 없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빌라도에게 시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18:31). 왜 그랬을까요? 시민 통치권이 로마의 손아귀에 넘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났으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실로가 오셨던 것입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모이리로다라는 야곱의 예언이 온전히 성취되는 날이 바로 눈 앞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 즉 한 가운데에 계신 그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모임의 제도가 확립될 시간이 가까이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1984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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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