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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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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1. 11:12 횃불/1985년

타락의 증세와 회복의 길

 

진실한 신자가 타락할 경우는 없다. 신자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받았다(벧후 1:3). 주님과 교제가 끊어지는 경우 그 잘못은 우리의 편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계하고 교훈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다른 형제들을 돕기 위해서도 타락의 원인과 그 치료법을 알고 있어야만 하겠다.

 

타락의 시작과 증세

대체적으로 타락은 갑자기 돌발하는 병이 아니고 점차적인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다.

사소한 오락들이 우리에게서 성경공부와 기도 시간을 빼앗아 간다.

좋지 않은 친구들과 벗하는 것이 우리들을 영적인 일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뉘우치지 않은 죄가 선악에 대한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든다.

서서히 우리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유혹에 빠진다. 우리는 공공연히 그리스도를 시인하기를 꺼려한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 주변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구별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상과 같은 타락의 과정을 우리는 삼손( 14~16), 나오미( 1:1~5) 및 베드로( 22:54~62)의 생애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을 떠난 사람에게는 아래와 같은 증세가 일어난다.

1.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자 하는 흥미를 잃고 병든 자처럼 식욕이 없다(고전 3:1, 2).

2. 신령한 형제들과 사귀고 싶은 의욕이 없고 오히려 그들을 피하고자 한다. 만일 교회의 집회에 참석한다 해도 그것은 자기의 실제 상태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어떤 진지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딤후 4:10).

3. 영적으로 자라고 싶어하는 결의가 전혀 없다. 은혜 속에서 자라는 것이 과거처럼 그렇게 중요시 되지 않는다(5:12).

4.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전혀 없거나 별로 없고 스스로 자기의 계획을 세우며 능히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4:13).

5. 기쁨이 없다. 이 점을 잘 유의하라. 아무리 자기의 실제 상태를 감추려 한다 할지라도 그는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냉냉하고 불경건한 길을 기쁘게 계속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거듭나지 않은 확실한 증거이다( 51:12).

6. 타락한 신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 잘못이 자기에게 있음을 깨닫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기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그는 마치 어느 무더운 날 오후에 버드나무 밑에서 잠자던 수염이 길게 난 노인과 같다. 그가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동내의 심술꾸러기 청년 몇이 와서 그의 수염에 냄새가 독한 치즈를 바르고 갔다. 잠에서 깼을 때 그 노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치즈 냄새가 난다고 투덜댔다. 타락한 신자는 꼭 그와 같은 것이다( 7:3).

7. 그는 항상 자기를 변명한다. 자기는 억울한 취급을 받았고 자기는 환경의 희생자이며 자기는 다른 신자들보다 더 신령하다고 주장한다( 2:17).

 

타락의 비참한 결과

이와 같은 상태에 빠져있는 자들 중에 그것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깨닫는 사람은 별로 없다.

1. 첫째로 타락한 신자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범하지 못할 죄는 없다. 불순종으로 인해서 주님과 모임과 가족과 자신들을 욕되게 한 신자들의 눈물, 후회와 슬픔을 누가 능히 측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예로서 행전 5:1~11을 참조해 보라.

2. 하나님을 떠난 일 순간의 실수가 한 사람의 일생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 단 한가지의 그릇된 선택, 그릇된 행동, 단 하나의 죄가 나로 하여금 공적인 주님의 일을 영구히 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고전 5:1~11을 참조).

3. 타락은 종종 일평생 없어지지 않는 육체적 흔적을 남겨놓는다. 신자가 하늘 나라에서는 자기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는 자기의 죄에 대한 열매를 받는 수가 흔히 있다. 일 예로써 삼하 12:14을 열어 다윗의 그 후 생애를 읽어보라. 질병과 허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7)는 진리를 언제나 상기시켜 준다.

4. 신자가 타락과 불순종의 생활을 계속하는 경우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데려가신다(고전 11:30, 요일 5:16) 이것이 주님의 최후 통첩이다.

나오미가 타락의 길에서 돌이킨 후에 매우 서글픈 말을 했는데 우리는 그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를 나오미(희락)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1:20,21).

나오미는 배역의 결과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다. 나오미처럼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을 떠나가나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돌아오게 하신다. 나오미처럼 우리도 풍족한 중에 나가나 주님은 기어코 우리를 비어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돌아 갈 길은 항상 열려있다.

그러나 배역한 자녀가 영원토록 감사할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15:20). 행복한 가족의 분위기가 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 회복의 문은 돌아오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돌아올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

1. 자 백

하나님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자백은 진실하여야 한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할 경우 자백을 반복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시편 51편을 열어 진실한 통회와 뉘우침이 어떤 것인지를 참고해 보라. 우리가 시편 51편의 마음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나무라거나 우리 자신을 변명하는 대신에 우리의 죄를 중심으로 시인할 것이다.

자백은 분명해야 한다. 주님 앞에 죄목을 분명하게 고백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괴악한 죄들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러한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는 경고를 받을 것이다( 28:13)

2. 반 환

배역의 길에서 돌아오는 자는 자기의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입힌 피해를 복구하고자 원할 것이다. 예를 들어 훔친 물건이 있다면 이자를 붙여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어딘 사람에게 죄를 범한 경우라면 그 사람을 찾아가 직접 잘못을 고백하여야 한다. 그러한 행동의 따끔한 수치와 모욕감은 앞날에 그 사람에게 강력한 제지력의 역할을 할 것이다.

3. 회 복

죄를 완전히 자백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신 줄 믿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구원 얻은 것을 믿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시인하고 버렸을 때 우리가 회복된 것을 민어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주님과 더불어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주님의 자녀들과 사귀며, 사람들 앞에 담대히 주님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할 때 우리는 잃어버렸던 구원의 기쁨이 되돌아오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1985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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