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1. 10. 07:18 횃불/1986년

중공 교포 방문기

 

세계에는 6 천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이 큰 아주 큰 집단 중 약 2백만 명 가량이 중공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포들은 일본 사람들을 위해 노동자로서 만주로 끌려 갔든지 아니면 한반도에 닥친 기근과 낙국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갔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당시의 만주에는 중국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교포들은 농부나 상인. 일군 등으로 그곳에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오늘날 중공의 교포들은 대부분 길림도, 그 중에서도 특히 연길이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이 도시는 80% 정도가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자치 시로서 한국인들이 시 행정을 담당하고 있으며, 한인 학교, 한인 백화점, 한인병원들이 이 도시에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도시의 모든 간판들은 한글과 한자 두 가지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에 연길 기독교회라는 교회가 하나 있는데 이 교회의 목사님은 70세가 넘으신 분입니다.

최근에 저는 연길과 심양에 있는 교포들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중공과 이북 경계선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두만강 둑 위에 서서 이북 땅에 있는 남양이라는 조그만 도시의 건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남양 뒤에는 높은 언덕들이 있고 그 언덕들 너머에는 천 8백만이나 되는 동포들이 이북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리에는 중공 출입국 관리사무소가 있는데 이 사무소 앞에서 저는 북한에서 막 넘어온 한국 여성 한 명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 여성에게 그녀가 떠나 온 청진에 교회가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또 가정에서 열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녀는 없어요. 그리스도인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북한에 있는 자기 자녀들에 관해서 알고 계십니다.

중공에는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며 저는 그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 중의 한 그룹이 부르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찬송을 들으면서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주 큰 고초를 겪어왔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일본의 점령을 당했고 그 다음에 공산주의 혁명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나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갖가지 반() -그리스도인 운동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에는 이른바 문화 혁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한 가지 매우 슬픈 사실은 겉으로 보기에 만주의 많은 한국인들이 영원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재 그들은 돈 버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개인 기업에 관한 규정을 완화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조그만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랫동안 많은 고초를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과거를 금새 잊어 버리고, 자기들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은 공산주의 교육이 어린 마음들로부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말살했다고 말했지만 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온 중국 땅에는 주님을 찾는 백성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포들을 방문하려고 중공으로 갈 때 기독교 문서와 소책자들과 전도지들을 가져 갔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들을 나눠 주었습니다. 한번은 두만강 둑 위에서 좋은 기회를 가졌었는데 그 장소는 북한에서 불과 100m정도 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금새 제 주위로 몰려들어 책자들을 열심히 받아 갔습니다. 심양의 어떤 사람은 저의 책들을 받은 후 돈을 주려 했습니다. 저는 어느 목사님한테서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제일 바라는 것은 책, 더 많은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내용을 훑어 보고 나서 같은 것들을 더 많이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다시 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번에 갈 때에는 5배 정도 되는 책들을 가져갈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국경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짐은 검사를 받지 않았으며 책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도 받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제가 소지하고 있던 책들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더 차원 높은 멧세지들을 담고 있었으며 그 멧세지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의 어떤 왕보다도 크십니다. 그분의 나라는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이 땅의 어떤 체제보다도 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나라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예수님이 우리 생애의 주님이시라는 것과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곳의 기후는 추웠으며, 여행은 어려웠습니다. 서울에서 홍콩까지는 비행기로 여행했으며, 홍콩에서 북경, 북경에서 심양까지는 소련제 소형 비행기로, 그 다음 11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오전 1 30에 연길 역에 도착하여 조그만 여관에서 유숙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시내 전체를 여기 저기 걸어 다녀 보았으며 차를 타고 북한 국경까지 가 보았습니다. 연길에서 심양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17시간의 기차 여행을 한 후 오전 3에 심양 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대합실에서 몇 시간 동안 잠을 청한 후 심양에 사는 사람들을 방문하러 나섰습니다.

이제 중공 방문을 뒤돌아보면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인도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심겨진 씨들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열매를 맺을 것임을 믿습니다.

 

(1986 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