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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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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0. 07:19 횃불/1986년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

 

6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우리가 믿는 바로는 새로 구원받은 사람이 나타내 보이는 첫 번째의 변화들 중의 하나가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처럼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질문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타고난 소원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침례가 언급되는 것을 금방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침례를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성경을 표준으로 삼을 정도로 단순하기만 했다면 저는 바로 그 때 침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단순한 자(the simple)를 보존하시나니라는 말씀은 항상 진리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침례는 고오든 선교회에서 터부시되고 있었습니다. 불링거즘(Bullingsm)에 이미 익숙해 있는 맥도 침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침례는 과도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 시대에는 실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맥은 저의 영적인 아버지였으며 성경의 일들에 있어서 저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가 사도행전에서 자주 실천되는 것을 보고 저는 그 애매한 과도기에 대해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선교회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회의 복음 전도자 중의 한 사람에게 그 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기도 역시 그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었었지만 성경 한 구절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어느 말씀이 그렇게 해 주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골 2:6에 나온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라는 말씀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는 그 구절에서 만족할 만한 것을 아무 것도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침례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며 믿음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전도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침례를 받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또다시 성령님을 소멸시키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전도자가 나중에야 모든 것을 자각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속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믿는 자들의 침례에 관한 성령님의 인도를 불순종 하도록 조언하는 목사들의 우두머리들과 선교회들의 지도자들한테는 얼마마한 책임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과 진리 가운데서 행하기를 거절하면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에 반대하는 편견과 어두움이 우리 마음 속에서 자라납니다.

이제 저는 침례를 받는 대신 제가침례를 받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경 말씀을 찾으려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저에게는 작고한 로그 씨가 디사이드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구원을 받음으로써일가와 종교에 먹칠을 했다는 말을 듣고 있던 한 숙모님이 계셨습니다. 그 숙모님은 물방앗간 용으로 만들어 놓은 댐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숙모님은 제가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침례에 관한 편지로 저를 괴롭히기 시작하셨습니다. 애버딘에 있을 때 어느 날 숙모님은 저를 성 바울 스트리트에 있는 모임의 집회로 억지로 데려가셨습니다. 고오든 선교회에서 우리는 플리머드 형제들이란 종파에 대해 특별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고오든 선교회는 플리머드 형제들이 자기들만이 교회이며, 만약 성령님께서 애버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신다면 그것을 성 바울 가의 모임에 보내셔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오든 선교회에서 어떤 분이 일요일 오전 집회 때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 날 밤 성 바울 스트리트의 집회에 앉아 있는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애버딘의 일부 모임 안에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못하고 있거나 혹은 무분별한 말 때문에 징계를 당한 형제들이 있었는데 그 골난 사람들은 고오든 선교회 안에서 문호를 개방한 교회를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형제들에 관해 경고하기를 일삼았습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8:22).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시대에도 사실입니다. 저는 교회들선교회들안에는 그들이 플리머드 형제들이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직자들은 그들을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위 목사들이라는 사람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빼앗음으로써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권리와 의무를 빼앗고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선교회들도 그 형제들을 반대하는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약 성경의 원칙들을 고수하는 것이 곧 여자들이 말하는 것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헌금을 받는 것, 유급(有給) 복음 전도자들 한 달에 한 번씩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 등에 대한 정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선하고 친절한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그 형제들에 대해 몹시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나 저는 그들을 미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직 그들 중의 몇 사람만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선하고 정직한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실 여부를 조사해 보지도 않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가졌으며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만 모이는 그분의 백성들을 계속 중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똑같은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즉시 저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 큰 거래에 관해 소식을 전했습니다. 저는 그들도 역시 그것을 살펴볼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으며 그것에 합당한 회답을 보내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수들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선조들의 종교를 떠났다는 등등의 혹독한 비평을 담은 회답들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의 몇 명을 납득시키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부모님과 다른 식구들이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을 보는 기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지금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베네주엘라에 체재한지 15년 만에 제가 처음으로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저의 큰 누님은 저에게 얼룩진 오래된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의 필적임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누님은 저에게 그 편지는 제가 구원받은 후에 누님에게 보낸 편지로서 저의 새로 찾은 기쁨과 누님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님은 편지 위의 얼룩이 제가 했던 일에 대해 슬픔과 분한 마음 때문에 흘린 누님의 눈물로 인해 생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귀한 시간을 가졌으며, “이 좋은 날이란 찬송을 새롭게 부르며 우리를 자유케 해 준 영광스러운 복음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했습니다.

그 도제들은 저에게서 종교를 잠시 동안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핍박으로도 그리스도를 저에게서 내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원수는 제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들은 공개적인 고통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가정으로 하숙을 옮겼습니다. 그 가정에서 하숙생은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제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아도 그것 때문에 더 나쁘게 대우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는 성서적인 모임만이 젊은 남녀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도리안에서 가르침과 도움을 계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유일한 장소라고 믿습니다. 제가 참석하던 곳에서는 특정한 몇 줄을 제외하고는 성경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침례를 받으라는 그분의 지시를 불순종함으로써 성령님을 근심케 했으며 그 결과 얼마 동안 어두움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저는 침례와 주님의 만찬에 반박할 수 있는 말씀들을 찾으려고 성경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맥은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불링거리즘 안에서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불링거 박사가 쓴 닥칠 것들(Things to Come)”이란 잡지를 성경의 진리에 관한 최종적인 말로서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그 저자는 이른바 형제들의 혹독한 적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다른 모든 종파들이 한 것보다 더 많은 가슴들을 찢어지게 한 종파로 묘사했습니다. 따라서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그처럼 많이 도와 준 것으로 판명된 C.H. 맥킨토쉬(macintosh)와 죤리치(john Ritchie), 그 외 다른 많은 저자들의 훌륭한 저서들은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첫 사랑은 식어갔으며 소년들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코웃음 대신 미소가 있었으며, 발길질 대신 우정이 있었습니다.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고 맥조차도 저를 돕는 일에 힘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가 혼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위선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약 제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저는 무가치한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저는 어떤 때는 올라가고 어떤 때는 내려가는 등 점점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세상과 그 방식으로 돌아 가려고 애썼지만 거기에서 옛날의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땅의 기쁨은 주님의 사랑을

맛본 가슴을 결코 채울 수 없다네.

 

그 절정은 11월에 왔습니다. 어느 날 9에서 10 사이에 저는 고오든 대학에서 집으로 가다가 지배인의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날 2등 기관사 자격을 땄기 때문에 아주 기분이 좋아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 만난 장소는 파아크 스트리트로서 주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 그 모퉁이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저도 술을 마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세 명으로 불어난 우리는 바아에 서 있었습니다. 그곳은 지난 10 20일에 주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 방 바로 아래층이었습니다. 그 때 한 음성이 저의 귀에 울려 왔습니다. “너는 지금 천국으로 가고 있고 저들은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다!” 그들에게서 벗어났을 때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집에 오자 저는 무릎을 털썩 끓고 저를 지옥에 보내 달라고 주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그 날 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자꾸자꾸 주님께 울부짖으며 제가 저지른 죄를 별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에게 죄를 자백하는 일에 관해 가르쳐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 글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사유(赦宥)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130:4)♠ 다음 호에 계속

 

(1986 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