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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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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W. 깁슨

세상과 관련된 주님의 죽음

우리가 요한복음 12:23-33에서 그분의 죽음에 관한 주님의 설명을 더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31절에서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으니”라는 그분의 말씀하신 것을 생각합니다.

 

 악한 세상의 심판

주님의 십자가에 죽음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는 악한 세상에 최종적인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삼 년 넘게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사랑, 돌봄, 친절 그리고 인간의 필요를 향한 동정심, 치유와 군중을 먹이심, 마귀를 쫓아냄, 죽음에서 일으키심 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악한 반응을 일으킬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자비로운 사역이 끝날 때 악한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을 넘었고 이 악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에 대한 결정적인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세상의 선택

그리스도의 돌아가시던 날에, 빌라도는 그리스도 또는 살인자 바라바를 풀어주기 위한 선택을 사람들에게 제의했지만 “그들이 다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이 사람을 없애 버리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눅 23:18)라고 외쳤습니다. 세상은 “그를 없애 버리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요 19:15)라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고, 그것을 근거로 마지막으로 재판이 열렸습니다. 온 세상이 갈보리에서 대표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습니다(행 4:27을 보라).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그분의 죄명은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썼습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은 그들의 종교와 전통 모두를 암시하지만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 있는 죄명은 이방인들의 모든 문화와 인간 철학 모두를 암시합니다, “이 세상의 왕들”(고후 2:8)은 갈보리에서 나타내었습니다. 라틴어 죄명은 그 시대의 정치적인 막강한 힘을 내포하며 로마인들은 그들의 모든 정의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처형을 조율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완벽하고 죄 없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보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갈보리가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인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신자의 구원

주님께서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신자가 선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이 마침내 심판 받았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저주받은 세상의 것을 위해 살지 않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4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 그분 자신을 주신 동기는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따라서 부패한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힌 신자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의 심판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에 관해 사도가 개인적으로 적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세상의 끝이요 이 세상의 최종 심판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호소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며, 거기에서 모든 것이 심판 받았음을 바라보고 바울과 함께 “나도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생명을 미워하기

주님께서 요한복음 12:25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그들의 생활에서 죄악과 그 결과 때문에 불행한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그들의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할 것입니다; 그들의 오락, 상업, 경력, 여가, 스포츠, 취미, 등등. 디모데후서 3:2-4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는 마지막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19에서 주님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의 어둠의 생활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라는 말씀처럼 모든 그들의 쾌락과 악한 행위는 곧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말씀하신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하리라.”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심판을 인식할 때, 우리는 이 세상과 연관된 생명을 미워하고 대신 신성한 분들과의 관계를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요 17:3).

 

세상에 관한 사도적 명령

우리는 이 세상의 심판을 인식함으로 우리가 사도들의 일관된 권고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라고 말합니다. 요한도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썼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벧후 1:4)라며 상기시켜 줍니다. 야고보는 더욱 교리적입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한다면, 죄 없으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 세상이 갈보리라는 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교훈 받아야 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