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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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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W. 깁슨

우리가 요한복음 12:23–33에서 주님의 죽음을 더 깊이 생각해 볼 때, 28절에서 그분은 아버지께 짧은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관련된 주님의 죽음

여기에서 27절의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라는 그분 자신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최종적인 대답입니다, 그분은 곧 이루실 죽음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즉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것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점을 표현하십니다.

 

아버지께 영광 돌리기

이것은 요한복음을 통하여 주제가 되는 갈보리 번제의 측면이며, 즉 그분의 죽음이 아버지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하나님을 위한 것이 없었다면 그때 사람을 위한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죽음의 이러한 하나님 중심적인 측면에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영광이 없었다면 사람을 위한 복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로써,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자신과 관련하여 쉽게 생각하며 우리가 받는 복(구속, 화목, 칭의 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그분의 죽음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아버지의 이름에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담의 후손들 중 단 한 명의 죄인도 구원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은 여전히 하나님께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모든 의로운 요구가 충족되었고, 그분의 거룩한 성품은 완벽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을 향한 이 측면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절대적인 확신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원한 안전은 갈보리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인 이해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죽음에서 발견하신 모든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만족하시고 영광을 받으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죄를 멀리하는 것

우리는 주님의 죽음에 관하여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갈 2:20)을 모든 신자들이 바울과 함께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하여 지금까지 인정하는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복뿐이라면, 우리의 생각은 다소 고립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갈보리에서 받으셨던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분명히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는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성취될 것의 위대함을 깨달았습니다. 요한은 갈보리로 인해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모든 것, 심지어 이 우주에서 죄의 마지막 흔적이 제거될 미래의 날까지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창 1:31)하셨기 때문입니다. 죄가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 들어왔을 때, 모든 것이 훼손되었고 창조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 훼손된 모든 것은 갈보리와 하나님의 아들의 자발적인 희생 때문에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완전히 다시 복구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빼앗지 않은 것을 회복하실 것입니다(시 69:4). 이러한 관점에서 갈보리의 희생을 올바르게 인식하며,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의 이름이 영원히 영광 받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희생에서 아버지의 기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넘어서서 주님의 죽으심의 날에 아버지께 있었던 일, 즉 그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을 위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복은 그 진리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솔로몬은 “죽는 날이 사람의 태어난 날보다 나으니라”(전 7:1)고 썼는데 그리스도께는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분의 베들레헴에서 탄생의 날은 좋았으며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눅 2:14)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밖에서 그분의 죽음의 날은 더 좋았습니다, 갈보리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으로 영원히 영광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 2:8). 아버지는 그분의 아들의 그러한 헌신으로 영원히 영광 받으셨습니다.

 

아버지의 확증

아버지는 요한복음 12:28에서 하늘에서 다시 우뢰 같은 음성과 더불어 아들의 요구에 응답하십니다, “내가 이미 그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 지금까지 아들의 섬김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셨고, 아들의 죽음과 그 이후의 부활로 아버지의 이름이 더욱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확인하는 아버지의 증거가 담겨 있습니다. 11장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요 11:4). 돌을 굴려 옮기기 전에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라고 확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미 그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고 확언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롬 6:4).

 

요한복음 12:29에서 사람들이 하늘에서 이 우레와 같은 음성을 들었는데 누군가는 천사의 음성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아버지의 응답은 주님 자신께 큰 의미가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30절에서 그분은 사람들에게 “이 음성은 나 때문에 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심없는 마음은 바로 자신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분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빌 2:4). 그리스도의 소망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 아버지께 가져다준 영광과 기쁨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