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이안 W. 깁슨

주님께서 요한복음 12:23-33에서 자신에 관련된 그분의 죽음을 계속 설명하심에 따라, 우리는 27절에서 얼마나 그분의 혼이 엄청난 고통을 예감하며 고민하셨는가를 주목합니다. 주 예수님의 감정을 인식하도록 하신 것은 죄를 위한 희생을 그분께서 심사숙고 하심으로 그분의 혼 안에 품으셨고 그분께서 바로 이루실 갈보리 십자가였습니다.

 

자신에 관련한 주님의 죽음

구세주 앞에 임박하게 놓여진 일의 광대함을 생각하시면서 그분께서는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속죄제인데 죄에 대한 그분의 고통은 특별히 그분의 죄 없으신 거룩한 혼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체상의 고난

주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관련하여 사람들에게서 많은 신체상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때리고, 채찍질하고, 그분의 사랑스런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 옷을 벗기고 조롱당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분에게 그들의 가장 사악하게 행했고, 사람들에게 받은 이러한 고난들은 구세주께 매우 실제적이었으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과소평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야 하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가한 이러한 육체적인 고통은 죄와 관련이 없는 비 대속적이었다고 판단합니다.

 

혼의 고난

여섯 시에서 아홉 시까지 암흑의 세 시간 동안 그분께서 죄를 향한 거룩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심으로 구세주께서 겪으신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 고난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하셨던 그분의 아들에게 우리를 위한 죄가 되도록 하실 때, 그분의 죄 없으신 혼을 관련이 있었습니다(고후 5:21). 사람들은 그분의 몸에 최악의 사악함으로 행했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의 혼을 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 53:5에서 찔리시고, 상하시고, 그리고 채찍질(유례없는, 뉴베리)은 그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10절은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이사야 53장에서 세 번이나 “그분의 혼”에 대해 언급합니다: 10절에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11절에 “그가 자기 혼이 해산의 고통을 치른 것을 보고” 그리고 12절에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쏟아 부어 죽기까지 하며.” 이것은 그분의 내면에 혼의 경험인 죄에 대한 그분의 고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2:27에서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라며 그 일이 일어날 것을 그분은 예감하셨습니다 

 

주님의 응답 - 굳건하고 확고함

그러한 고통을 예견하면서 구주께서는 계속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이때로부터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런 까닭으로 이때까지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혼이 갈보리의 고난을 앞두고 괴로워하실 때, 구주께서는 어떤 다른 길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이런 까닭으로 이때까지 왔나이다.” 그분은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정하여진”(벧전 1:20)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분의 고난의 시기와 희생적인 죽음은 언제나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은 “죽음의 고난”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히 2:9).

 

누가복음 12:50에서 주님은 “내게는 잠겨야 할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골고다에서 경험하실 그 고난의 침례를 언급하셨습니다. 거기에서 그분은 사람의 죄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 아래 잠기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그리고 홍수가 그분의 혼을 넘칠 “깊은 물들 속으로 들어”(시 69:1-2)가실 것입니다. 그분은 양쪽에서 제약을 받고 압박을 받는 “꽉 막힌” 느낌을 받으셨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확고부동하지 않았던 때가 한 순간도 결코 없었으며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었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성육신에서 우리는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히 10:7)라는 그분의 굳건하고 확고한 영의 증거를 듣습니다. 12세 때 성전에서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해야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는 그분의 아버지의 일들에 관한 기대감을 듣습니다. 그분의 공생애 동안 우리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요 4:34)는 굳건하고 확고한 표현을 듣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그들은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셔야 할(것이었다, 뉴베리) 그분의 별세에 관하여 말하였으나”(눅 9:31), 그리고 이렇게 그분은 바로 하늘의 영광을 떠나 그분의 굳은 결심에 흔들리지 않고 산을 내려오셨습니다. “친히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자기 얼굴을 고정하시고”(눅 9:51). 그분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보리의 희생이 성취될 때까지 그분은 쉬지 않으실 그분의 확고하심은 이와 같습니다.

 

아버지께 대한 주님의 기도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그분의 공생애 마지막 즈음에 아버지의 뜻과 일의 성취가 이제 임박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죽음이 성취될 날이 바로 며칠 전이었고, 그분의 혼은 그것이 수반될 그 대가는 매우 클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며 괴로워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분은 절대적으로 굳건하고 확고하며 다른 길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조차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갈보리로 가실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때로부터(헬라어 전치사 ἐκ,는 이 시간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통해 보존을 구할 것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청원에는 “이 고통의 때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벗어나도록”이라는 의미와 함께, “그러나 내가 이런 까닭으로 이때까지 왔나이다”라는 신성한 이해가 바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는 그분 앞에 가로놓인 길에서 결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주보다 어떤 다른 것이 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은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우리는 “할렐루야, 놀라운 구세주!”라고 응답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