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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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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2. 16:09 횃불/1988년

불가능한 일들(2)

알프레드 깁스

셋째로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대상은 그 당시에 가장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진실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3).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적합하게 되려면 새로운 출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엄숙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필요를 무시하고, 성령님의 중생시키시는 능력 이외의 딴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출생에 관하여 세 가지 사항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새로운 출생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쉬우면서도 논리적입니다. 새로운 출생이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하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생명을 부여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출생할 때에, 우리에게 육체적인 본성이 부여됨으로써 이 인간들의 나라로 들어와 살며, 기동하고 있듯이 우리가 영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 거기에서 살며, 기동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본성을 가지고 영적인 출생을 해야 합니다. 이 말에는 합당치 않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냉혹한 논리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인 삶을 경험하려면 먼저 반드시 육체적인 출생을 해야 하듯이 영적인 삶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먼저 영적인 출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보거나 들어가려면 왜 이 새로운 출생이 필수적일까요? 먼저 아무도 건널 수 없는 깊은 구렁에 의해 서로 분리된 두 큰 영역 내지 나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중 하나를 ()”이라고 칭하고, 다른 하나를 ”()이라고 칭합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출생은 이라 불리는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해 들였습니다. 이라는 단어는 자기(自己, self)”라는 단어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본질적으로 보시는 영역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8:8). 이 영역, 곧 육의 나라에서 사는 동안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닐 수 있습니다. 도덕적일 수도 있고 부도덕할 수도 있으며, 종교적일 수도 있고 비종적일 수도 있으며, 교육을 받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무식자일 수도 있으며, 주정뱅이 일 수도 있고,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정직할 수도 있고 정직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입이 깨끗할 수도 있고 입이 더러울 수도 있으며, 부지런한 사람일 수도 있고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육신에 있는 한, 한 가지 일만은 할 수 없는데 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하여 볼 때,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가 이 육의 영역에서 이끌어 내어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의 영역으로 옮겨지는 일입니다.

3.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출생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죄인이 에서 으로 옮겨질 수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육체적인 출생을 스스로 성취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영적인 출생을 스스로 성취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요한복음 1:11~13을 읽어보겠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 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유전)으로나 육정(the will of flesh, 자기 노력)으로나 사람의 뜻(인간적인 수단)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우리는,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는 영적인 출생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가 된 사람을 더 이상 육의 영역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지 아니하고 영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8:9).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에

나의 모든 깃을 과감히 맡긴 그 순간,

성령님께서 나에게로 들어오셨고

나는 하나님께로 거듭났네.”

 

이 중생의 과정이 너무나 신비한 것은 사실이지만(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이 이와 같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명백히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언대로, 자기 자신을 잃어진 상태에 있는, 악한 죄인으로 인정하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죄인)의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죄인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것을 믿고,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 들이면 그 순간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로 들어가 거하시며, 그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부여하시며, 육의 영역에서 영의 영역으로 그를 옮기십니다( 1:13).

만일 누가 영적인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너무나 신비해서 인간의 이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생명이 주어지고 육체적인 출생이 이루어지는 것도 역시 신비하고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독자 여러분의 경험 가운데서 실제의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육체적인 생명의 신비가 과학 실험실에서의 분석을 허용하지 않듯이, 영적인 생명의 더 큰 신비가 분석을 허용하지 않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거듭남(중생)의 의미를 실제로 체험할 때까지 결코 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개인적인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떠나서는 구원을 받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히브리서 11:6에서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에 죄인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단번에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에 충분하다는 이 사실이 곧,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에 한 가지 조건을 정해 놓으셨으며, 이것을 떠나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조건을 매우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20:21). 회개란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것은 결국 태도의 변화를 낳고, 이것은 또 행동의 변화를 낳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에 인간의 참된 상태, 곧 파멸된 죄인의 상태가 선언되면 이 멧세지를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 마음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죄와 자기 자신, 그리고 구원에 대한 태도를 변하게 만듭니다.

이제 그 사람은 무관심에서 영적인 실재에 이르러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행동의 변화를 낳게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게 만들고 자신의 영혼을 걱정하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3).

믿음이란 다른 사람의 사람됨됨이나 말, 또는 일을 확신하는 것, 혹은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믿음을,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갈보리에서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드리심으로써 친히 이루신 일 안에 두어야 합니다. 이전에 언급한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의 부채를 기꺼이 담당하시고,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죄가 요구하는 모든 심판, 곧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심으로써, 자기 아들의 희생 제사를 온전히 열납하셨음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여러분이 이와 같은 구주를 어떻게 하느냐? 그처럼 한없이 엄청난 값을 치루시고 이루어 놓으신, 그 큰 구원에 대해 여러분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처럼 놀라우신 구주와 그분의 구원을 자기 마음대로 거절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하여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되는 값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가련하고 잃어진 죄인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사 여러분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을 여러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 이후로 그분을 여러분의 삶의 최고의 주님과 선생님으로 공공연하게 시인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개인적으로 믿는, 살아있는 믿음을 의뢰하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신조(信條)를 암송하거나, “공동 참회에 참여하거나 혹은, 그저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아무리 진지하게 행해질지라도 심각한 오해에 불과하며, 이거야말로 진짜 비극이라 하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88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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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