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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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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2. 16:08 횃불/1988년

우리는 어디에 충성을 바쳐야 할까요?

윌리암 맥도날드

각 교회는 독립적이며, 그리스도께만 책임이 있음

하나님의 말씀에는 교회와 연관된 또 다론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곧, 각 교회는 독립적이며, 오직 그리스도께만 책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에는 교파라든지, 교회들 연방, 또는 교제 집단 같은 것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또 지상에는 지역교회들 위에서 여하한 종류의 권위라도 행사하는 본부가 있어야 한다고 나와 있지도 않습니다.

교회의 본부는 머리(그리스도)가계시는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지역교회들은 지상에서 중앙집권화할 우려가 있는 여하한 제도라도 조심스럽게 피해야 합니다.

이 중앙집권화는 현대주의의 확산을 재촉해온 죄악입니다. 교파의 본부들과 신학교들을 장악해온 자유주의자들은 본부를 지배하기만 하면 결국 모든 교회들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중심권을 형성하는 것은 종종 정부의 압력에 기인하거나 또는 정부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중앙집권화가 일단 이루어지면 전체주의 정부가 교회를 억압하는 일이 용이해집니다. 그리고 정부가 몇 명의 교파지도자들을 구금하면 온 교파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각 교회가 독립적인 단위로써 주 예수님께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류의 확산을 방지하며, 핍박의 때에는 교회가 지하로 들어가는 일을 더욱 용이하게 해줍니다.

 

교회 안에서의 은사들의 역할

이미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은사들의 역할에 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어떤 특별한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같은 특별한 섬김의 은사들이 있습니다( 4:11). 이 중에서 목사와 교사의 은사는 모든 성도들이 자기 은사를 발견하여 그것을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들은 성도들을 세워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할 목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봉사의 일이 어떤 특별한 부류의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의 특별한 은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일을 스스로 해나갈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세워준 후 다른 일터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그와 같은 은사들을 언제까지나 계속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은사들은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일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자기 일에서 벗어나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이와 같은 은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일어납니다, “그와 같은 은사들은 한 지역교회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어야 할까?” 이 의문에 대하여 오직 한가지 대답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성도들이 스스로 섬길 수 있도록 성장할 때까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겨우 세 안식일동안만 체재했습니다( 17:2). 하지만 그는 스스로 부양하며, 스스로 다스리며, 스스로 전도하는 토착 교회를 뒤에 남겨 놓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그가 한 지역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간이 에베소에서 보낸 3년이었습니다( 20:31). 따라서 문제는 한 지역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무느냐가 아니라 그 지역에 머무는 목적이 무엇이냐 입니다. 일군은 성도들이 자기 스스로 일을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갖추어주고 세워주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은사들은 어떤 한 장소에서 일생을 보내려고 생각하는 타고난 성향(性向)을 경계해야 합니다(이것은 고국에 있는 일군들과 외국에 있는 선교사들에게도 모두 해당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동성이 있는 상태로 두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임-역자 주). 그리고 그들이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위험은 성도들이 자기 없이는 잘 해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재중에 있을 때 참석자들의 숫자가 줄어들면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는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교회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교만심에 영합하여 자기는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때때로 그들의 교만심에 상처를 주어 자기는 어떤 특정 장소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와 같은 시간이 이르면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은사에 관해서 살펴볼 때 이상과 같은 사항들 외에도 언급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그와같은 은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지, 훈련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그와 같은 은사들이 훈련(교육)이나 직업과는 무관하게 성령님에 의해 주권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님께서는 어부를 갖추셔서 복음 전도자로 만드실 수 있으며, 목자를 취하셔서 말씀을 가르치게도 하시며, 목수를 갖추셔서 성도들 사이에서 목회를 하게도 하십니다.

전문적인 훈련이 어떤 은사를 만들어 낸다는 내용은 신약성경에 그 암시조차 나와 있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이 말씀을 가르칠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혐오스런 개념입니다. 성경을 파악하는 일에 있어서는 훈련이 믿는 자들에게 유익할 수 있지만 복음 전도자나 교사, 목사는 어떠한 훈련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훈련은 직업적인 성격을 띨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경이 철학적으로 접근된다면 훈련은 매우 치명적이고 위험스런 것입니다.

 

지역 교회

한 지역교회가 신약성경적인 교회가 되는 것은 언제입니까? 대부분의 지체들이 참된 신자들일 때입니까? 아니면 신자들이 소수만이라도 있을 때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은 어디라도 지역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한 그룹이 어떤 자격을 가져야만 지역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신약성경은 무엇이 지역교회인지에 관하여 엄격한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바는 두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분도 그들 중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18:20). 성경은 교회 안에 불신자들이 때때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끼어드는 일이 있을지라도( 20:29~30),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정상적인 교회 안에는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1:1). 하지만 이 밖에는, 어떤 그리스도인 그룹은 신약성경적인 교회이고 어떤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가 재판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그룹이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스스로를 가리켜 말하고 있다면 그 그룹은 총체적인 교회의 진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축소판이자 복사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살아있는 모습을 제시해야 합니다.

요즈음 세상에 있는 지역교회들의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지역교회들은 총체적인 교회의 모습을 아주 좋지 않게 제시합니다. 반면에 어떤 지역교회들은 총체적인 교회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하지만 총체적인 교회의 모습을 완전하게 제시하는 지역교회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교회는 단지 총체적인 교회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여러가지 정도로 닮은 광범위한 지역교회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총체적인 교회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여러 가지 정도로 닮은 광범위한 지역교회들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을 분명히 지니고 있는데, 예를 들면, 믿음의 근본 교훈들을 모두 부인하는 자유주의 교회들이 이 범주에 속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주님과 구주로 인정하는 교회들도 다양하고 광범위 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이 중에서 더 복음적입니다. 그렇다고 신약성경적인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를 가름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교회들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은 다만 우리 자신의 교회를 총체적인 교회와 진짜로 닮은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만심을 가질 수 있는 교회는 없다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움츠러들어서 사멸되고 말 것입니다. 영적인 교만은 그 자체가, 우리가 붙들려고 애쓰는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결론

우리는 어떤 것에 충성을 바쳐야 할까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교회의 체재나 교제의 범위에게 충성을 바치지 깔고 성경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항상 성경으로 점검하고 그것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원칙들을 좇아가려면 그것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오는 비난과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책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고 그 결과를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1988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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